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은 어깨와 경직된 입술. 언젠가부터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온 몸에 잔뜩 긴장한 채로 매일매일을 살고 있었다. 마치 마사이 부족이 전투 태세를 취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주변을 살폈고 내가 지금 어떤 말을 해야 적절한지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행동하길 바라는지 매 순간 검열했다. 물론 좋은 점도 있었다. 어딜 가든 빠릿빠릿하고 영민한 사람으로 인식됐고 크게 튀지 않는 사람으로 어느 자리에나 무난하게 어울릴 수 있었다.
겨울 휴가를 내고 태국 남부의 피피섬에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갔다. 앞으로도 가보고 싶은 스팟이 많았기에 일차적으로 오픈워터 자격증을 따는 것이 목표였다.
시작부터 험난한 여정이었다. 에어탱크와 호흡기에만 의존해 바다 속에 들어가는 것부터 어려웠다. 긴장이 되면서 몸과 마음은 더 위축됐다. '전투 태세를 풀고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자.' 그렇게 마음을 먹어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평소와 같았다.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어느 순간 빈틈이 보일까봐, 그래서 내가 숨기고 싶던 내 단점들이 와르르 쏟아질까봐 무서웠다. 나는 언제 어디서든 완벽하게 준비된 사람이어야 했다.
첫 날 다이빙한 바이킹 동굴 인근
그러나 필사적인 노력으로도 안되는 것이 있다.
보트 다이빙을 나간 이틀 내내 물고기처럼 바다를 휘젓던 버디와 다이빙 선생님, 처음 보는 낯선 직원들 앞에서 나는 몇 번이고 토했다. 심한 배멀미였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때까지 토하고 나면 온 몸에 기운이 빠져서 엔진룸 위에 누워 쉬었다. 수트도 제대로 벗지 못하고 퉁퉁 부어 널부러져있는 내 모습이 추하고 실망스러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나 싶었다. 누가 떠민 것도 아닌데, 이건 고작 눈썹을 그리지 않고 모나리자처럼 다닌다거나 다리에 있는 흉터를 억지로 가리지 않는다거나 하는 차원의 '자연스러움'이 아니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인간의 존엄성마저 위협 받는 것 같았다. 그토록 지키고 싶던 체면이고 이미지고 다 모르겠고 그저 따뜻하고 움직임이 없는 곳에서 가만히 누워 계속계속 쉬고 싶었다.
사람들은 으레 어떤 일이 잘 풀릴 때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라는 말을 한다. 애써 거슬러 헤엄치지 않아도 원래부터 그렇게 될 일처럼 되었다는 것일 테다. 마치 밤이 지나고 아침이 찾아오는 것처럼, 낙엽이 떨어지고 겨울이 오지만 또다시 소생하는 봄이 오는 것처럼. 아... 그러나 나에게 다이빙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15미터 가량 내려갔을 때 꼬리가 긴 가오리를 보고 신나서 열심히 따라갔는데 유영하면서 시야가 흔들리다 보니 간신히 참고 있던 멀미가 다시 치솟았다. 울긋불긋 찬란한 꽃산호들도 옹기종기 모인 니모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레귤레이터로 겨우 몇 차례 내뱉다가 괴로움에 눈물이 줄줄 흘러서 결국 올라가자고 사인을 보냈다.
그때 그 참담한 기분은 말로 다 하지 못한다. 남들에겐 너무 쉬운 일인데 내겐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영역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큰 일로 만들지 말라
따뜻한 엔진룸 위에서 한 숨 잔 뒤에 누군가 갖다놓은 수박을 먹었더니 몸도 마음도 한 결 나아졌다. 언젠가부터 내게 닥치는 모든 일들에 다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일은 그냥 손을 놓아버리겠다는 의지다. 생각해보면 날 괴롭게 하던 상당히 많은 일들이 그랬다. 스쿠버다이빙은 물론이고, 회사를 옮기는 것이나 직장 동료를 선택하는 일, 좀처럼 풀리지 않던 문제들과 답이 나오지 않던 고민들. 선택은 두 가지다. 그만두거나, 참고 받아들이고 될 때까지 그냥 묵묵히 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류시화 선생님의 시 중에 '그것을 그렇게 큰 일로 만들지 말라' 는 얘기가 있다. 불행한 사건이라도 그것을 스스로 더 크게 확대시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는 것이다. 모두 지나가는 일이고 나의 일부일 뿐 전부가 아니니까.
일주일 가까이 나를 괴롭히던 바다에서 벗어나 해먹에 몸을 뉘였다. 해먹이란 도통 어디에 힘을 실어야 할지 알 수가 없는 물건이다. 일반 의자에 앉듯이 엉덩이에 중심을 실으면 그 부분만 비죽 튀어나와 우스꽝스럽고 불편한 모양이 된다. 온 몸에 힘을 빼고 의자에 사지를 온전히 맡겨야 자연스레 흔들리면서 안정을 찾아가는 것이다.
나는 고작 해먹에 앉으면서도 몸에서 힘을 빼기가 어려웠다. 잘 되지 않으면 심호흡을 해본다. 의식적으로 몸통을 부풀리고 다시 내쉬면서 경직돼 있는 어깨와 턱, 온 몸을 다시 점검한다. 시간이 다소 걸렸지만 몇 번의 숨을 내쉰 후 평화가 찾아왔다. 일주일만에 드디어 제 자리를 찾은 기분이었다고 하면...다이빙 선생님이 서운하려나..
정말 행복해보인다 ㅎㅎㅎㅎㅎ
물론 나는 오픈워터 자격증을 땄다. 괜한 탓을 하거나 투덜거리지도 않는다. 앞으로도 전 세계 곳곳의 바다를 계속 탐험할 것이다. 바다 거북을 만나 함께 헤엄치고 싶고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상이 끝없이 궁금하니까. 자연스러운 내 모습으로 그렇게 물살을 거스르다보면 언젠가 나도 해파리처럼 편안하게 유영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