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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Jul 24. 2020

복날, 명복을 빌다

명복을 비는 복날이 아니라 무사한 복날이 되길.

복날의 伏자는 ‘엎드리다’나 ‘굴복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人(사람 인) 자와 犬(개 견) 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이렇게 ‘개’를 그린 犬자에 人자가 결합한 伏자는 개가 사람 옆에 바짝 엎드려 복종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삼복더위라 하는 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에는 몸보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더운 날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몸보신을 하는 것은 좋지만 伏자에 犬자가 들어갔다고 해서 보신탕을 먹는 날을 의미하진 않는다. 이날은 엎어질 듯이 매우 더운 날이라는 뜻의 伏날이다.
(출처: <한자로드(路)>, 신동윤)
사진 출처: 뉴스1

오늘날 복날의 풍경

어렸을 적 계곡에서 친척들과 개고기를 먹었다. 냄새가 매우 불쾌했다. 그 이후로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그래도 복날이 되면 고향 친구들과 보신탕 식당으로 갔다. 나는 삼계탕을, 친구들은 보신탕을 시켜먹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서도 복날이 되면 직장동료들과 삼계탕을 먹었다. 이건 나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의 흔한 복날의 풍경이기도 하다. 점심에는 삼계탕을 먹고 저녁으로 삼겹살로 몸보신을 한다. 최근에는 줄어들었지만 몸보신을 이유로 여전히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있다.

출처: 네이버

복날의 유래와 의미

<사기>의 진기제 5장에는 “진덕 공 2년(기원전 679년)에 삼복 날에 제사를 지냈는데 성내 사대문에서 개를 잡아 충재를 막았다.  _<동국세시기>, 홍석모

개를 삶아 파를 넣고 푹 끓인 것을 구장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죽순과 고춧가루를 타고 밥을 말아서 시절 음식으로 먹는다. 이렇게 먹고 나서 땀을 흘리면 더위를 물리치고 허한 기운을 보충할 수 있다. _<동국세시기>, 홍석모

닭고기는 따뜻한 성질로 오장을 안정시키고 몸 저항력을 키워준다.  _<동의보감>, 허준    

실제로 개를 잡아 충재를 막는다는 건 하나의 제사였다. 주술 행위에 불과했다. 하지만 더위를 물리치고 몸을 보양하기 위해 개고기와 닭고기를 먹는 게 실제로 효능이 있긴 하다. 굳이 조선시대 자료가 아니어도 고기가 고단백 음식이라는 걸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복날 다시보기

우리는 전통을 답습하기도 하고 변형시키기도 한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거부하기도 한다. 복날은 어떠한가. 충재를 막기 위해 복날의 전통을 계승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미신이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이 여전히 복날 삼계탕과 보신탕을 먹는 이유는 무엇인가. '삼계탕을 먹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단순하다. 맛있기 때문이다. 팍팍한 일상을 이겨내기 위함이다. 전통이 변형되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는 문화로서 자리를 잡은 것이다.


복날 고기를 먹는 문화가 지속되어야만 하는가.  그래도 육류 식단으로 넘쳐나는 세상에 '복날엔  많은 육식을' 외칠 필요가 있을까. 오늘날처럼 먹을거리가 풍성했던 시기가 있었던가. 풍성을 넘어 넘치는 시기다. 먹거리가 부족했던 조선시대가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육식을 지향해야 하는지 생각해  필요가 있다. 육식은 단순히 기호성의 문제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먹히기도 전에 축사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아이들도 많다. 오른편엔 배설물이, 왼편엔 사체가 있다. 오늘날 축사의 풍경이다. 굳이 공장식 축산이 아니어도, 대다수의 생명들이 ‘먹히기위해 길러진다는 진실은 변함이 없다. 매해 복날이 되면 도살당하는 개체는 더욱 늘어난다. 우리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얻는  순간, 동시에 동물들은 이름도 없이 번호의 삶을 살아간다. 아니  깜짝할 사이에 죽는다.


육식을 부추기는  시스템에 우리 스스로의 제동이 없다면  착취와 고통의 시스템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육류 소비는 '동참하는 '이다. 복날의 문화는 농림축산검역본부 도축실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자료를 보면 여름 6~8, 특히 삼복이 있는 7월의 도축실적은 급증하는    있다. 올해 7 ‘도축실적 우리에게 달려있다.

출처: 농림축산검역본부 6월 도축실적 자료 (단위: 천수)


복날, 명복을 빌다

최근 비건 전문음식점들이 생기긴 했다. 하지만 비건 음식점은 '찾아서' 가야 하는 실정이다. 오히려 거리에서 고기 없는 식당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우리는 고기 없는 식사를 언제 해보았는가. 고기 없는 식탁의 풍경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복날에도 고기 먹는 문화를 지속시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묻고 싶다.


채식 지향의 삶이 개인의 선택이듯 육식도 선택이다. 양쪽 모두 서로에게 강요할  없다. 다만 제안하고 싶다. 복날만큼은, 복날 만이라도, 복날의  끼만이라도 육식을 멈출  없을까. 올해 7 농림축산검역본부의 ‘도축실적 낮아지도록 동참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우리의 참여가 '실적' 분명 영향을  것이다. 수많은 생명을 실은 지옥 열차는 달리고 있다. 지금  순간에도. 먹히기 위해. 입혀지기 위해. 종착지는 도살장이다.  


아울러 무분별한 육식은 인간에게도 해롭고 환경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이미 널리 알려진 과학적인 사실이다. 지구는 경고한다. 코로나를 비롯한 감염병을 통해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우리는 이 메시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연을 향한 인간의 폭력은 반드시 인간에게 돌아(復) 온다. 앞으로의 복날은 명복을 비는 복날이 아니라 무사한 복날이 되기를. 샐러드 한 상 푸짐하게 차려놓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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