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3일> 우보만리 - 공주 가축시장 72시간' 편을 리뷰
2021년은 소의 해이다. 사람들은 소처럼 우직하게 한 해를 살아보자고 다짐한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이번 설에는 더욱 많은 '한우'가 판매될 것 같다.
지난 1월 31일, <다큐멘터리 3일>은 '우보만리-공주 가축시장'편을 방영했다. 소를 키우고 판매하는 사람들을 밀착하여 관찰하고 취재한 편이었다. 그중 네 명의 농부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1. 한 마리의 소만 키우는 농부 할아버지
농부 할아버지는 집 앞에 작은 축사에서 소를 묶어두고 키웠다. 시멘트로 만든 여물통과 물통을 보니 예전 할머니 집이 생각났다. 20년 전 외할머니 집 마당 축사에는 소 한 마리가 있었다. 좁은 축사에 소를 가두어 묶어두고 키웠다. 그때 당시에는 불쌍하다는 생각도 없었고 소가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죽는지도 관심이 없었다. 소가 무서워서 소를 만져보거나 뭔가 찐한 교감을 해본 적도 없었다. 기다란 혀로 날름날름 여물을 먹는 게 신기해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여물을 먹여주었던 기억만 난다.
농부 할아버지는 소에게 미안함을 표했다. 다른 집은 풀어놓고 소를 먹이는데 자기 집 소는 평생을 붙들어 매어 놓고서 키우니 소가 약해지기 때문에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제작진은 어르신의 마음을 소가 알 것 같냐는 질문을 던졌다. 농부는 "그 건 소한테 물어봐야죠."라고 답했다. 우문현답이었다. 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살면서 수많은 소고기를 먹고 우유를 먹었는데 단 한 번도 소의 마음을 물어보거나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2. 자식 같은 소를 팔러 나온 농부의 눈물
해당 편에서 나오는 공주 가축시장에서는 경매를 통해 소를 판매하고 구매한다. 송아지는 한 달에 두 번, 소는 한 달에 두 번 경매된다. 그곳에서 처음 소를 판매하는 농부의 인터뷰도 있었다. 부부는 애써 키운 소를 우시장에 경매로 내놓았다. 아내 분은 소를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묶인 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셨다. 남편 분은 아침에 소를 트럭에 실을 때부터 이미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다. 제작진은 애써 키운 소를 보내는 마음이 어떤지 물었다. 아내 분은 "다년간 마음과 정성을 다해 키웠는데 아쉬운 가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돈을 떠나서 예뻐"라고 말했다. 제작진의 "자식 같아요?"라는 질문에 눈물이 송골송골 맺히더니 말 시키지 말라며 황급히 말문을 닫으셨다. 제작진은 멋쩍어하며 죄송하다고 했다. 자식처럼 키운 소를 눈물로 내다 파는 농부의 심정,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3. 잡아먹는 동물이지만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농부
가장 인상 깊었던 농부의 말이다.
"이것도 별로 좋은 직업이 아닌 것 같아요. 정성 들여서 키워서... 물론 잡아먹는 동물이지만 안 됐어요.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셨다. 목소리와 눈빛에서 농부의 진심이 전해져 마음이 아팠다. 농부들은 돈을 벌기 위해 소를 산다. 즉 팔기 위해 소를 구매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가 느끼는 존재, 동물이라는 사실을 소를 키우면서 인식하는 것 같았다.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소를 팔고 구매하고 도살장으로 보냈다. 비록 키우는 동안 소와 교감한다 하더라도 돈을 벌기 위해 키웠으니 결국엔 돈을 받고 판매했다. 돈을 버는 즐거움, 더 높은 금액으로 팔지 못하는 아쉬움, 자식처럼 키운 소를 팔아야만 하는 미안함. 이 복잡한 마음을 모두 느끼는 인간의 존재가 보였다.
4. 소를 팔아 땅을 사고 축사를 짓고 자식 아파트도 선물하겠다는 농부
공주 가축시장에서는 소를 파는 사람이 있기에 소를 사는 사람도 있다. 소를 산 농부의 이야기도 볼 수 있었다. 우시장에서 소를 사서 트럭에 실어 본인 축사에 운송하는 과정이 담겼다. 농부는 자신의 아버지가 소 한 마리로 축산업을 시작해 자신을 먹이고 키우고 학비까지 대주셨다고 했다. 농부는 자신도 소를 키워서 땅을 사고 축사도 넓혔다고 말했다. 자식들 결혼할 때 아파트라도 하나 장만해주고 싶다는 소망도 이야기했다.
