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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Nov 25. 2020

절대 '야옹'하지 않는 고양이

우리 집 헬씨는 절대 야옹하지 않는다. 야옹 소리는 고양이가 인간에게 말할 때의 소리다. 고양이는 배가 고프거나 놀아달라거나, 즉 무언가 욕구를 표현할 때 야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헬씨는 허피스로 인한 구내염을 앓고 있고 위아래로 하나씩 두 개의 송곳니가 빠진 노령묘다. 그야말로 아픈 할머니다. 병원에서 10세 전후라고 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모두가 조그마한 모습에 아기 고양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고생 끝이라며 집으로 데려왔는데 이미 길에서 십 년을 살았다고 하니 기특하기도 하고 그간의 고단함이 상상되어 눈물이 핑 돌았었다. 이제 할머니 헬씨가 우리 집에 온지도 벌써 4개월이 되었다. 4개월이 되었지만 헬씨는 단 한 번도 야옹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소리를 내지 않는 건 아니었다.



헬씨는 우리 집에 온 그날부터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웠을 때, 즉 집 안 모든 빛과 소음이 사라지면 그때부터 헬씨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야옹 소리는 아니었다. '아항 앙 아항' 이런 소리였는데 아기가 엄마를 찾는 울음소리 같기도 했고 아플 때 신음 소리 같기도 했다. 어느 날은 현관문 앞에서 울었고 어느 날은 거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울었다. 옆 집에서 민원이 들어올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소리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나 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이도 많고 구내염 질환을 앓고 있어서 소리가 작아서 민원이 들어오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밤마다 들리는 헬씨 소리의 비밀을 풀어야만 했다. 울음소리가 지속된다면 민원이 들어올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헬씨가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했다. 먼저 고양이 관련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은 비밀을 풀어주지 못했다. 우리는 결국 만물박사가 모였다는 유튜브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유튜브에 가서 '밤마다 우는 고양이'를 검색했고 박사님들에게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우는 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는데 크게 요약하면 세 가지였다. 첫째, 발정 소리. 둘째, 아파서 내는 소리. 셋째, 입양한 지 얼마 안 된 고양이가 공간에 적응하지 못해 내는 소리.


헬씨는 세 가지 모두 해당될 수 있었다. 첫째,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정 소리일 수 있었다. 둘째, 구내염으로 인한 고통으로 인한 신음 소리일 수 있었다. 셋째, 십 년을 밖에서 살다가 실내에 처음 와서 적응하지 못해서 내는 소리일 수 있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라고 하더라도 당장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헬씨는 2.4kg 밖에 되지 않아 수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중성화 수술도 할 수 없었고 구내염 발치 수술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세 번째 이유이길 바랐고 헬씨가 적응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최대한 조심히, 애타는 마음으로 헬씨를 데려왔다. 반면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헬씨를 데려왔다 하더라도 헬씨 입장에서는 두 발로 걷는 거대한 동물에게 납치 당한 것과 다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완전히 새로운 장소에 왔고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했다. 그럼에도 밤마다 우는 이유가 적응하지 못해서 우는 소리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발정 때문일까? 구내염 때문일까?' 고민하며 다른 이유를 완전히 배제할 순 없었다. 우리가 고알못이라 헬씨가 우리에게 무언가 말하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침대에서 나와 히죽히죽 웃으며 헬씨에게 말을 걸었다.

배가 고파? 놀아줘? 어디 아파?


헬씨는 어떤 날은 후다닥 박스나 숨숨집으로 숨었고 또 어떤 날은 무서웠는지 울음소리를 그치고 우릴 빤히 쳐다보았다. 우리는 한 달 동안 헬씨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다행히 서투르고 부족한 집사와 함께 하면서도 헬씨는 잘 적응했고 더 이상 새벽에 울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밤마다 들리는 그 소리는 헬씨가 공간이 낯설어 내는 소리였다. 우리와 소통을 하기 위한 언어는 아니었다. 그렇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같은 초보 집사였다.


