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하셨죠?
'서울에서 집 사려면 숨만 쉬고 O 년.'
결혼 전부터 차곡차곡 돈을 모았지만 서울에서 집을 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월세로 지출되는 고정비용을 줄이고자 전세 주택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간은 돈이다. 우리는 돈이 없으니 발품을 팔아 원하는 집을 찾기로 했다. 수십 개의 집을 봤다. 채광, 조망, 접근성, 집의 구조 등을 모두 만족시키는 집을 찾는 건 복권을 긁는 일만 같았다. 어떤 집은 꽝이었고 어떤 집은 채광이 좋지만 접근성이 떨어지는 집이었다. 우리의 감정은 파동 그래프처럼 기대와 실망을 오갔다.
보물찾기 끝에 결국 신혼집을 구했다. 건축된 지 오래되어서 건물 내외부가 대체로 낡은 집이었다. 현관문 방향을 제외하고선 모든 방향에 큰 창문이 나 있었다. 빌라 옆에 낙산공원이 있었는데 창문을 열면 초록 빛깔의 나무를 볼 수 있었고 가끔은 낙산을 산책하는 길고양이와 눈인사를 할 수도 있었다. 주말이면 새소리에 잠이 깨기도 했다. 되돌아보면 행복한 기억들이 가득한 집이었다. 비록 2년이란 정해진 시간 동안이었지만 그곳은 우리에게 ‘행복주택’이었다.
하지만 높은 경사로와 엘리베이터가 없었기에 아내가 정말 힘들어했다. 조금 더 쾌적한 환경의 집으로 이사하고자 새로운 집을 알아봤다. 결국 방 하나, 거실 하나, 화장실 하나가 있는 오피스텔로 이사 오게 되었다. 무엇보다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점이 가장 만족스러운 점이었다. 오피스텔에서도 층간소음과 높은 관리비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지만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다. 이것은 나의 민간임대주택 답사기다.
공공임대주택 답사기
어느 날 미혼인 친구로부터 행복주택(신혼부부를 비롯한 청년층의 주거불안 해소를 위해 주변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다. 왠지 모를 기대감과 설렘으로 부풀었다. 결혼하기 전 신혼집을 막 알아보던 그때와 비슷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행복주택은 보증금에 대한 이자와 임대료 측면에서는 현재 오피스텔과 큰 차이가 없지만 관리비 측면에서 월 고정비용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층간소음이 사라질 거란 막연한 기대도 한몫했다. 게다가 2년이면 갱신하는 민간 임대주택과는 달리 6-10년 동안 거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주거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크게 다가왔다. 행복주택이란 제도는 행복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상상 속에만 그려진 행복주택
2020년 12월 24일 제2차 행복주택 공고문을 꼼꼼히 읽었다. 행복한 상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우리는 행복주택 청약에 실패했다. 정확히 말하면 지원조차 할 수 없었다. 월평균 소득이 높아 지원 자격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약 소득기준은 건강보험공단의 ‘평균 보수월액’ 3개월을 기준으로 하였다. 연간 총소득이 낮더라도 지원하는 해당 월의 ‘평균 보수월액’이 높으면 소득기준이 높게 책정된다. 예를 들면, 9월까지는 소득이 없다가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간 월 소득이 400만 원이라면 1월부터 12월까지 월 100만 원의 소득이 있는 사람과 연소득은 1,200만 원으로 같지만, ‘평균 보수월액’은 높게 책정되는 것이다.
허탈했다. 누군가는 청약 시스템의 허점에 이득을 볼 것이고 누군가는 우리 부부처럼 허점의 피해를 볼 것이다. 행복주택 소득기준의 맹점이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기회를 엿보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 부부가 공공임대주택 청약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재정 상황이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공공임대주택에 지원이 불가능한 부부인 동시에 서울의 민간 주택 매매나 전세에 살 여유가 되지 않는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않는 재정 상태를 갖고 있는 우리의 상황이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신혼부부라는 특혜도 7년이란 한정된 시간 동안만이다.
우리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주거 문제로 늘 불안한, 보통의 부부다. 우리에겐 공공임대주택이 절실히 필요하다. 공공임대주택 경쟁률은 10대 1은 고사하고 100대 1을 훌쩍 넘기도 한다. 높은 경쟁률은커녕 지원 자격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하면서도 또 다른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매번 청약정보를 찾는다. 우리 같은 국민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공공주택의 사전적 정의는 국가 또는 지자체가 주거 취약 계층을 위하여 공공 자금으로 건설하는 주택이다. 공공주택은 재정 상황이 넉넉한 국민을 위해 지어지는 집이 아니다. 집이 절실한 이들이 있다. 집이 없어 서러움을 안고 사는 이들이 있다. 그들을 위해 지어지는 게 공공주택이다.
우리가 오래전에 받아들인 대답은 다음과 같다. 주거 보조가 필요한 이유는 사기업에 의해 주택을 공급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공급하기 위해서이다.
- 428p, <미국 대도시의 삶과 죽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많은 국민들이 주거로 인해 매일 불안과 희망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LH는 공공주택 사업 시행처다. 최근 LH 직원들의 불법 투기 사태에 대한 공분은, 그들이 현실을 조롱하듯 꽤나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내부 정보를 빼돌려 사익을 늘려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제도의 사각지대라는 같은 위치에서, 제도를 잘 아는 사람들은 재산을 불려 나갔고 그동안 우리 같은 사람들은 집 없는 설움과 불안함을 감내하며 하루하루를 맞이했다. 우리의 ‘행복주택’ 답사기는 언제 비로소 끝이 날까. LH 불법 투기 사건을 처음 마주했을 때 분노의 감정은 점차 참담함과 무기력감으로 변해갔다.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LH 직원들의 불법 투기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에 “부동산 부패의 사슬을 반드시 끊어내겠다”라고 밝혔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결과가 정의로운 지’와 ‘부패를 반드시 끊어내는지’는 이후 전수 조사 범위와 처벌 수위에 따라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다.
(오마이뉴스 기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