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8.14. 크리킨디는 왜 떡볶이를 만났나
언택트 시대, 단절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일푼
코로나 19가 바꿔놓은 세상, 그것은 어쩌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가 너무나 버거운 세상일 지 모른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육체적 고통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도 물론 비극적이고 견디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만큼 비참하고 상상하고 싶지 않은 것은 돈이 없어 굶어 죽는 것이다. 돈이 없어 궁핍해진 사람들은 마음도 긍휼함을 잃어 나만을 위한 생존에 기를 쓰게 된다. 아직은 비록 서로에 대한 믿음과 격려, 헌신과 봉사로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 애 쓰고 있지만 결국 우리는 불완전한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돈의 궁핍으로 인해 살기 힘들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은행이 20일 발표한 ‘2020년 1분기 가계신용(잠정)’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 이후 대한민국의 가계는 올해 1분기 말 우리나라 가계신용 잔액은 1,611조 3천억원으로 작년 4분기(1,600조 1천억원)보다 11조원이나 늘었다. 전년동기대비 증가율은 4.6%로 지난 3분기(3.9%) 이후 최대치라고 한다.(2020.5.20 조선비즈, “코로나 속 가계빚 3분기만에 최대 증가…신용카드 사용액은 감소”) 자신의 최대한도만큼 다 받은 가계 대출의 끝은 조기 상환이 아니라 연체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현재 코로나 사태에 따른 경제성장 예측을 살펴보면 암울하기 짝이 없다. 전경련에 따르면 미국, 영국, 일본 등의 경제단체 중 절반이 넘는 52%가 '더블딥(double dip·회복세를 보이다 다시 침체에 빠지는 현상)' 시나리오를 예측했다.(2020.6.7. 연합뉴스, “하반기에 코로나 2차 대유행…세계경제 또 침체 예상”) 결국 내년 상반기 혹은 하반기까지의 경기 침체가 당연시 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소기업 및 지역 소상공인들의 미래는 절망적이다. 정부의 소상공인들에 대한 지원금으로 2~3개월 버틴다 한들 무슨 미래가 있을 수 있으며, 기업 대상 고용유지 지원금으로 한두 달 고정 인건비를 충당한다 한들 향후 경영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 수 있을까.
기업과 소상공인뿐만 아니라 국민 개개인들의 삶 또한 다르지 않다. 몇개월 유급휴가로 연명하다 무급휴가로 전환되고 결국 일자리를 잃게 되는 상황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올해 1월부터 4월 기준 비자발적 실직자 수는 104만4, 720명으로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었다.(2020.5.17. 연합뉴스, “'코로나 고용한파' 1∼4월 실직자 208만명 역대 최대”)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살아내기 위한 ‘돈’의 공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출이라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금융권 대출이 어려운 신용불량자나 저신용자들은 대출은 꿈도 못 꾸는 처지다. 2019년 말 기준 신용불량 상태가 되어 금융거래가 사실상 차단된 자영업자들이 3만 6천명에 이른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더 증가한 것으로 예상된다.(2020.4.5. 연합뉴스, “"하루 벌어 하루 쓰는데"…작년 말 자영업 신용불량자 3만6천명”) 이 같은 상황에서 정작 삶을 어떻게 영위해야하는가. ‘일상을 되찾자’ 이전에 목전에 다가온 말은 ‘오늘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이다. 하루를 먹고 살 수 있는 ‘돈’이 절실하다.
요즘은 신성한 노동의 대가로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하면 사기꾼이 된다. 코로나 사태가 ‘평생 한 번의 기회’ 라며 전 세계 많은 밀레니얼 세대 젊은 층들이 주식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20.7.6. 조선비즈, “코로나發 폭락, 평생 한 번의 기회?…"세계 밀레니얼 세대 첫 주식 투자 '봇물'”) 이 같은 현실에서 과연 평범하고 성실하게 일한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 절박한 시기를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은행권 대출은 코로나 이전 신용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제2금융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나마 신용이 좋아야 겨우 3~4개월 버틸 대출금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것도 낮지 않은 이자율로 말이다. 은행권의 대출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일자리마저도 없는 이 시기에 급전도 빌릴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기존 신용 및 담보대출 방식으로는 정말 굶어 죽도록 가난해진 사람들은 살기 위해 필요한 ‘돈’을 빌릴 수가 없다. 때문에 우리는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대안금융에 관심을 가지고 새로워진 환경에 걸맞는 시스템을 완성해야 이와 같은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삶을 다시 살아낼 수 있는 ‘돈’을 공유할 수 있다.
