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애니멀세이브 비질 활동 후기
2021년 1월 27일 나는 진실의 증인이 되었다. 그날 나는 도살 직전의 돼지들을 만났다. 돼지들은 도살장으로 들어갔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서울애니멀세이브에서 주최하는 비질에 다녀왔다. 비질(vigil)은 Animal Save Movement 단체에서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활동이다. 비질이란 단어가 다소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비질은 도살장 안을 들여다보는 활동은 아니다. 도살장이 위치한 장소에 찾아가 근처에서 대기하는 트럭에 실린 도살 직전의 동물을 만난다. '진실의 증인'이 되는 활동이다. 그렇다면 '어떤 진실'의 증인이 되는 걸까?
나는 오전 9시가 되지 않아 집을 나섰다. 하늘은 화창하고 맑았지만 겨울이라 찬바람이 불어 꽤 추웠다. 단단히 옷을 여매고 나왔다고 생각했는데도 음지에 가니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날씨였다. 돼지들이 생각났다. 어떤 돼지들을 만날지 모르니 당연히 돼지들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상상하는 돼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 추운 날 죽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축사를 나와 도살장으로 향하겠구나. 어디로 가는지 알지도 못한 채, 혹은 직감적으로 죽는다는 걸 안채로 생애 처음 맑은 공기를 마셔보겠구나. 엉엉 울면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으로 쳐다보겠지.'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중 눈물을 찔끔 흘렸다. 나의 비질은 도살장에 도착하는 시간이 아니라 집을 나서는 시간부터 시작되었다.
지하철과 광역버스를 갈아타고서 경기도 한 도살장에 도착했다. 12시 30분이었다. 3시간 30분 만에 도착했다. 도살장에 어떤 진실이 있기에 사람들은 도살장으로 향할까? 3~4시간이나 걸려 이곳에 와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도살장은 논과 차도들 사이에 덩그러니 있었다. 우리가 서있는 차도변에서 바라보면 왼편에는 돼지 도살장이, 오른편에는 소 도살장이 있었다. 우리는 돼지 도살장 부근 차도변에 서서 돼지들을 기다렸다. 우리가 선 곳으로부터 약 80미터 정도 떨어진 곳, 도살장 부지 안에는 계류장이 있었고 이미 먼저 도착한 트럭이 그곳에서 돼지를 내리고 있었다. 계류장은 도살 직전의 돼지들을 대기시키는 장소다. 잠시 후 다른 돼지들을 실은 트럭이 도착해 트럭은 차도변에 정차하여 잠시 대기하였다.
우리는 차도변에서 잠시 대기하는 트럭 안 돼지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도살장에 온 돼지들은 대략 6개월령 정도 되는데 호기심이 많고 활동량도 많은 시기다. 천방지축 어린아이를 상상하면 된다. 어떤 돼지인지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트럭 속에서 돼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자리가 좁거나 어디가 아픈 것 같았다. 간혹 바깥공기를 들이쉬며 자신을 쳐다보는 인간동물에게 호기심을 보이는 녀석들도 있었다. 작은 틈 사이로 코를 내밀며 킁킁거렸다.
함께 온 활동가들이 트럭 뒤에 바짝 붙어서 물을 주었다. 물을 받아마시는 게 익숙지 않은지 바닥에 고인 오물 가득한 물을 핥아마셨다. 축산물 위생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돼지는 도축 전 12시간 이상 굶겨야 한다. 육질 향상과 내장 적출, 폐기물 처리비용 감소 등 여러 이유로 굶긴다. 사람이 대장내시경을 할 때 장을 비우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 비질을 할 때에는 삶은 감자나 고구마를 주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물만 주고 있다. '빵빵!' 트럭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우리는 트럭에서 떨어졌다.
저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바쁘게 일하는, 공정한 도구다. 트럭은 돼지를 내려놓기 전에 무게를 재고 이후에 트럭은 소독 구간을 통과한다. 뿌연 안개 같은 소독약 사이로 트럭은 사라진다. 트럭은 계류장에 돼지를 하차시키고 빈 차가 되어 나온다. 그리고 빈 차 상태로 다시 무게를 잰다.
아마도 전후 무게 측정을 통해 일종의 계산을 하는 것 같다. 건축 일을 하면서 트럭에 실은 고철과 박스를 고물상에 가져다준 경험이 있다. 덕분에 돼지 계량이라는 일련의 과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박스와 고철이 재활용 과정을 통해 자원 순환이 되듯, 내 앞에 살아있던 돼지들도 계류장과 도축장을 통해 인간의 입 속에 들어간다. 처음부터 이 돼지들은 '몇 킬로그램'의 고깃덩어리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었다.
계류장에 하차한 이후에 돼지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나는 차도변에 서서 계류장에서 빈 차로 나오는 트럭을 허망하게 쳐다보았다. 트럭은 텅 비어있었다. 도로에는 수많은 승용차와 트럭들이 지나갔다. 고기를 운송하는 트럭들이 유난히 많았다. 차들이 많이 오가는 도로여서 꽤 시끄러운 곳이었지만 돼지의 비명소리는 자동차들의 소음을 비집고 들려왔다.
소 도살장으로 이동했다. 소는 돼지와 달리 2-3마리만 실은 1톤 트럭이 도축장에 찾아왔다. 누런 육우도 있었지만 이 날은 젖소로 불리는 얼룩 소가 유독 많았다. 젖소는 평생을 강제 임신과 출산과 착유의 삶을 살고 인간이 규정하는 '우유 생산능력'이 떨어지면 도살장에 온다.
