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SNS 비건 레시피들

비건 친구 생활백서 EP 16: 반강제적 홈 비건 데이트의 나날들

by 채루에 Ruhe

비나와 쥬진, 그리고 나, 우리끼리의 파워퍼프걸은 요 겨울을 조금 힘겹게 보냈다. 우리가 만나게 된 곳이었던 회사를 각기 다른 이유로 작년 끝여름에 떠나게 되며, 모두 각자 자기 점검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던 것인데, (이 속속들이 개인적인 이야기는 아무래도 다른 시리즈에 걸맞은 주제이니 일단 넘어가자) 그건 곧 우리는 이제 약속을 잡아야만 보는 사이가 된 동시에 모두 재정적인 부담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우리가 친해진 데에 톡톡한 몫을 한 것은 우리 모두 멀지 않은 인근에 살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그건 우리가 회사를 떠나 붙어 있게 된 공간이 서로 가깝다는 뜻이었다. 물론 매주 사무실에서 보던 것만큼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찌 되었든 회사 동료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진짜, 진짜 친구가 된 기분이 들었다.


진정한 아지트가 된 나의 보금자리

4D40CE23-19E2-4E6A-BB6A-DDE8496D2901_1_105_c.jpeg 어느 평화로운 아침의 풍경. 저 작은 테이블에서 먹고 마시고 수다 떠는 시간들이 잔뜩 쌓여간다.

한국과 독일의 꽤 큰 차이는 바로 집에서 먹는 것과 외식비의 차이인데, 독일은 외식비에 비해 장 봐서 집에서 먹는 비용은 되게 저렴한 편이다. 특히 코로나 이후론 외식비가 엄청나게 비싸졌는데, 무료로 물이 나오지 않는 것도 한몫한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물을 큰 병으로 하나 시키면, 프랑크푸르트 기준으로 6유로에서 8유로 사이를 내야 한다. 물 한 병이 이미 만원을 훌쩍 넘는 것이다. 물보다 맥주가 싼 나라라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한국에 비해 집에서 만나는 모임이 꽤 많은 편인데, 우리의 상황은 이 부분을 좀 더 강화한 면이 있다. 피앙세와 사는 비나, 원룸에 사는 쥬진에 비해 나는 혼자 살지만 거실이 따로 딸려 있는 데다 고양이들도 있고 해서 주로 우리는 우리 집에서 모이고 있다.


SNS 중독의 순기능: Insta-pired 비건 요리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는 않지만 비나와 쥬진은 나보다 훨씬 더 팝문화에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많다. 그중에 하나가 인스타그램 릴스 공유인데, 이제는 나도 친구가 질릴까 걱정될 정도로 릴스를 보내지만, 이 Gen Z, 혹은 MZ 문화라고 하는 "Reelationship"의 세상에 나를 가장 먼저 노출시킨 건 비나와 쥬진이었다. 분명 왓츠앱 단톡방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동시에 인스타그램 단톡에 여러 가지 릴스를 공유하기 시작했던 것인데, 우리가 만나기로 한 날이 다가올 즈음, 비나가 가장 처음의 레시피를 보냈다.

Screenshot 2026-04-02 at 09.09.03.png 우리의 인스타 단톡은 주로 릴스 공유와, 흥미로운 프랑크푸르트 이벤트 공유들, 그리고 꽤나 잦은 리액션으로 이어진다.


Green Goddess

아마도 우리의 인스타 영감 레시피의 첫 시작이었던 이건, 사실 작년 여름에 해 먹은 요리이긴 하다. 매번 회사를 떠나는 걸 노래하던 우리는 놀랍게도 지난여름 두 달에 걸쳐 쪼로록 회사에서의 마지막 날을 맞이했다. 각자 다른 이유이긴 했지만, 독일의 퀸디궁자잇(Kündigungszeit), 그러니까 계약 해지 통보기간에 따라 대략 3개월 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우리의 허리띠 졸라매기는 슬슬 시작되고 있었다. 물론, 우리 집에서 모여 같이 차나 식사를 하는 건 그전부터도 자주 하던 일이었지만 그 이후로는 유독 그랬던 것 같다.