이제는 익숙해진 크라우드펀딩과 같은 기금 모금 방식은 자본이 자본을 위해 쓰여 지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필요한 곳에 자본이 사용될 수 있게 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자본의 공유를 통해 자본주의의 한계를 조금이나마 극복하고자 한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돈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선의와 필요성을 알리고 이에 대해 펀딩을 받는 방법으로 순수 기부형의 경우 금전적 보상없이 자금을 모아 사용할 수 있다. 같은 방식이지만 수익률을 보장하고 직접 원금을 상환해야하는 역펀딩과는 또 다른 형태다. 크라우드펀딩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2016년 시행된 이후 크게 성장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은 대부분 지분투자형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인 ‘와디즈’는 꾸준히 성장해 지난해 601억원의 펀딩금액 모금으로 전년 대비 113% 성장했으며 2016년부터 현재까지 누적 펀딩금액은 1,075억원을 기록했다.(2019.2.15. “매일경제 크라우드펀딩 규제 벗고 `두둥실`”) 놀라운 성장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와 같은 지분투자형 모델의 경우 대부분은 스타트업이나 엔터테인먼트사와 같이 자본을 가진 사람들의 자본 증식을 위한 수단으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 이용되고 있다. 물론 창업생태계와 투자의 흐름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앞서 말한 지금과 같은 재난의 시대에 척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긴급한 자본의 공유를 해줄 수 있겠다는 믿음을 갖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와는 다른 자본 공유 방식으로는 마을 사람들이 공동의 목적을 위해 함께 자금을 모으고, 이렇게 적립된 자금을 마을을 위해 사용하고, 그 혜택을 주민들이 함께 누리는 마을기금 즉 공동체기금이 있다.(출처: 마을기금이란 [사단법인마을] 홈페이지)
공동체기금은 더불어 살아가면서 지역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구성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지역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해나가는 방법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적은 액수나마 출자금과 후원금을 내면서 가난한 사람의 잠재력이 모이고, 이 돈이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눈으로 보게 하는 일이다. (2018.4.11. 한겨례 “소소하지만 위대한 돈, 지역에 생기 불어넣는 ‘공동체 기금’”)
지금과 같은 재난의 시대에 이와 같은 공동체기금의 경험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우리는 자본의 속성에 따른 돈의 흐름이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한 자본을 공유한 경험을 이미 가지고 있다. 공동체기금은 분명 코로나사태와 같은 긴급 재난시에 금융권에서 소외받은 사람들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공동체기금은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공동체에 속하지 못한 사람은 어떨까.
공동체원이 아님에도 공동체기금의 기금 혜택은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공동체를 위한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을 결의하고 기금을 사용할 수 있기는 하겠으나 어찌보면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공동체기금을 사용하려면 심도있고 지난할 지 모를 승인절차를 거치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를 연명하지 못하는 긴급한 상황에 처한 이들이 공동체가 아니므로 혹은 공동체가 원하지 않음으로 거절되거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말이다. 비약한 상황이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 공동체를 형성하고 활성화하여 모든 지역주민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하는 것도 사실이다. 조직적 체계에 의해 운용되는 공동체기금은 공동체 안에 소속되어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공동체 기금에 대한 상상
몇 개월 전 성북에서는 복지사각에 놓인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내가 해야할 일을 할 뿐이라며 산불을 끄는 초라한 작은 새의 이야기를 딴 ‘크리킨디’라는 민간기금이 운용됐다. 신청 이유에 대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후원금을 전달하는 이 기금은 총 71명의 모금 참여자들이 6,239,500원을 모아 이유를 불문하고 신청자 58명에게 10만원씩 총 580만원을 지원했다.(출처 : 2020.8. 성북크리킨디 기금 기획자 권경우) 모으는 사람도 조건이 없었고 수혜를 신청하는 사람 또한 그 어떤 조건도 필요하지 않았다. 현재 남은 기금의 사용 및 이후 활동에 대해 지역활동가와 단체들이 함께 고민하고 있다.
지난 4월 청년들은 청년들의 생존을 위한 기금, 일명 ‘떡볶이’ 기금을 만들었다. ‘갑자기 통장에 떡볶이가 입금됐다’라는 타이틀의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활동가를 위한 후원 프로젝트’인 이 놀라운 콘셉트의 기금은 2주간 759만원의 후원금을 모금하여 총 151명의 청년활동가에게 5만원씩을 지급했다. (출처 : 2020.8. 성북청년시민회 황박동염) 이 또한 신청 이유에 대해서는 일체 물어보지 않았다. 신청자가 기금을 운용한 성북청년시민회의 일원이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았다. 다시 만나 다음 일을 도모할 수 있는지 없는지, 회원으로 가입할 지 안할 지 등을 묻지도 않았다. 그저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돈이라 생각했고 지금 이 순간 긴급했기에 뜻 맞는 사람들이 모여 그 자리에서 기획하고 즉시 실행했다. 그 시의적절한 신속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경제 영역에서는 소셜벤처 대표들의 모임인 ‘am0823’이 대학생들을 위한 ‘am0823 코로나 극복 장학’을 만들어 장학금 플랫폼 소셜벤처 드림스폰을 통해 총 5명에게 20만원씩을 지급했다. 놀라운 것은 십시일반 모은 크지 않은 장학금 신청에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700여명에 가까운 대학생들이 지원했다는 사실이다. 예상보다 2배가 넘는 수요에 대표들은 한 번 놀랐고 신청 사연을 읽고 또 한 번 놀랐다. 모두가 하나같이 장학금이 필요한 학생들로 그 사연들이 너무 절절했기 때문에 일일이 읽고 5명만을 선정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상기한 기금들처럼 아무 조건없이 지급하면 좋았겠지만 여건상 그러지 못한 대표들은 탈락자들에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참여기업의 소셜벤처 상품 및 모바일쿠폰을 위로 선물로 보냈다.
