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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Dec 08. 2020

허약체질은 어떻게 마라톤을 뛸 수 있었나

초등학생 오래달리기 선수 생활에서 마라톤까지

나는 선천적으로 체형이 좋거나 골격이 좋은 편은 아니다. 알레르기성 비염도 달고 사는 허약 체질이다. 어렸을 때 친구들보다 작은 키와 몸집에 콤플렉스가 있었다. 영화에서 보면 꼭 몸집 작은 아이들이 괴롭힘을 받다가 무술을 열심히 연마해서 복수하는 장면들이 있다. 뭐, 그정도로 괴롭힘을 받진 않았지만 주변에 나를 괴롭히고 얕잡아보는 친구들은 늘 있었다. 꾸준히 운동을 해온 탓에 깡다구는 있는 편이었고 그런 상황을 피하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 싸움으로 번졌고 대부분 이겼고 가끔 졌다.


고등학생 이후의 나를 만난 사람들은 나에 대해 건강한 이미지를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몸은 타고난 게 아니다. 철저히 후천적인 노력으로 가꾼 성실하고 정직한 몸이다. 내게 운동은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과정이자 몸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가꾸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이 허약체질은 살면서 수많은 운동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 중 첫번째 이야기는 오래 달리기에 관한 이야기다.

 

흠흠 파, 흠흠 파


오래 달리기 코치님이 알려주신 호흡법이었다. 나는 초등학생 때 육상부였다. 종목은 1,500m 오래 달리기. 단순히 생각하면 오래 달리기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종목이다. 거의 비슷한 속도로 오랜 시간 뛰기만 하고 뭔가 주목할 만한 장면이 연출되지 않는다. 멀리 뛰기는 폭발적인 속도로 달려와 땅을 박차고 하늘을 날아 모래를 흩뿌리며 착지한다. 100m 달리기는 총소리와 함께 스타트를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마지막 도착점에 도착하기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기승전결이 있다. 반면 오래달리기는 출발할 때도 서두르는 사람 없고 도착할 때도 뭔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지루해 보이는 오래 달리기 선수를 왜 했던 걸까.




육상 종목별로 각각의 특징이 있지만 오래 달리기는 다른 종목과 달리 조금 특별한 면이 있다. 다른 종목들은 모두 선천적으로 타고난 신체능력이 크게 영향을 끼치는 종목들이다. 100m 달리기, 멀리 뛰기, 높이 뛰기, 투포환. 타고난 순발력이나 근력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신체 능력은 향상할 수는 있지만 한계가 있다. 하지만 오래 달리기는 다르다. 오래 달리기는 근지구력과 심폐지구력을 필요로 하는데 훈련 정도에 따라 향상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는 종목이다. 누구나 훈련하면 실력이 느는 게 눈으로 보이는 종목이고 노력이 성과로 나타나는 정직한 종목이다. 아마도 나는 이 정직함이라는 매력에 빠졌던 게 아닐까. 선천적으로 뛰어나지 않은 신체능력에 부모님을 탓하거나, 훈련의 질을 결정하는 장비나 시설을 탓할 수 없다. 오래 달리기 선수의 성적은 오로지 훈련하지 않은 게으른 자신을 탓해야 한다.


반면 오래 달리기는 고통스럽다. 쉽게 생각하면 후반부로 갈수록 힘들 것 같은데 그렇지만은 않다. 나는 이상하게 첫 번째 바퀴를 뛸 때 힘들었다. 몸이 적응하고서는 괜찮아졌다가 페이스 유지를 위해 후반부에 체력을 좀 당겨 쓰곤 했는데 그때 힘들었다. 그러다 목표 시간에 맞추려고 마지막 바퀴에는 전력 질주를 하곤 했는데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숨이 차오르고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은 다 열려 산소를 흡입하느라, 땀을 배출하느라 바빠진다. 심장은 쿵쾅거리고 다리는 후들거린다.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묘하게 쾌감이 느껴진다. 목표시간을 달성했다는 뿌듯함도 있지만 몸에 전해지는 그 고통 자체가 쾌감으로 느껴지곤 했다. 변태 같아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이다. 분명히 힘들었지만 이런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매번 결승점에 도착했고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오래 달리기 선수 생활을 했다.




육상부를 하면서 다져진 심폐지구력 덕분일까. 나는 군대에서도 잘 뛰었다. (군대 이야기네, 미안합니다.) 훈련소에는 300명 정도 되는 훈련생이 있다. 매일 아침 상의를 탈의하고 (미안합니다) 구보를 했고 일주일에 한 번 체력측정을 했다. 나는 중대에서 1등, 훈련소에서는 2등이었다. 1등은 운동선수 출신 훈련생이었다. 나는 그저 '잘 뛴다는' 이유로 중대장 추천을 받아 사단장 표창장을 받았다. 아니, 이게 웬 떡. 표창장 덕에 3박 4일 포상휴가도 받을 수 있었다. 3km를 12분 정도에 달렸다. 남들보다 몇 분, 몇 초 앞서서 들어왔는데 3박 4일 자유가 생겼다.


그렇게 내 삶에서 오래 달리기에 대한 끈이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함께 했다. 그러다가 더 늙기 전에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해보자고 결심했다. 동아마라톤에 접수하고 한 10일 정도 집 근처 운동장 트랙을 몇 바퀴 도는 정도의 연습을 했다. '두다리가 땅바닥에 붙어있으면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죽기야 하겠어.' 그땐 몰랐다. 젊음이라는 무기로 객기를 부렸다는 걸. 비극이자 희극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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