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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Dec 30. 2020

올해는 A+인가요?

시험 보고 평가받는 삶에 대하여

수능에 내 인생 20년을 갈아 넣었다. 그런데 '갈아 넣었다'라는 표현을 적으면서도 멈칫하게 된다. 아마도 수능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문장을 쓰는 데 성적과 같은 자격 따위는 따지지 않으니 참 다행이다. 모두가 그렇듯 나도 20년간 긁어온 수능 복권이 '대박'이길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대부분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쪽박이었다. 수능은 쪽박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수시 모집에 지원하여 합격했다. 면접을 봤고 수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입학 후에도 시험을 비롯해 나를 평가하는 방법은 더욱 다양해졌다. 전공 특성상 매주 'Quiz'라는 쪽지시험을 봤다. TV에 나오는 퀴즈 프로그램을 상상하면 안 된다. 매주 중간고사에 나올 법한 수학 증명 문제를 3문제 많게는 10문제를 풀었다. 잦은 시험은 나를 긴장감으로부터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나쁜 점수를 받아도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는 걸 일찍부터 깨달았다. 퀴즈 점수는 차곡차곡 쌓여 학기가 끝나면 알파벳 하나를 남겼다. 조별과제, 쪽지시험, 프레젠테이션, 중간/기말고사로 만들어진 쳇바퀴에서 나는 매 학기 열심히 발을 굴렸다. 쳇바퀴에서 나오자 내 손에는 한 장의 졸업장과 성적표가 쥐어졌다. 학점 만점은 4.5점, 내 학점은 비밀. 졸업장과 학점은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에게 주어진 훈장 같았다.


ⓒ Unplash


취업을 준비하며 수십 군데에 자소서를 넣었다. 흔히 말하는 서류 광탈이 대부분이었고 운 좋게 인적성검사나 1,2차 면접 기회가 주어질 때도 있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적으로 서류, 1차 면접, 인성 검사, 최종 면접을 거쳐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간절히 바라던 취업을 이뤄냈지만 얼떨떨했다. 불합격 통지 이메일을 받고 무엇 때문에 떨어졌는지 몰랐던 것처럼 합격 통지서를 받고서도 무엇 때문에 합격했는지 몰랐다. 어쨌든 붙었으니 열심히 다닐 요량이었다. 운 좋게 취업을 했고 첫 연봉이 결정되었다. 시험으로부터 해방이었다. 열심히 매일 주어지는 일만 해치우면 되었다. 


하지만 회사에도 평가 제도는 있었다. 이름하여 MBO. MBA를 연상시키는 영어단어라 그럴싸해 보이지만, 막상 까 보면 특별한 게 없는 평가제도였다. 내가 다니던 회사 MBO는 수치로 계량된 평가가 가능한 항목과 계량이 가능하지 않은 정성 평가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나는 동료들과 비슷한 양의 업무를 처리했지만 손이 느린 탓에 수시로 야근을 했다. 안타깝게도 야근은 평가에 포함되지 않았나 보다. MBO 평가가 썩 좋지 못했다. 평가가 좋지 못했다는 건 다음 해 연봉 인상률이 낮다는 걸 의미했다. 낮은 평가 점수에 자존심을 구기는 마당에 돈도 덜 오른다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 Unplash 


나는 2번의 MBO 평가 이후 퇴사했다. 연봉 인상률이 낮아 홧김에 때려치운 건 아니었다. 천직을 찾아 모험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여러 고민 끝에 생전 경험해본 적 없는 건축업으로 이직했다. 이직을 위해 몇 개의 건축 회사 면접을 봤다.  


"전공이 수학인데 현장 일 하실 수 있겠어요?"

"경력이 있긴 하신데 건축업 경력은 하나도 없네요. 처음부터 배우셔야겠어요."

"나이가 적은 건 아니에요. 왜 좋은 직장 그만두고 현장 일을 하려고 하세요?"  


면접관 입장에서는 확인차 당연히 물어야 할 질문이었다. 하지만 경력도 없고 비전공자인 나는 그야말로 초식동물이었다. 회사마다 느낌은 조금씩 달랐지만 면접관들은 육식동물 같았다. 무서웠고 쪼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낮은 연봉 인상률이어도 상관없으니 이전 회사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도 했다.



건축업으로 이직 후에는 매일매일이 평가의 연속이었다. 매일 공사하는 범위와 양에 따라 성과가 확연히 보였다. 사수 혹은 소장에게 매일 평가받았다. 그래도 일은 정말 재밌었고 보람 있었다. 현장에서 일을 계속하다 보니 자격증이 필요했다. 현장관리인 선임에도 자격증이 필요했고 공사 규모에 따라 회사에서 요구하는 자격증이 있었다. 건축기사를 취득하려고 마음먹었는데 나는 건축기사 응시 요건에 해당되지 않았다. 건축 관련학과 학사 학위를 취득해야 했다. 산 너머 산이었다. 새벽부터 저녁까진 일을 하고 밤에는 노트북으로 사이버대학 강의를 들었다. 물론 가끔 노트북 강의는 틀어놓고 TV를 보기도 했다. 어찌 됐건 꾸역꾸역 학점을 채웠고 결국 건축공학 학위를 취득했다.


올해는 일을 하면서 건축기사 시험을 준비했다. 이왕 건축기사 공부를 시작한 거,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좀 더 힘을 내 기술직 공무원 시험도 병행하여 준비했다. 결국 올해는 건축기사 필기, 지방직 건축직 공무원, 건축직 군무원, 국가직 건축직 공무원, 건축기사 실기, 건설안전기사 필기시험까지 봤다. 연말에는 도시공학과 대학원에도 지원하여 영어 시험과 면접을 보고 왔다. 2020년은 정말 시험으로 불태웠다. 공부하고 자꾸 시험을 보다 보니 '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런데 덜컥 대학원에 합격했고 조만간 정말 '학생'으로 돌아갈 것 같다.


중고등학생 시절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대학생 시절에도 시험과 평가는 지속되었다. 직장인이 되고서도 평가 제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오히려 평가에 따르는 책임이 더욱 매섭게 느껴졌다. 매 순간이 시험이었고 평가였다. 어쩌면 나는 차라리 학생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걸까. 2021년에도 내가 직장인의 삶을 선택하든 대학원생의 삶을 선택하든 내 삶에서 평가와 시험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평가와 시험의 출구는 어디인가. 출구를 안다 해도 내겐 아직 이 시험과 평가 제도를 벗어날 용기가 없다. 시험을 통해 얻은 점수와 자격증이 주는 안정감을 부인할 수 없다. MBO 결과 알파벳 하나로 인해 연봉 인상률이 달라지면 내 감정도 롤러코스터를 타고 오르내렸다.


연말이라 어김없이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된다. 수많은 기억 속 사람과 사건이 뇌리를 스쳐간다. 올해 취득한 자격증과 점수가 떠오른다. 이것들은 얼굴이 없다. 반면 얼굴이 떠오르는 이들은 평가와 무관한 이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웃고 울고 화내고 서로를 위로했다. 나의 일 년, 올해는 A+인가?


p.s. 수능, 회사 MBO 모두 좋은 성적과 평가를 받아 까내리면 멋있었을 텐데 결과적으로 둘 다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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