위 세 가지 사례 모두 자본의 증식을 위한 기금이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기금에 가깝다. 이 같은 변형적인 공동체기금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공동체 기금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우선, 공동체기금이라 부르지만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공동체의 요건을 충족하는지는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동체원 간의 관계와 신뢰가 과연 존재하는가. 서로를 위한 그리고 공동의 이익을 위한 공공의 목표가 지속되는가와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은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동체의 형태도 그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된다고 전제할 때 분절된 채 연결된 뉴 노멀의 시대에 공동체의 모습은 이와 같이 연결됐으나 다시 단절되고, 단절된 듯 보이나 또다시 연결되는 점멸식 관계에 기반한 형태일 지도 모른다. 그것이 공동체가 아니라고 말하더라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는 이미 그런 형태로 존재한다. 그것을 공동체라 부르던 또 다른 용어로 규정하던 그런 독특한 특성을 띄는 사람들의 그룹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공동체가 갖는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방식의 공동체기금을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특성이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첫번 째는 빛처럼 빠른 ‘광속성’이다. 상기한 떡볶이 기금처럼 생각나면 바로 기획하고 즉시 실행한다. 빠른 실행과 빠른 결과의 정리 및 공유가 핵심이다. 승인권을 가진 누군가의 결재를 기다릴 필요도 없고 함께 참여해달라고 다른 사람을 설득할 필요도 없다.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여 바로 실행한다.
두번 째는 깜빡이는 ‘점멸성’이다. 그들은 상시적 연결이 아닌 점멸식 연결을 선호하고 네트워크가 아닌 링크에 가깝지만 링크조차도 불안정해 보인다. 하지만 동의하는 이들과의 속도감 있는 실행력이 발휘될 때는 어느 때보다 긴밀하고 단단하게 결속된다.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면 다시 태풍 후 평온한 일상이 찾아오듯 자기 자리에서 무심한 듯 각자의 관심들을 깜빡이는 신호처럼 점멸하며 연결을 유지한다. 기금 또한 그렇게 일시적으로 운용됐다 주체도 없이 사라진다. 현 시대의 공동체의 개념으로 생각해보면 공동체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엄밀히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무엇보다 필요할 때 기꺼이 행동한다. 공동체가 갖추어야할 요건들을 일정 부분 갖춘 셈이다.
마지막으로 신뢰를 넘어선 ‘맹목성’이다. 어떻게 보면 무엇보다 중요한 ‘돈’을 모아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은 받는 사람을 꼭 믿을 필요는 없다. 즉 내가 옳다고 믿고 필요하다고 믿으니 주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떻게 쓰던 거짓말을 하던 상관없다. 참여자들은 그 선의의 실행에 동의하고 선택했으며 후회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기저에는 물론 선한 의도대로 쓰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에 대한 추호의 의심도 잘못된 결과가 오리라는 불온한 생각도 전혀 하지 않는다. 맹목적인 태도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 이 같은 특성은 먼저 언급된 ‘광속성’을 가능하게 하고 복잡한 기준없이 비제도적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앞서 열거한 특성들이 모두 좋거나 옳은 것은 아니다. 조건에 따라 이와 같은 특성이 반영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또한 이 특성이 반영된 공동체 기금이 꼭 필요하다고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급변하는 시기에 인류 최악의 생존전쟁을 치르고 있는 지금, 우리는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서로 나누고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받아들여야한다. 결국 공동체 기금의 원형에 위와 같은 혹은 또 다른 새로운 방식이 결합된 과도기적 형태가 필연적으로 나타날 것이며 이후 시대와 세대에 적합한 공동체기금의 형태가 만들어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고전적 방식의 공동체기금의 틀에 맞춰 새로운 기금을 운용할 체계를 세우고 책임질 사람들을 모으기보다는 변화하는 세대들의 공동체 특성에 맞춘 새로운 방식을 수용하고 그에 따른 문제들을 극복하여 완성시키겠다는 무모한 상상이 아닐까.
2020. 8. 14. 성북 코로나19 공동체 공론장 '크리킨디는 왜 떡볶이를 만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