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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Mar 20. 2017

두 곡 - I

태연의 <I> 나를 찾는 멜로디


태연 - I

[미운 오리와 백조
또 날기 전의 나비
사람들은 몰라
너의 날개를 못 봐
네가 만난 세계라는 건
잔인할지도 몰라]

 가끔은 생각한다. 나의 하루는 죽기 직전까지 끝나지 않는다고. 그것이 가끔 무섭기도 하고 그것이 또 때로 다행이기도 하지만 죽어야만 끝나는 삶이 버거워졌을 때 난, 어디쯤 와있는가 생각한다.
 태연의 노래 <I>. 뮤직비디오를 먼저 봤었는데 처음엔 영상 속 태연의 머리색이 예뻐서 몇 번이나 재생버튼을 눌렀다. 가사처럼 한 마리 나비 같기도 했고 날개를 숨긴 새 같기도 했다.
 궁금해졌다. 영상 속 태연은 잔인한 세계를 만났을까. 아니면 죽기 직전까지는 끝나지 않는 하루를 다행이라고 여길만큼 빛나는 세계를 만났을까. 노래라는 게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기 위한 예술이라면, 이 노래를 듣는 우린 또 어떤 세계를 만나고 있을까.
 나의 세계엔 무서움이 가득하다. 모든 감정은 상대적인 것이지만 내가 느끼는 나의 세계엔 무섭지 않은 것들이라고는 매일 보는 가족과 자주 보는 친구들의 익숙한 얼굴들뿐이다. 매번 모든 것이 낯설고 언제나 알 수 없는 것들이 무성하게 있다. 맹목적으로 쫓게 되는 것들은 매력적이지만 더럽고, 쾌락은 아름답지만 타버릴 만큼 뜨겁다.
 이 무서운 세계에 살면서도 우리에겐 보이지 않는 날개가 있다. 직업이나 장래 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색깔을 말하는 것이다. 마치 영상 속 태연의 예쁜 머리색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거대하고 육중한 세계에서 꾸역꾸역 누르고 살아야 살 수 있는 우리의 색깔이 그럼에도 빛처럼 살덩이를 비집고 나오는 순간을 과연 몇이나 느끼며 살아갈까.
 처음엔 날개를 펴지 못하는 게, 아프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남아있는 열정으로 문을 두드려본다. 그렇게 좀 더 지나면 체념한다. 그러곤 이 세계의 흐름에 발을 맞춘다. 이 삶도 그럭저럭 괜찮다. 그렇게 자신을 속인다. 그러다보니 정말 괜찮아지기도 한다. 아프지 않다. 또 어떤 누구는, 자신에게 날개가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러고선 음악과 책에 나오는 찬란한 것들을 그저 한두 번 추억이나 하며 다시 잔인한 길을 저벅저벅 걷는다. 이건 우리 대부분의 인생 루트다.
 나의 색깔을 누군가 알아봐주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몰라주길 바랄 수도 없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투성인 이곳에서 무조건 날개를 피라고 외칠 수도 없다. 그저 다시 생각해보는 것  뿐이다. 지금 나에겐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하루가 다행일까 불행일까.

 그럼 난 지금 어디쯤 와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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