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門)
1. (명사) 드나들거나 물건을 넣었다 꺼냈다 하기 위하여 틔워 놓은 곳.
또는 그곳에 달아 놓고 여닫게 만든 시설.
2. (명사) 조선 시대에, 서울에 있던 네 대문.
동쪽의 흥인지문, 서쪽의 돈의문, 남쪽의 숭례문, 북쪽의 숙정문을 이른다.
3. (명사) 축구나 하키 따위에서, 공을 넣어 득점하게 되어 있는 문.
캐나다 퀘벡에는 한국인들만 유난히 줄 서서 인증샷을 남기는 곳이 있다고 한다.
드라마 <도깨비>에 나오는, 퀘벡과 한국을 이어주는 그 빨간 문 때문이다. 그
문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도깨비의 신묘한 능력과 로맨스의 시작이었다 정도로만 정리해두자.
만화영화 <도라에몽>에도 문이 하나 나온다.
도라에몽의 주머니에서 꺼내는 수많은 비밀도구 중, 내가 단연 가장 좋아하는 물건은 ‘어디로든 문’이다. 가고 싶은 장소를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하면, 문을 열고 바로 그곳으로 갈 수 있다.생각할수록 완벽하다. 지금도 정말 갖고 싶은 물건 1순위다.
아이들이 보는 만화나 어른들이 보는 드라마에도 등장하는 능력.
말도 안되지만, 모두가 한 번쯤은 바랬던 마법같은 능력.
만약 단 한 번,초능력을 선택할 기회가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고를 능력.
어디로든 자유롭게 이동하는 그 능력이다.
내가 가고싶은 곳은 이렇다.
적당한 바람이 부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햇빛은 너무 따갑지 않게 비추고, 구름은 이곳저곳에 그늘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커다랗고 포근한 나무가 있고,
그 아래에는 내가 좋아하는 이들이 앉아있으면 좋겠다.
서로 무겁지 않은 담소를 나누며 편안한 분위기를 즐겼으면 한다.
내가 생각하는 천국과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하루에도 수십번 문을 여닫는다.
아무리 열어도 내가 가고싶은곳에 닿진 않는다.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연다.
편안하고 포근했던 이불을 떠나 피곤한 일상으로 가는 문이다.
의식없이 이것저것 챙겨 밖에 나갈 준비를 마친다.
집문을 나서는 순간 오늘의 날씨를 느껴본다.
무사무탈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린 엘레베이터문으로 들어간다.
차 문을 여는 순간 하루가 시작된다.
자동차는 중립적인 공간이다.
변신을 위한 장소같기도 하다. DMZ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 안에서 만큼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문 밖에서 그냥 평범한 사람1 정도였다면, 차 안에서는 그냥 존재하는 생명체다.
행선지에 도착해 다시 문을 열면 그제야 나에게 역할을 부여된다.
밍기적거리는 게 일상이 됐다.
침대안은 당연하고, 주차장에도 꽤 오랜시간을 머문다.
집 앞 주차장에선 음악을 들을지,
오디오북을 들을지 고민하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요즘은 오디오북이 좋다.
대부분 어떤 책을 들을지 고르다 보면 시간이 저멀리 달아나있다.
회사에 도착해서도 바로 내리지 못한다.
책의 뒷부분을 더 듣고싶기도 하고,
차 안에서 느껴지는 無의 감각이 좋기 때문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아무것도 안해도 되는 그 시간이 좋다.
다른이유도 있다.
출근 시간이 비슷한 상사때문이다.
서로의 차를 알아보지만 굳이 대면하고 싶진않다.
그 분도 그런 생각인 것 같다. 유리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대치하는 모습.
그래도 차에 머무를 시간을 존중해주는 그분이 싫진 않다.
물론, 다른 곳에 주차해주시면 더 좋긴 하겠지만.
그렇게 도착한 행선지에서 문을 열면 나는 ‘루쿤도 대리’가 된다.
가끔은 ‘루쿤도 감독’이 되기도 한다.
감독도 싫고, 대리도 싫다. 그냥 루쿤도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채워지는 통장을 위해, 나는 매일 감투를 쓴다.
아니, 써야만 한다.
이왕 쓰는 거니, 그 감투에 걸맞는 사람이면 좋겠다.
허투루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감투값, 월급값은 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숨을 크게 들이쉰다.
문을 열고, 오늘도 출근한다.
퇴근길이 조금은 보람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