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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Feb 13. 2017

53번 째 잔 - 현대인


매일매일 글쓰기 주제는 <현대인>입니다. 대화만으로 진행되는 소설로 써봤어요.^^


김: “선생님, 제 상태가 어떤가요?”

     

박: “지금 환자분의 상태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김: “뭐가 심각하다는 거죠?”

     

박: “모든 부분이요.”

     

김: “그러니까 어디가 어떻게 심각하다는...?”

     

박: “지금 이렇게 꼬치꼬치 묻는 것 자체가 심각하다고 생각 안 하십니까?”

     

김: “아니 이게 왜...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요.”

     

박: “지나치게 너무 많은걸 궁금해 한단 말입니다.”

     

김: “모르는 걸 궁금해 하는 게 뭐가 나쁘죠?”

     

박: “나쁜 건 아니죠, 하지만 환자분은 궁금해 하면서 동시에 나쁜 것을 상상하죠.”

     

김: “나쁜 어떤 거요?”

     

박: “혹시라도 내가 궁금해 하는 이것의 답이 나쁜 것은 아닐까, 내가 의심하고 있는 게 설마 맞을까. 뭐 이런 것들이죠.”

     

김: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묻는 것도 있다고요.”

     

박: “그러시겠죠, 그게 지금까지 습관성 노이로제로 자리 잡은 겁니다.”

     

김: “습관성 노이로제라... 병명인가요?”

     

박: “네.”

     

김: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말 같은데.. 습관성 노이로제라.. 습관적으로 노이로제가 걸린단 말씀인가요?”

     

박: “원래의 뜻은 중요하지 않아요. 어떻게 해석하시든 환자분 마음에 드는 답으로 골라 가실 거예요. 환자분은 그런 분이거든요.”

     

김: “나름대로 해석을 하는 게 안좋은 건가요?”

     

박: “다시 말씀 드리지만 안 좋지 않습니다. 나쁜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환자분은 본인의 해석에 잘못된 믿음을 갖고 지나치게 그것에 영향을 받고 있어요.”

     

김: “자아가 약한 건가요?”

     

박: “자아가 예리한 거라고 해두죠. 그리고 상상력이 풍부하신 분이라고 해두면 될 것 같네요.”

     

김: “좋은 건가요?”

     

박: “좋고 안 좋고가 뭐가 중요하죠? 왜 이렇게 답을 내시려고 하죠? 인생에 정답이란 게 있나요?”

     

김: “정답은 없지만 뚜렷하게 생각할 순 있겠죠. 제게 맞는 답을요.”

     

박: “많이 두려우신가요?”

     

김: “제 두려움을 어떻게 아세요?”

     

박: “대게 정답을 찾고싶어 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인이거든요. 두려움.”

     

김: “제가 두려워하는 게 뭔지, 정말 뭘 두려워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박: “그게 두려운거죠. 모른다는 것. 환자분은 답을 내기를 습관처럼 해오신 분인데 답이 안 나오는 것들엔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죠.”

     

김: “세상엔 답이 안 나오는 것들 투성이라면서요. 그렇다면 전 앞으로 대체 어떻게 살아가야하죠?”

     

박: “답이 없다는 걸 인정하세요. 결코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도요.”

     

김: “결과 없는 원인이 있나요? 세상 모든 일엔 결론이 있다고요.”
 

박: “결론도 의미부여라는 생각 안 해보셨나요? 내가 답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답이 아닌 거예요.”

     

김: “그래서 모든 것에 답을 내고 싶어 하는 제가 이렇게 힘든 건가요?”

     

박: “환자분은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다고 생각하니까 그때부터 힘들게 된거죠.”

     

김: “예민하다고 보면 될ᄁᆞ요?”

     

박: “예민한 게 아니라 예리한 겁니다.”

     

김: “전 좀 보통 사람보다 특별한 성향을 가진 거네요 그럼.”

     

박: “아니요. 환자분은 특별하지 않으세요. 환자분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니까 특별해 보이는 거죠.”

     

김: “그럼 결국 생각문제네요.”

     

박: “생각의 일이죠.”

     

김: “그럼 전 왜 그런 쪽으로 생각을 계속 하는 걸ᄁᆞ요? 이것도 습관일까요?”

     

박: “실패가 두려우니ᄁᆞ 그런거겠죠.”

     

김: “여기서 갑자기 실패가 왜 나오죠?”

     

박: “답을 구하고 싶은데 답이 나오지 않는 것들 앞에서 본인의 치부가 드러나거나 실수를 할ᄁᆞ봐요. 그걸 결국 실패라고 단정 짓는 환자분의 생각회로가 본인을 두려움에 휩싸이게 하죠.”

