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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Feb 21. 2021

백신으로 살린 닭, 그 다음은 무엇인가요?

 동물권 단체 카라의 '백신 접종' 주장에 대한 단상

동물권 단체 카라(이하 카라)는 굴삭기가 닭을 내려 찍고 쓸어버리는 영상을 공개했다. 사회가 동물을 다루는 현실을 매우 상징적으로, 아니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카라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이 영상을 봤다.


얼마 전 화성시 산안마을에서 진행된 살처분 영상이었다. 이 영상은 한창 논란이 되었고 대다수 누리꾼들은 닭을 '죽이는 방법'에 분노하고 있다. 이에 대해 나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중요한 이야기는 뒷부분에 가서 하기로 하고 먼저 굴삭기 살처분이 이루어지게 된 배경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질식사되지 않은 닭을 트럭으로 옮기고 굴삭기로 닭을 내려찍고 쓸어버리는 영상의 갈무리 ⓒ 동물권 단체 카라 페이스북

왜 현장에서는 비인도적인 '굴삭기 망치질'을 고수하는 걸까?

살처분 지침을 살펴보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2018년 12월에 발표한 조류인플루엔자 긴급행동지침(이하 SOP)이 있었다. SOP 143페이지에 따르면 '살처분 방법은 사살, 전살, 약물사용, CO2가스, N2가스 등의 방법 가운데 현장에서 사용이 용이하고 신속 안전하게 완료할 수 있으며, 동물에게 고통이 적은 방법을 선택하여 적용'해야 한다. (사살: 총이나 활 따위로 죽임. 전살: 전기 도살.)


첫째, 현장에서 사용이 용이하고 신속하고 안전하게 완료할 수 있는 방법. 어쩌면 굴삭기 망치질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사용이 용이하고 '사람에게' 안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둘째, 동물에게 고통이 적은 방법. '고통이 적다'라는 지침은 상대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고통의 양은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있으나 마나 한 지침이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열거했지만 '등'이라는 말을 써두었기 때문에 사실상 어떤 방법으로 도살해도 지침을 벗어났다고 할 수 없다.


SBS 뉴스 '하루 20만 마리 묻다 보니…잔인한 살처분' 갈무리 ⓒ SBS 뉴스

왜 현장에서는 총을 사용한 도살 방법, 전기 도살법, 가스 질식법을 두고서 굴삭기 망치질로 닭들을 도살하는 걸까? SOP에 따르면 24시간 내로 농장 내에서 살처분을 완료하고 72시간 내에 사체를 폐기해야 한다. 24시간 내로 살처분하라는 지침은 사실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살처분하라는 말과 같다. 수많은 닭을 총, 약물, 전기봉으로 개별적으로 도살하는 방법은 현실적이지 않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하는 방법이 질식사 방법인데 문제는 질식법으로 살아남는 닭이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에 의하면 굴삭기 망치질 이전에 질식법을 실시했지만 살아 있는 닭이 많다고 밝혔다. 살아남는 닭을 굴삭기로 내려찍어 죽이는 것이다. 


하지만 굴삭기 기사라고,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이라고 닭을 죽이고 싶겠는가. 굴삭기 기사나 현장 노동자와 공무원들을 비난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동물권 단체 카라는 동물 대학살을 중단하고 살처분 대안으로 '백신 접종'을 내세우고 있다. ⓒ 동물권 카라 페이스북


백신 접종이 참혹한 학살 방법의 대안일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동물권 단체 카라는 페이스북을 통해 동물 대학살을 중단하고 살처분의 대안으로 '백신 접종'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계란 반출을 허가하고 닭들을 '살려달라고' 국민청원을 호소했다.


나는 그 글을 보며 쉬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굴착기 살처분에 대한 대안이 백신 접종이라니. 백신으로 닭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은 큰 착각이다. 백신은 닭을 살리지 못한다. 다만 인간의 기준에서 덜 잔인하게, 조금 천천히 죽이는 차선책일 뿐이다. 백신을 맞은 닭도 결국엔 인간의 먹거리가 되기 위해 죽게 될 테니까.


고통의 양으로 따지자면 백신은 고통의 양을 증가시킬지도 모른다. 백신 접종을 통해 닭을 살리면 그다음은 무엇인가?


육계의 경우, 케이지나 축사에 갇혀 병든 채로 죽는 닭이 허다하다. 성장촉진제를 맞고 비대해진 몸을 스스로 이기지 못해 다리가 부러지거나 피부병을 달고 사는 게 닭의 생이다. 운 좋게 건강하게 산다 해도 30일이란 기간을 채우면 결국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치킨이 된다. 산란계의 경우, 알만 낳는 삶을 살다가 알 낳는 속도가 떨어지면 도살된다.


어찌 보면 굴삭기로 내려 찍혀 죽는 게 차라리 고통을 최소화시키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닭들에게는 매일이 지옥 같은 고통의 삶에서 벗어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굴삭기 망치질이 비인도적이고 잔인한가? 우리가 치킨을 먹고 계란을 먹는 행위는 어떠한가?


우리는 왜 굴삭기에 망치질당하는 닭, 양계장 밖으로 나온 닭에게만 주목하는 걸까. 양계장에서 백신을 맞고 살아갈, 아니 서서히 죽어가는 닭의 동물권은 누가 외치고 있는가.


'동물권' 단체가 양계산업 철폐를 전면에 내세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굴착기 망치질로 죽는 닭을 진정 '살리고' 싶다면, 백신을 도입할 것이 아니라 양계산업을 없애자는 주장이 더욱 합당하다. 내가 느꼈던 '차마 말할 수 없는 감정'은 그 메시지가 동물권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공개적으로 드러난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누가 굴삭기 기사를 비난할 수 있는가. 누가 굴삭기 기사에게 지시한 국가와 지자체만을 비난할 수 있는가. 우리는 모두 공범을 저지른 가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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