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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Jul 31. 2020

헬씨(길고양이)는 입양을 원할까?

고양이의 자유 그리고 길고양이 입양

침을 길게 바닥까지 떨군 채 앉아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헬씨의 첫인상이었다. 헬씨 때문에 매일 다녔던 거리의 풍경이 달라졌다. 이제 더 이상 지나치던 하나의 거리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집'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사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되었다. 전처럼 동네 고양이 녀석들을 매일 만나지는 못한다. 주말과 평일 저녁에 시간을 내어 이전에 살던 동네를 찾아가 녀석들을 만난다. 조만간 입양할 헬씨를 위해서다. 코삼이는 다른 캣맘께서 올해 말에 입양하기로 하셨다. 헬씨만 데려오면 무거운 마음의 짐을 좀 내려놓을 수 있을듯하다. 우리는 몇 개월 전부터 헬씨 입양을 생각했다. 오랜 기간 계속 고민해왔다. 과연 우리가 헬씨를 입양하는 일이 옳은 일일까? 헬씨를 행복하게 하는 일일까?

입양은 정말 고양이를 위한 일일까?

헬씨는 아픈 길고양이다. 구내염으로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건식 사료는 입에도 안 댄다. 습식사료만 찾는다. 이마저도 입맛에 맞지 않으면 잘 먹지 않는 편이다. 사실 입에 댈 수 없는 상황이다. 구내염 때문에 씹기 어렵기 때문이다. 2~3년을 길 위에서 어떻게 버텼는지, 참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하다. 헬씨를 입양하게 되면 동물병원에서 한동안 치료를 받아야 한다. 몸 상태는 호전될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손을 타지도 않았던 헬씨를 캔넬에 넣어 병원을 자주 오가야 한다. 분명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는 불가피하다. 과연 헬씨에게 잘하는 일일까. 원하는 일일까. 헬씨에게 길은 세상의 전부다. 실내라는 공간은 생각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다. '가고 싶다' 혹은 '가기 싫다'라는 개념의 감정을 갖지 않을거라 판단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헬씨가 원하는 일인가는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입양이 잘하는 일이었는지, 잘못된 일이었는지는 훗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더 오래 사는 일이 중요한 일인 건가?

헬씨에게 병원을 오가는 일과 새로운 영역에서 적응하는 일은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하지만 몸상태는 호전될 것이다. 길 위에서 사는 것보다 더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래 사는 일이 헬씨에게 중요한 걸까? 자기의 집이라고 생각했던 길 위에서 자유롭게 지내는 것을 원하지 않을까? 과연 헬씨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순간에는 정말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하이디'가 되고 싶다.


입양을 결정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애초에 길고양이에게 약을 주고 습식사료를 주는 게 아니었다. 실수였다. 한 생명 살리겠다고 시작한 일은 결국 살리는 일에 끝나지 않았다.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와버렸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그 책임감이 싫지 않다. 헬씨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헬씨가 밥만 먹어주어도 나는 행복하다. 미소가 지어진다. 헬씨가 남은 묘생을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만약 이사하지 않았다면 입양하지 않았을 것이다. 매일 돌볼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사를 하게 되면 매일 챙겨줄 수가 없었다. 우리는 헬씨를 두고 갈 수 없었다. '길 위에서 태어났으니 자유롭게 살아.'라고 말하는 게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무의식 속에서 이 상황을 도피하려는 나름 세련된 핑계를 갖다 대는 건 아닌가 스스로를 의심했다. 입양하지 않으면 죄책감에 사로잡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입양은 헬씨를 위한 일이면서도 나를 위한 일이다. 이 것이 입양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입양을 섣불리 결정할 수 없게 한 요인이기도 했다. 한참 동안 내적으로 고심했다. 헬씨를 '자유'롭게 두는 게 아니라 '방치'하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동시에 고통스러워하는 헬씨의 모습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에 데려오려는 건 아닌지 갈등했기 때문이다.  


나는 헬씨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헬씨를 건강하게 그리고 좀 더 오래 살게 할 수 있다. 그 능력이란 게 뭐 별 게 아니다. 우리 집의 일부를 내어주고 (아, 집사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것처럼 헬씨의 집에 얹혀사는 신세가 될 지도..) 동물병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우면 된다. 딱 그 정도다.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일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옆에서 도울 수 있다고 확신했다. 오랜 시간 동안 나 자신을 설득해야만 했다. 길 위에서 더 이상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고, 더 이상 춥지 않아도 된다고, 더 이상 덥지 않아도 된다고.

 

이제 헬씨를 설득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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