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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Dec 24. 2020

불안의 시대를 산다는 것

<아저씨> 원빈에게 불안은 없었을까. 어떻게 오늘만   있었을까.    번도 오늘만 산적이 없다.  내일을 생각했고 그래서 불안했다. 내일이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 영화 아저씨 스틸컷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스무 살 이후로는 줄곧 불안이라는 감정을 수시로 느꼈다. 6년 간은 대학교와 군대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안정감을 주었다. 하지만 때때로 대학 졸업 이후의 삶이 명확히 그려지지 않아 불안함이 엄습했다. 매주 일요일 교회에 찾아가 신에게 확신을 달라고 기도했다. 신에게 기도하며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할 때는 세상이 다 내 뜻대로 될 것만 같았다. 불안했지만 희망도 샘솟는 시기였다.


대학 시절 틈만 나면 도서관에 갔다. 책에 빠져 살았다. 졸업 막바지엔 독서 생활을 포트폴리오로 만들어 온라인 서점에 지원했다.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었나 보다. 어쩌다 보니 온라인 서점에 입사하게 되었다. 다행히 졸업 후에도 어딘가에 소속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회사 이름을 대면 사람들은 회사와 관련한 자질구레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회사 이름 네 글자는 타인이 보기에, 그리고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안정감을 주었다.


1년이 채 안되었을 때였다. 회사에는 젊은 사람들밖에 없다는 걸 느꼈다. 50대 이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팀장, 부장급도 40대였다. 50대 이상의 어른은 꼭대기 층의 회장님과 임원진, 1층의 건물 관리인 그리고 층마다 청소하시는 미화원뿐이었다. 게다가 팀장급과 부장급의 상사들은 책임의 무게 때문이었는지 도통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퇴근하는 시간에도, 출근을 하는 시간에도 그 자리를 지켰다. 나는 스스로를 팀장이나 부장을 할 깜냥이 안된다고 생각했을뿐더러 만약 시켜준다 하더라도 붙박이 가구처럼 회사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 회사를 다니는 게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2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퇴사했다. 불안함을 견디지 못해 퇴사라는 아주 불안한 시도를 한 것이다.




기술이 밥 먹여준다는 소리를 어디선가 들었던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내 가슴에 남았나 보다. 건축업으로 이직했다. 불안함은 사라졌을까? 건축현장은 몸만 움직일 수 있다면 정년이 없다는 산업이었다. 새롭게 건축공학과 학위를 취득했고 건축기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웬만한 공구도 다룰 줄 알게 됐다. 하지만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른 종류의 불안함이 찾아왔다.


총 세 개의 회사를 거쳤는데 두 개의 회사에서는 건강에 대한 불안이었다. 첫 번째 회사에서는 몸살에 앓아누워 인생 처음으로 '링거'를 맞았다. 두 번째 회사에서는 짐을 가득 싣고 흔들거리는 1톤 트럭을 몰고 서울에서 용인까지 야간 운전을 했다. 기계는 사람 마음대로 작동되는 줄 알았는데 짐을 가득 실은 트럭은 속도를 조금만 내어도 휘청거렸다. 제 몸을 어찌할지 모르는 좀비 같았다. 아주 아찔한 경험이었다. 목숨을 건 운전에서 살아남자마자 나는 그 회사를 퇴사했다. 세 번째 회사는 폐업하여 나는 실직자 신세가 되었다. 이 시기에 견뎌야 하는 불안함은 내 몫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갓 결혼한 시기여서 아내도 불안해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데 불안함을 나누니 이분법 번식하는 플라나리아처럼 두 배가 되었다. 아내에게 참 미안했다.




2020년은 코로나로 인해 더욱 불안했다. 보이지 않는 사이에 감염되는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우리 사회의 불안함도 감염되었다.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했고 심지어 자살하는 이들도 증가했다. 코로나 덕분에 쉬는 기간도 있었고 재택근무를 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이참에 휴식을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마음먹은 대로 살아지지 않았다. 불안은 쉬지 않고 나를 흔들어댔다.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불안함처럼 나는 구직 사이트와 인터넷 카페를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모아놓은 돈도 있고 오늘과 내일 먹을 식량도 있지만 불안했다. 파스칼이 그랬던가. 상상력은 부정적인 생각을 확장하는 쪽으로 작용한다고. 미래가 자꾸 암울한 방향으로 상상되어 불안했다.


몇 년 전 허리 디스크 수술하고서도 일하는 엄마를 걱정하며 말했었다. 빚도 없고 아빠가 정년 없이 일할 수 있으니 제발 몸 망가뜨려가면서까지 일하지 말라고. 내 말이 끝나자 엄마는 말했다.


일을 하지 않는 게 더 힘들어


그 말이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된다. 쉴 시간이 없어서 못 쉬는 게 아니었다. 쉴 '여유'가 없었던 거다. 그 여유라는 게 돈일 수도 있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일 수도 있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여유가 없었던 거다.




나는 돈이 없어 여유가 없었고 또 불안했다. 둘 중 하나였다.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돈을 왕창 벌거나 끊임없이 찾아오는 불안을 잘 다뤄야만 했다. 나는 돈을 왕창 벌 자신이 없었다.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운동선수가 근육을 단련시키는 것처럼 불안을 다룰 내면의 근육을 키우기로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바꿀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였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결심을 매일 조금씩 되새겼다. 마음이라는 게 그랬다. 근육처럼 말랑말랑하다가도 불안함이 엄습하여 마음에 힘을 주면 이내 단단해졌다. 쉬는 기간이 주어지면 마음껏 쉬기로 마음먹었다. 영화도 보고 글도 쓰고 아내와 시답잖은 수다도 떨고 의미 없이 동네를 거닐어 보기도 했다. 당분간은 공부든 뭐든 먹고살기 위한 행동과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문득 만성비염을 안고 살아가기로 다짐했던 날이 떠오른다. 치료되지 않는 비염을 그냥 내 몸처럼 껴안아 살기로 한 날이다. 그러던 어느 날 깨닫고 보니 비염 증세는 거의 사라졌다. 불안이란 감정도 마찬가지 아닐까. 불안도 내 몸의 일부로 여겨 껴안고 받아들이면 어느새 불안함이 사라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 KBS2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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