무튼 여름이 시작되었고, 늘 그렇듯 우리는 지갑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Summer body를 위해서도 다른 의미의 허릿띠를 졸라 보기로 했다. 그래서 만든 이 각종 초록 야채들이 들어간, 초록 소스의 "Green Goddess"샐러드는 한참 소셜미디어에서 바이럴을 타던 비건 레시피인데, 비나의 메시지대로, 무척이나 간단했다. 오이와 파, 양배추를 비슷한 사이즈들로 잘게 자르고, 아보카도와 올리브오일, 선호하는 견과류를 넣어 간 소스를 부어 잘 섞어주면 된다. 자세한 레시피는 영어로 치면 여러 버전으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린 비나가 가져온 렌틸콩 뻥튀기에 얹어 곁들여 먹었는데, 사실 엄청 맛있지는 않았지만 입에서 파냄새가 꽤 나겠다며 입냄새 나는 여신(Goddess) 샐러드가 아니냐며 깔깔거리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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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바이럴 하던 켄달 제너의 오이자르는 영상을 따라하던 쥬진과 옆에서 열심히 소스를 만드는 비나. 작은 주방에서 복작복작 요리하는 시간들이 즐거웠다.

(켄달 제너의 오이 자르는 영상이 궁금하다면 여기 링크!)



비건 카라멜라이즈드 어니언 칠리오일 파스타

내가 요리에서 환장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있는데, 바로 카라멜라이징 된 양파다. 그 감칠맛과 달착지근함은, 어떤 조미료도 따라올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런 요즘 유행하는 레시피가 있는데, 바로 French Onion Pasta! 양파를 잔뜩 졸인 프렌치 어니언 수프는 내 최애 수프 중에 하나인데, 거기서 착안된 레시피가 재료도 간단하고 해서 요즘 영어 콘텐츠들을 중심으로 바이럴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바이럴이 붐이 되기 바로 직전에 마찬가지로 인스타그램에서 접한 레시피도 이거였다. 비건 캐러멜라이즈드 어니언 칠리오일 파스타. 게다가 작년 부활절에 코펜하겐에서 먹었던 크림 크리스피 칠리오일 파스타가 매번 아른거려 이런저런 레시피를 개발해 보던 중이던 내게는 반가운 소식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쥬진이 인스타그램 영상을 공유해 줬고, 영상에는 정확한 계량이 없어, 감대로 만들까 하다가 비건레시피에는 자신이 없어 구글링으로 똑같은 이름의 레시피를 찾아냈다. 그렇다, 나는 이 요리에 진지했다.


비건 파마산과 식물성 크림 등 몇몇 비건용 재료가 특별히 필요했는데, 식물성 크림을 제외하고는 비나가 슈퍼마켓에 자주 없는 것도 있다며, 집에 있는 건 가져왔고, 아는 곳에서 사 오기로 했다. (비건 파마산은 dm에서 주로 산다고 했다.) 칠리오일은, 특별히 크리스피 칠리오일을 쓰고 싶었던 내가, 칠리오일은 사 오기로 했다. 마침 아시안 마트 근처에 갈 일이 있기도 했고. 다만 문제는 이게 비건인지 아닌지 표기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그 병에 든 중국 크리스피 칠리오일을 꼭 사고 싶은데 말이다. 그래서 구글링을 시작했고, 역시나 레딧(Reddit)에 나와 같은 질문을 한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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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들을 쭉 읽어보니 가장 아래에, 땅콩이 들어간 버전은 비건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마침 아시안마트에도 그것만 팔고 있는 게 아닌가! 낙점! 땅땅땅!


그리하여 무사히 만들게 된 이름도 참 긴, 비건 캐러멜라이즈드 어니언 칠리오일 파스타는 내가 해먹은 비건 요리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요리였다. 비나가 파마산을 깜빡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미 충분히 맛있었다.

IMG_1185.HEIC 통밀 파스타를 써서 조금 더 어두워 보이는 사진이다.


가지 버섯 라자냐

이건 그러니까 소셜 미디어에서 직접적으로 소개받은 레시피는 아니지만, 정재형 님의 유튜브, 김우빈 님 편을 보고서 영감을 받은 레시피이다. 매번 게스트를 위해 직접 요리해 주는 콘텐츠들이라, 요리를 좋아하고 새로운 레시피를 좋아하는 나는 종종 숏츠로 보곤 하는데, 이번엔 가지로 라자냐 면을 대체한 가지 라자냐를 내어놓았는데, 마침 가지를 싫어하던 내가 요즘 가지를 좋아하게 된 게 아닌가! 이건 탄수화물도 줄이고, 요즘 신나게 먹고 있는 가지도 먹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싶었다. 그래서 이날은 가지 라자냐를 하기로 했는데, 고기와 일반 치즈로는 비건이 될 수 없지 않은가. 치즈야 조금 아쉽지만 비건 치즈를 써야만 했고(라자냐에서 치즈는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평소처럼 뺄 수는 없었다), 다만 라구 소스에 고기가 빠진다는 건 내게 조금 어려운 일이라, 대신 시금치 크림소스로 대체하기로 했다. 물론 크림은 식물성 크림이다.