     

김: “저만 그런 건 아니겠죠?”

     

박: “심지어 또 혼자가 될 가능성까지 걱정하시네요.”

     

김: “남들과 다르다는 건 꽤 두려운 일이니까요.”

     

박: “다시 말하지만 환자분은 전혀 특별하지 않으세요.”

     

김: “그럼 제가 여기 왜 와있죠?”

     

박: “본인이 느끼는 걸 특별하다고 생각해서죠.”

     

김: “그럼 보통사람들도 다 저와 같이 느끼고 두려워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박: “환자분이 말씀하시는 ‘보통사람들’은 이 곳에 굳이 오지 않는 사람들을 말하는 건가요?”

     

김: “뭐 그렇다고 하면요?”

     

박: “그래요, 그런 사람들을 보통사람이라고 해봅시다. 그런 보통사람들은 환자분과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요. 누구나 막연한 것에 대한 불안함, 답을 찾는 것에 대한 집착, 실패에 대한 지나친 걱정을 하죠. 자기 자신이 하찮은 존재처럼 느껴지는 걸 애초에 막기 위해서요.”

     

김: “그런데 왜 저만 이 곳에 와있죠?”

     

박: “그건 보통사람들은 그 생각에 크게 집중을 하며 살지 않으니ᄁᆞ요.”

     

김: “삶이 바빠서 그런걸ᄁᆞ요?”

     

박: “뭐 그런 이유도 어느정도는 있겠죠. 일을 하고 집에와서 쉬기 바쁘니까요.”

     

김: “그렇다면 그게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건가요? 생각을 크게 하지 않는다는 게요.”

     

박: “이것보세요. 환자분은 또 본인을 보통사람보다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나누고 계세요. 그냥 사는 거예요. 삶은 특별할 게 없는 일상일 뿐인데요. 굳이 생각을 많이 할 필요가 있나요? ”

     

김: “필요ᄁᆞ진 없지만 필요 없지도 않죠.”

     

박: “문제는 여기에 있네요. 환자분은 환자분의 성향을 남들한테 납득시키려고 해요.”

     

김: “납득을 시킨다니요? 제가 지금 제 성향을 정당화하기 위해 설득하는 것으로 보이시나요?”

     

박: “이곳에 찾아오셨으니까요. 환자분은 스스로 보기에도 본인이 그렇게 이상한건가, 아님 정말 특별한 건가 확인 받고 싶으셨던 것 아닌가요?”

     

김: “꼭 그렇다기 보단, 힘들어서 온거죠. 복잡하고 어렵기도 하고요.”

     

박: “어려울 것 없습니다. 환자분은 답을 찾기 좋아하고 그것에 시간 투자를 많이 하는 걸 좋아하는 겁니다. 성향이라고 볼 순 없어요. 이런 건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거든요.”

     

김: “예를 들면 어떤?”

     

박: “환자분이 머리보단 감각에 의존을하기 시작할 때 멈출 수 있습니다.”

     

김: “감각에 의존을 하려면 오감을 많이 사용하라는 건가요?”

     

박: “오감을 사용하되 그것의 느낌에 집중하시면 됩니다.”

     

김: “그게 쉬운가요? 전 감각보다 머리가 먼저 가동되는데.”

     

박: “그냥 노세요. 맛있는 걸 먹고, 티비 보고, 노래 하고, 춤 추고, 게임도 하고, 만화책도 보고요.”

     

김: “보통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살아간다는 말씀이네요.”

     

박: “또 그렇게 해석하시는군요. 그게 나쁩니ᄁᆞ?”

     

김: “나쁜 건 아니지만 전 가야 할 길이 있어요. 그렇게 놀고먹으면 제가 해야 할 일을 놓칠 수도 있다고요.”

     

박: “왜 해보지도 않고 그렇게 단정지으시죠? 그럼 평생 아무 것도 안 하고 두려워만 하면서 답을 찾을 수 있는 길만 걸으실 생각이세요?”

     

김: “그건 싫어요.”

     

박: “이것 보세요. 환자분은 호불호도 확실해요. 본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분이죠. 자기 자신을 완벽히 파악한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에요. 그런 면에서 환자분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김: “결국 전 제가 특별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왔던 거네요.”

     

박: “제게 답을 되뇌지 마세요. 환자분은 이미 답을 알고계시니 굳이 두 사람 이상의 동의를 구할 필욘 없어요. 그런다고 답이 더 답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김: “전 그냥 가도 되겠네요. 그럼 이만 가볼게요.”

     

     

     

박: “세상엔 특별한 사람도, 특별하지 않은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나 충분히 사랑스럽죠. 본인을 판단하지 말고 스스로를 사랑하세요. 자신이 어떤 모습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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