젖소가 하차하는 중에 내리기 싫었는지 내려가기를 거부한 장면이 보였다. 직원으로 보이는 이가 막대기로 소를 밀어냈다. 책 <고기로 태어나서>에서도 이런 장면을 묘사했다. 활자로만 보던 진실을 눈으로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하루에 한 마리만 도축한다면 살살 달래서 내리게 하면 되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나 보다. 소를 실은 트럭들이 줄지어 들어온다. 어쨌든 직원들 입장에서는 소를 빨리 트럭에서 내리게 하는 게 일인 것이다.
한쪽에는 도살된 소들의 피부가 겹겹이 쌓여있었다. 지게차는 소의 피부를 열심히 트럭으로 날랐다. 천연 소가죽 100%의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쓰고 있는 가죽지갑과 가방의 가죽 손잡이도 아마 수북이 쌓인 피부 중 일부였고 언젠가는 살아있는 소의 피부였구나.'
소 도살장에서 소의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에도 돼지를 실은 트럭들은 끊임없이 돼지 도살장으로 들어갔다.
"돼지는 비명 빼고는 전부 쓸데가 있다"
- 업튼 싱클레어의 <정글>
도살장 앞에서는 비명 소리만을 들을 수 있었다. 도살장을 끼고서 조금만 걸어 돌아가면 축산물유통센터가 있었다. 1층에서는 비명소리를 제외한 모든 것이 있었다. 꼬챙이에 사체가 걸려 있다. 살점과 뼈, 내장이 가지런히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소의 머리가 댕강 잘려 있기도 하다. 소 머리 한가운데에는 총자국이 있었다. 한 개의 구멍만 있는 소의 머리도 있었고 두 개의 구멍이 있는 소의 머리도 있었다. 마치 도살장 옆에서 갓 잡았다는 걸 자랑이라도 하는 듯 말이다.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바닥은 핏물에 물들어 불그스름했다. 핏물이 튀지 않도록 조심히 걸어야만 했다. 한쪽에서는 잘해주겠다며 둘러보라고 호객 행위를, 한쪽에서는 계속 내장을 세척하거나 살점을 손질하고 있었다. 2층에는 식당이 있었다. 축산물유통센터에 위치한 식당이니 고기 전문 음식점이었다. "고기를 구워 드세요. 1人 4,000원" 식당 내엔 고기를 구워 먹는 손님들이 있었다.
내가 지금껏 먹어왔던 고기는 다 이런 과정을 거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속았다는 생각에 분노를 느꼈고 나 때문에 학살된 수많은 생명에게 미안했다. 당장이라도 영업을 금지시키기 위해 문이라도 걸어 잠그고 도살장 문이라도 닫아버리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음먹은 대로 했다가는 수갑을 차야하는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도살장과 유통센터 영업을 하루 막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돼지와 소를 실은 트럭은 도살장을 오갈 것이다. 나는 '이성적인' 인간이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외면하고 진실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인간동물이었다.
함께 온 시민들과 자리를 옮겼다. 인근 공원으로 이동해 마음을 나눴다. 참 아이러니한 지역이었다. 수많은 동물이 학살되고 버젓이 판매되고 있었고 차도 하나만 건너면 시민이 편안하게 이야기 나누며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이 있었다.
비질은 단순히 관람, 봉사, 체험 활동이 아니다. 트럭에 실린 돼지를 여러 덩어리로 보는 게 아니라 하나의 개체로 보고 느낀다. 우리는 도살장에서 사진을 찍고 그들의 숨을 느끼고 물을 주고 애도했다. 고통에 연대하려고 노력했지만 과연 그 게 연대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비질에서는 수많은 단어들이 머릿속을 헤매다 먼지처럼 흩어지는 순간이었다. 수많은 돼지가 트럭에 실려 도살장으로 들어갔다가 빈 차로 나오는 것처럼.
비질이라는 개념이 낯선 사람들을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비질은 어떤 특별한 종교의식과 같은 게 아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반려동물과 야생동물을 만난다. 때론 교감하고 도움을 주기도 위로를 받기도 한다. 다만 우리의 일상 속에서 동물과의 교감은 주로 밝은 면에서 이뤄진다. 비질은 착취당하는 동물의 현실을 직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착취당하는 동물이 있는 도살장으로 간다. 도살장이 극단적인 장소로 비칠 수 있는데 그렇지만은 않다. 도살장에서 죽은 동물의 사체는 여러 가공 과정을 통해 포장되어 우리에게 각종 상품으로 오기 때문이다. 극단은 없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도살 직전에 오물을 뒤집어쓴 돼지를 마주하는 일이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일일 수 있다. 고통을 마주하는 일이 괴롭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곳에서 돼지와 인간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희열을 맛보았다.
어둑한 밤이 되어서야 서울로 돌아왔다. 밤임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도시, 아무렇지도 않은 시민들의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무렇지 않게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는 내 모습마저도. 공허하고 무기력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가 남았다. 나는 그 날 똑똑히 보았다. 동물 홀로코스트 진실의 증인이 되었다.
비질은 이해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꼭 한 번 참여해보길 권합니다. 비질은 서울애니멀세이브(Seoul Animal Save)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울애니멀세이브의 임무는 모든 도살장을 지켜보며 모든 착취당하는 동물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비질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페이스북 서울애니멀세이브 계정(https://www.facebook.com/seoulanimalsave)으로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