이건 별다른 레시피가 따로 없이 그냥 가지라자냐에 꽂혀 비건 버전으로 내가 만들어 본 레시피다.

재료: 가지, 냉동 시금치(나는 양파가 살짝 섞인 버전을 사용했다), 크러스트 칠리, 야채 스톡, 후추, 양파, 다진 마늘, 식물성 크림, 비건 모차렐라 치즈, 버섯(취향껏)

(오븐을 예열해 두고 시작하자. 그렇지만 나는 2번 과정을 하고 나서 180도로 예열해 두었다.)

1) 양파를 잘게 정육면체로 잘라 올리브유에 볶다가 살짝 노릇해지면 다진 마늘을 넣는다

2) 마찬가지로 잘게 썬 버섯도 함께 넣고 볶아주다가 버섯도 색이 짙어지면 크림을 넣고 살짝 볶아준다.

3) 냉동 시금치 큐브, 크러스트 칠리, 야채스톡, 후추를 기호와 제품별 간에 맞게 넣는다.

4) 불을 줄이고 살짝 수분을 날리는 동안 가지를 편 썰어 준다. (편 썬 가지를 한번 살짝 오븐이나 프라이팬에 구워주면 좋지만 나는 귀찮은 관계로 생략했다)

5) 오븐용 그라탕 용기에 올리브오일을 바르고 가지를 깔아준 뒤, 소스와 가지를 번갈아가며 올린다.

6) 마지막으로 비건 모짜렐라 치즈를 올리고 미리 예열해 둔 오븐에 넣어 약 15-20분 간 굽는다.

비건 요리의 장점은 고기가 들어가지 않아, 덜 익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치즈 겉면이 노릇해지면 꺼내서 먹으면 된다. 가지는 생각보다 되게 금방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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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한참 하고나서야 기억이 나서 찍기 시작한 사진. 유럽의 가지는 대체로 저렇게 통싱통실하다.

아쉽게도 당일 비나는 몸이 좋지 않아 결국 다른 친구와 먹게 되었지만, 이건 단가도 저렴하고 그에 비해 손님들의 반응은 좋은 데다 건강하게 탄수화물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 삼박자를 모두 갖춘 요리였다. 이후로도 자주 비건, 일반 버전으로 여러 번 해 먹고 있으며, 사실 가지를 싫어하던 내가 가지를 더 잘 먹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오늘도 이따가 저녁에 올 친구들을 위해 비건은 아닌 버전이지만 가지 라자냐를 하기로 했다. 다들 한 번쯤 집에서 해 먹어 보면 좋을 요리. 비나에게도 다시 해줄 기회가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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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내고 신나서 먹기 시작하고서 정신차려 찍은 사진. 단면샷이라고 주장해보려고 노력해봤다.



앞으로의 우리


그렇게 우리의 기나긴 겨울은 끝이 나고 드디어 봄이 오기 시작했다. 어제는 쥬진의 새 회사 첫 출근일이었고, 비나도 지난달부터 새로운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데다 새로운 직종의 N잡러까지 되었다. 나의 멋진 파워퍼프걸들. 새로운 기점이 시작되어, 우리 셋 모두 너무나 바빠 요즘은 자주 보지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의 인스타 단톡방은 매일같이 귀엽고 웃긴 짤들로 가득하다. 이렇게 지금은 각자의 삶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지만, 또 여름이 다가오고, 우리의 시간은 길기에 다시 자주 만날 날을 기다린다.




비나를 만났기에 마주하게 된 비건의 세상. 그리고 비건의 세상에, 비건 알고리즘에 들어왔기에 알게 된 어떤 새로운 음식들. 먹는 게 가장 효율적인 행복의 방식이라는 게 지론인 내게, 이 새로운 세상은 늘 흥미롭고 짜릿하다. 물론 비건 음식은 짜릿과는 거리가 멀지만. 새로움은 늘 짜릿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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