농부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소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했다. 소를 키우고 팔고 돈을 버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내가 어떻게 농부들의 그 복잡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한편 만약 소가 인간처럼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존재였다면 사람들의 고마움과 미안함에 어떻게 답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다큐멘터리 3일>의 농부가 소를 키워서 파는 이야기는 여느 성인의 일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돈을 벌어서 먹고 자고 자식을 키우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있었다. '자식처럼 키운다'는 말이었다. 물론 애지중지하여 소를 키웠겠지만 그 누구도 자식을 키워서 팔지는 않기 때문이다.
공주 가축시장에 방문한 농부들은 '느끼는 존재로서의 동물' 소와 '117번 350만 원 상품' 소 가운데서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농부들은 소를 팔고 다시 구매하고 키워서 도살장으로 보낸다. 우리가 간편히 먹는 소고기는 농부들의 고뇌와 소의 무한한 고통의 대가였다.
소는 도살될 때에만 피를 흘리는 게 아니었다.
소는 트럭에 실려 운송된다. 닭이나 개처럼 체구가 작다면 케이지에 넣어 사람이 운반하겠지만 소는 그럴 수가 없다. 몸집이 크고 1톤에 가까운 소가 있을 정도로 무겁기 때문이다. 소의 머리와 뿔에 밧줄을 감는다. 우시장에 도착한 소는 배정받은 장소에 묶어 둔다. 워낙 힘이 세기도 하고 간혹 순순히 따라오지 않는 소들이 있다.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소가 날뛰며 이곳저곳을 누비기도 하고 달리는 소를 사람이 저지하다 보면 소는 우시장에 설치된 쇠봉에 부딪혀 피를 흘리기도 한다. 소는 도살될 때에만 피를 흘리는 게 아니었다.
화면 속 소는 피를 철철 흘렸고 나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눈물을 흘리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지금은 비록 육식을 하지 않지만 오랜 기간 육식을 해오면서 내가 먹었던 그 수많은 동물들의 고통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다음 생이 있어서 고기가 될 운명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죄를 씻을 수 있을 수 있는 걸까.
축사에서 우시장으로, 우시장에서 축사로 가는 소들도 있지만 우시장에서 도살장으로 가는 소들도 있다. 소는 바뀐 환경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곧 닥칠 운명을 미리 알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우시장을 떠나지 않으려고 했다. 네다섯 명이 붙어 소를 끌어보지만 소의 힘이 어찌나 강한지 끄떡없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결국엔 그 커다랗고 힘이 센 소도 인간의 통제 하에 트럭에 오른다. <다큐멘터리 3일>은 트럭에 오른 뒤 도살장으로 향하는 트럭의 뒷모습만을 보여주었다. 도살장의 이야기는 볼 수 없었다. 도살장의 진실은 따뜻하게 그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인간의 설명을 제거하면 소의 고통이 보인다
내레이션은 소를 '모든 걸 주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되었다. 모든 걸 주는 걸까 아니면 모든 걸 뺏는 걸까.
인간의 언어는 참 이기적이고 기만적이라고 생각했다. 입으로는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귀로는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다큐멘터리 3일> '우보만리-공주 가축시장 72시간'편은 인간의 기만적인 언어를 제거하고 봐야 한다. 자막과 내레이션 없이 보면 소가 보인다. 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소가 있다. 말을 안 듣고 도망가는 소가 아니라 자유를 원하는 소가 보인다. 고집 센 소가 아니라 가기 싫다고 표현하는 소가 보인다. 내레이션의 설명은 시청자의 눈을 가린다. 인간의 설명이 사라지면 소의 고통이 보이고 진실이 보인다.
<다큐멘터리 3일>의 프로그램 소개처럼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따뜻한 시각으로 담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실을 있는 그대로 알리는 '다큐멘터리' 본래 목적에 충실한 프로그램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간에게만 따뜻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비인간동물에게도 따뜻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주길 바라는 건 무리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