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귀소본능, 나는 출근본능

by RUKUNDO

취업을 하고, 월급을 받는 직장인에게

아침은 곧 출근이고, 출근은 곧 아침이다.

그래서 그 시간에 벌어지는 행동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눈을 뜨고 몸은 움직이지만, 별다른 의미는 없다.


무의식의 시간이다.

그럼에도 행선지는 정확하다.
그것이 곧 출근이며, 직장인의 아침이다.


기본 설정 알람 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알람을 끄고, 문 밖을 나설 준비를 한다.
세상에서 가장 효율적인 움직임이 시작된다.

이불을 개고, 씻고, 가방을 챙긴다.
핵심은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직장인의 아침이다.


갓생이 유행하던 시절의 삶도 다르지 않다.

직장인에게 갓생이란 잘 짜인 루틴에 하나의 블록만 더해지는 것이다.

문 밖을 나서 향하는 첫 번째 목적지가 바뀔 뿐이다.

잠깐의 경유지가 생긴 것이다.


20대에 술을 마시며 잘 훈련된 사람은 만취해도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그것을 ‘귀소본능’이라 부른다.

직장인에게 출근이 그렇다.
아무리 슬퍼도, 아무리 아파도, 아무리 피곤해도,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늘 정시에 회사에 도착한다.
그것이 바로 ‘출근본능’이다.


요즘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고들 한다.
몇몇 선진 기업은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하기도 한단다.

혹은 출근 시간과 날짜를 지정하지 않은 방식도 도입했다고 한다.

그런 선진화된 회사를 나는 경험해보지 못했다.

(어릴 때 공부를 좀 열심히 할 걸 그랬다. )


내가 다니는 회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아주 보통의 회사다.

이런 우리 회사에도 신형 근무제도가 있다.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유연 근무제도는 출퇴근시간이 자유롭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9시부터 18시로 정형화된 출퇴근시간을

업무특성 또는 개인의 일정에 맞게 조정한다는 말이다.

대한민국 보통회사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유연함이란,

출근 시간을 약간 늦추거나 늦추는 것이다.

결국, 달라지는 것은 없다.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절의 일이다.
직장인의 삶에 처음으로 ‘아프면 쉰다’는 개념이 공식적으로 도입되었다.

전 세계가 과도기를 겪었지만,

가장 혼란스러웠던 건 아마도 회사원이었을 것이다.

코로나 말기에 들어서야 진단 키트를 통한 ‘아프다’의 정의가 내려졌고,
그전까지는 모든 것이 모호했다.

초기에는 ‘아프다’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또 그걸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지 몰라 직장 내 2차 감염이 속출했다.

뉴스는 이들을 전염병을 퍼뜨린 불편한 사람으로 그려냈지만,

그들에게 잘못은 없었다.

그들은 그저 입력값 그대로, 출근했을 뿐이다.

문제는 바이러스와 늦게 개발된 키트와 느린 정책이었다.


비가 많이 오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집 근처 하천이 범람했습니다”라는 재난 문자가 아침을 깨웠다.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출근을 위한 대체 경로를 찾는 것.

인터넷 지도가 알려준 길을 따라 회사를 향했고,

도착해 보니 이미 절반 이상이 자리에 있었다.

집 앞 하천뿐 아니라,

서울을 가로지르는 동부간선도로까지 침수됐다고 했는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하천이 범람했는데도 출근한 내가, 출근해 있던 그들이,

그리고 이 나라가 궁금해졌다.
아마 한강이 넘쳐도 이 사람들은 출근할 것이다.
보트를 타든 헤엄을 치든.

출근하고 휴가를 내고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작년 겨울, 야밤에 계엄령이 터져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그 혼란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위대한 부모님들은 교육부에 전화해 물었단다.
“내일 등교는 하나요?”


그 뉴스를 본 직장인들은 실소를 터뜨렸다.

물어볼 것도 없다.
“당연히 출근은 해야지.”


이것은 책임감에서 비롯된 행동일까.
아니면 무의식 깊숙이 각인된 훈련의 결과일까.


출근은 때로 책임감처럼 보이고, 때로는 관성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가장 정확한 이름은 아마도 이것일 것이다.


출근본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