헬씨는 집에 적응하고서 자기만의 루틴을 만들었다. 가장 중요한 루틴은 하루에 3번 정도 아주 깊은 잠을 자는 것이다. 주로 아침에 한 번, 낮에 한 번, 밤에 한 번, 새벽에 한 번, 아주 깊게 잔다. 잠만 자는 거 아니냐고? 맞다. 하루에 정말 20시간 정도 자는 것 같다. 중간중간 밥을 먹고 창밖을 보는 시간이 깨어있는 유일한 시간인데 창밖을 보는 시간마저도 졸 때가 있다. 길에서 십 년 동안 못 잔 잠을 다 자는 것 같아, 무장해제한 채 잠자는 헬씨 모습을 보면 흐뭇해진다.


우리는 원목의자 밑에 아르르 침대를 마련해두었다. 숨는 장소를 좋아한대서 담요로 의자와 아르르 침대를 가려서 요새를 만들었다. 요즘 밤에는 양껏 식사한 후 화장실에 들러 소변을 보고, 챱챱 물을 마신 뒤 의자 밑 요새 속으로 사라진다. 밤에 이 장소로 가는 이유가 있다. 11월이 되어 안방에 보일러를 틀기도 하고 아르르 위에 극세사 보온 담요를 깔아 두어서 따뜻하기 때문이다. 똑똑한 녀석이다.




우리도 잠을 잘 시간이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집 안의 모든 조명이 꺼지고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어디선가 코 고는 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침대를 타고서 내 귀로 흘러들어온다. 옆 사람은 아니다. 범인은 헬씨다. 잠에 들기 전 어이없는 웃음과 함께 알 수 없는 따뜻함이 몰려오면서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어쩜 소리가 사람 코 고는 소리 같은지, 정감 가는 소리다. 듣고 있다 보면 괜스레 혼자 웃게 된다. 만약 내가 천국에 가게 되어 자장가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헬씨와 아내의 코 고는 소리를 선택할 것이다. (아직 아내 코 고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한편 길 위에서 10년 동안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매일 얕은 잠으로 하루를 보냈을 녀석을 상상하면 마음이 아려온다. 동시에 길고양이 친구들, 코삼이와 삼식이 그리고 예미를 떠올리게 된다. 얼마나 많은 길고양이들이 추운 겨울을 보낼까, 몸을 웅크리고 밤을 지새울까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좌: 밥을 달라 / 우: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


우리가 소통하는 방법

헬씨는 우리에게 소리 내어 말하지 않지만 표현한다. 배가 고프면 창문 턱에 앉아 몸을 창문 쪽이 아니라 거실 쪽으로 향해 우릴 쳐다보거나 식기 앞에 앉아 기다린다. 자기가 무섭거나 두렵다고 느낄 땐 눈을 피하고 눈을 깜빡거린다. 우리의 행동을 예의 주시하면서 우릴 경계할 땐 귀를 쫑긋 세우고 곁눈질한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헬씨의 표현은 그 정도다. 그 표현을 이제는 알아듣고 우리는 알아서 몸을 사리고 밥을 대령한다.


간혹 다른 집사들로부터 '우리 집 고양이는 수다쟁이야, 놀아달라고, 간식 달라고 야옹거려.'라는 말을 들으면 내심 부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이 건 어디까지나 내 욕심일 뿐이다. 헬씨를 데려올 때부터 몇 번이고 다짐했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기만 하면 더 바라는 게 없다. 겨울엔 따뜻하게, 여름엔 시원하게.'


일단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기 때문에 만족한다. 헬씨는 어떨지 모르겠다. 저녁마다 코 골고 자는 거 보면 나름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긴 한데 말이다. 아직까지 우리에게 적응하지 못했지만 집에는 완벽히 적응했다.


헬씨에게 궁금한 게 많아서 종종 말이 통했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면서도, 어차피 수많은 질문과 말들은  사랑을 담은 언어적 표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기에 현재 우리의 소통 방법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이 안 통하면 어떠냐, 사랑하면 됐지.



입양에 대한 고민을 담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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