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려고 쓰다 보니, 이런 사람이었다.

by 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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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를 여러 모습으로 살아간다.

상담실에서는 누군가의 마음을 붙잡아주는 사람이고,
퇴근 후에는 아이의 학습과 장난 사이를 오가며 엄마가 되고,
새벽녁이 되면 조용히 글을 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역할은 자꾸 바뀌는데 마음은 한 곳에서만 움직이는 것 같다.

사람을 바라보고, 그 사람의 속도를 지켜보고,
내 안의 불안이 들썩여도 결국 다시 자리에 앉는 마음.

나는 그렇게 하루를 살아낸다.


말보다 ‘속마음’을 먼저 듣는 사람

말을 들을 때 문장보다 그 아래 깔린 마음이 먼저 들어온다.

눈빛이 잠깐 흐트러지는 순간,
목소리가 아주 살짝 흔들리는 떨림,

말 끝에서 한 번 멈칫하다 삼켜버린 표정.

이런 것들이 나한테 먼저 도착한다.

그래서 상담을 할 때 나는 정답이나 정보보다
지금 이 사람이 숨기고 싶었던 마음의 온도를 먼저 본다.

사람이 자기 마음을 다시 듣게 되는 순간.

그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
그게 내가 가장 오래, 가장 진심으로 해온 일이다.


배우는 순간에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끼는 사람

새로운 개념 하나만 알아도 괜히 기분이 살아나고,
발음 하나 더 자연스럽게 해보겠다고 혼자 녹음해보고,
배운 건 바로 상담실에 써보고 싶어지는 사람이다.


나에게 배움은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라기보다
‘아, 나 아직 이 일을 좋아하네’라는 확인에 가깝다.

그래서 배우는 순간의 나는 유난히 솔직해진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고,
아는 건 괜히 숨기지 않고 나눈다.

그게 내가 일하는 방식이다.


정작 내 마음 앞에서는 서툰 사람

타인의 마음에는 오래 머물면서 정작 내 감정에는 조금 엄격하다.

“이 정도는 참아야지.”

“이걸로 힘들다 하면 안 되지.”

이런 말을 나한테 가장 많이 한다.


그래서 가끔은
이불 속에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채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조금만 지나면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있다.
글을 쓰거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다시 듣다 보면
내 마음도 함께 정리된다는 걸 알고 있어서일 것이다.


사소한 귀여움에 진심인 사람

강아지 이름 하나 지으면서 하루를 웃고 고민하는 사람이고,

친한 사람에게 “오늘 에너지 몇 점이야?” 같은 말을 던지며
괜히 분위기를 풀어보는 사람이고,


조금만 달라진 나를 발견하면 “이거 1% 성장인데?” 하고
혼자 감동해버리는 사람이다.


오래 사람 곁에서 일했지만 내 마음이 아직 딱딱해지지 않은 건
아마 이런 사소함들 덕분일 거다.


결국, 사람에게서 도망가지 않는 사람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은 날이어도
내담자가 “오늘은 그냥 이야기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면
“그래요, 오늘은 그렇게 해봐요” 하며 자리에 앉는다.


집에 오면 방바닥에 그대로 누워 있다가도
아이 손에 이끌려 같이 그림 그리고 장난치며 웃는 사람이고,

지쳐서 핸드폰을 멀리 던져놨다가도

“선생님, 괜찮으세요?”라는 메시지 하나면
다시 마음을 챙겨 답장을 보내는 사람이다.


나는 완벽해서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좋아서,
사람이 필요해서,
사람에게 닿고 싶어서
결국 다시 돌아오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사람이다

조금 섬세하고, 조금 헤매고,
조금 웃기고, 조금 부서지기도 하는 사람.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 앞에서 멈추지 않고,
그 사람의 마음에서 눈을 떼지 않는 사람.


완벽해서가 아니라 함께 살고 싶어서.

오늘도 나는 그 마음 하나로
일하고, 배우고, 쓰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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