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 54조(휴게)]
① 사용자는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에는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주어야 한다.
② 휴게시간은 근로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법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근로자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간이 있다고. 대부분의 회사원은 하루에 8시간 정도 근무를 하니, 공식적으로 1시간 이상은 쉴 수 있다. 아니 쉬어야만 한다. 현실은 법을 완벽히 빗겨나가진 않지만, 완벽히 지켜주지도 않는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방법으로 쉬고 있다. 조직의 효율적인 운용을 위하여 ‘자유’는 통제된다. 자유를 침해하는 주제에 ‘너를 위해서도 좋다. 너도 필요한 시간이다.’라며 설득력도 갖춘다. 그것을 우리는 점심시간이라고 부른다. 역시 회사는 위대하다.
출근과 동시에 고민이 시작된다.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사내 식당으로 갈까, 친한 동료들과 외식을 갈까, 밥도 관두고 취미생활이라도 해볼까. 고민은 짧고, 선택지는 다양하지 않다. 그럼에도 매일 치열하게 고민한다. 먹어야 버틴다. 지금도, 오늘도, 내일도.
성경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라고 말한다. 그러나 직장인의 점심 앞에서 이 말은 예외가 허용되야만 한다. 점심시간은 직장인이 유일하게 숨을 쉬는 시간이다. 오전을 버틴 우리는 이 시간에 다시 오후를 살아갈 연료를 채운다. 단순히 한 끼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이 짧은 시간은 잠시 개인이 되고, 자아를 찾고, ‘사람’이 되는 시간인 것이다.
시대가 변해 점심을 활용해 회식을 하는 경우가 늘었다. 조직문화 개선의 일환이며, 일과 가정의 양립을 하기 위한 완벽한 대안이라며 자화자찬을 한다. 모든 회식이 그렇지만, 점심에 잡히는 것은 피하기가 더 어렵다. 열린 조직문화를 만들었다는 상사들의 자부심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편하게 해’라는 말을 골백번해도 의미가 없다. 부서가 모이면 눈에 보이는 직급이 존재한다. 식당에 가서도 알 수 있다. 부장님이 수저를 놓으시거나, 반찬 리필을 요청하는 상사는 없다. 아무리 편한 부서여도, 유쾌한 사람들이 많은 조직이어도, 회사 밖에서 모이면 불편하다. 사적인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식은 업무의 연속이라고 한다. 그 안에서의 일이 결재와 중요한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회식이 필요한 순간은 분명히 있다. 회식의 필요성과 부당함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아침을 버티고, 오후시간을 시작하게 하는 직장인의 유일한 휴게시간을 침해당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싶은 것이다.
조직문화는 점심시간까지 확장된다.
개인의 시간이 침해될수록, 조직은 ‘소통’이라 부른다.
점심시간조차 지켜지지 않는 곳에서, 우리는 오늘도 ‘자율’을 배운다. 웃기지만, 누구도 감히 웃지 않는다. 오늘도 직장인은 자유를 보장받는다. 단, 모두가 함께 쉬는 동일한 시간에, 모두가 같은 장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