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구체적인 계획 없이 결혼했다. 사랑으로 결혼했다. 당시에는 '매일 함께 하는 삶'이 중요했기에 현실적인 부분은 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사랑만으로 일사천리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결혼은 현실이다. 주거, 출산, 양육. 현실적인 문제들을 둘이서 함께 풀어가야 한다.
결혼한 부부가 가장 먼저 알아봐야 할 것은 함께 살 집이다. 우리 부부는 함께 살 집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동시에 주택 정책과 대출상품을 알아봤다. 우리는 아파트에 살지, 빌라에 살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가계 재정상 서울 아파트 매매는 꿈도 꾸지 못했고 전세 혹은 월세도 감당할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빌라로 간다 해도 아무런 걱정 없이 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전세 빌라에 거주하려 해도 수중에 있는 돈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임차보증금으로 지불해야 했다. 우리는 대출을 알아봐야 했다.
다행히 국토부와 서울시에서는 임차보증금 이자를 지원해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국토부와 서울시가 은행과 연계하여 은행에서 낮은 금리로 대출해주는 제도였다. 결국 서울시 신혼부부 대출이자지원 제도를 통해 1억이 좀 넘는 보증금, 월세 10만 원의 ‘반전세’라는 전세도 아닌 월세도 아닌 집에 입주하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배운 신혼부부 대출 제도
대출을 최종 승인받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몇 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
첫째, 대출 최대한도가 정해져 있지만 모두가 최대한도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소득 기준에 따라 받을 수 있는 대출 금액이 달랐다. 은행에서 소득과 직업 등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대출해준다. 즉 갚을 수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을 빌려준다. 돈이 없어서 대출을 받으려 했는데 돈 벌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해야 했다.
우리 부부는 다행히도 돈 벌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하여 대출을 받을 수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공공 임대 주택에 청약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전세를 살면서 꾸준히 청약의 기회를 노렸지만, 번번이 소득 기준의 벽을 넘지 못하고 포기한 경우가 많다. 소득기준을 완화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간극은 있다. 열심히 벌면 청약을 못 하고 적게 벌면 대출이 불가능한 아이러니가 지속되는 한 여러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민간 분양은 꿈도 꾸지 않기로 했다. 평생 일하고도 두어 번쯤 더 환생해 꼬박 모아야 가능한 액수이기 때문이다.
둘째, 정보를 알지 못하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정보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난다. 좋은 정보는 꽁꽁 숨어 있다. 보물 찾기를 잘해야 한다.
우리는 끝끝내 대출을 받아 그 집에서 살 수 있었지만, 대출을 받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아내가 찾은 서울시 이자지원 대출제도를 정작 상품을 판매하는 은행 직원이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상품의 가입부터가 쉽지 않았다.
필요에 의해 여러 자료를 찾으며 겨우 얻어낸 정보로 혜택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했다. ‘감면되는 대출 이자 1% 앞에 우리만 이렇게 절실한 걸까?’ 싶은 생각과 동시에 이런 정보를 모르고 꼬박꼬박 대출 이자를 더 내게 될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다.
대출이 필요한 부부라면 혼인신고가 필연적일 테니 구청에서 혼인신고를 신청한 부부들을 대상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을 함께 안내하는 일을 일원화한다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신혼부부 임차보증금 지원제도뿐만 아니라 사회 복지시스템에도 허점이 많기 때문에 두드려야만 나오는 도깨비 보따리 같은 복지가 아니라 찾아가는 복지가 돼야 할 것이다.
셋째, 대출 ‘합격증’을 받기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불안했다. 우선 서울시에 신청하고 행정 처리가 완료되면 은행에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문제는 거주할 주택 계약이 성사되면 그때서야 은행에서 대출 심사를 한다.
은행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는 개인에 따라 10개 이상이 되기도 한다. 살면서 큰돈 빌려본 적 없었던 나는 깨달았다. ‘남의 돈 빌리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구나.’ 행여나 대출이 안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얼마나 졸였는지 모른다. 임대인에게 “서울시 제도라 무리 없이 대출이 나올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무척이나 눈치가 보였다. 은행에 서류를 무사히 제출한다 하더라도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해당 주택 가치와 소유주의 신용 정도에 따라 은행은 대출 여부와 대출금액을 결정한다. 이 모든 대출 심사 기간 동안 우리 부부는 발을 얼마나 동동 굴렀는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법적으로 혼인 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동성 커플이나 비혼 공동체를 위한 대출 제도는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결혼한 부부에게만 한정하여 제도적 혜택을 주는 이유는 국가 경쟁력, 출산율 때문 아닐까? 출산율을 높일만한 잠재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겠다는 '정책적 의지'로 보인다. 왜냐하면 청약 제도 같은 경우만 봐도 신혼부부 중에서도 다자녀 가구가 우선순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팍스(PACS) 제도'나 '생활 동반자법'은 동성 커플이나 비혼 공동체가 혼인한 부부가 누리는 제도적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법적 지위를 인정한다.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라고 못할 게 무엇인가.
지금까지 대출 제도를 길게 이야기했지만 결국에는 불안정한 주거 이야기를 한 것이다. 집을 ‘사는 것’으로 여기는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엄연히 집은 ‘사는 곳’이다. 나는 우리와 같은 신혼부부, 더 나아가 모든 시민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사는 곳’이 보장되는 서울시에 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보궐선거에서는 모든 시민의 ‘주거권’을 보장하려는 시장이 당선되었으면 좋겠다.
다음 퀘스트는 출산과 육아입니다
서두에 주거, 출산, 육아를 언급했는데 사실 주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출산과 육아는 고려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게임과 같다. 첫 번째 퀘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그다음 퀘스트로 진입할 수 없다. 주거 문제가 어렵사리 해결된다 하더라도 출산과 육아 문제는 더욱 만만치 않다.
매년 초 인구 통계가 나온다. 이때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낮은 출산율’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말 낮은 출산율이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걸까. 정말 걱정된다면 출산 이후를 신경 써주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출산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출산 후 산모 건강을 개인 차원이 아닌 지자체 차원에서 보조적으로나마 신경 쓰고 지원해주어야 한다. 또한 직업적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남성의 육아휴직 제도를 의무화하여 출산과 육아 문제를 남녀가 분담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 부부 같은 경우에도 둘 중 하나가 육아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담 베이비시터를 고용할 경제적 형편도 되지 않는다. 유치원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지역과 유치원의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기표를 받아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또한 잊을만하면 나오는 유치원 내 아동학대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 마련에도 힘써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 내 산적한 문제들이 그저 정치적 공약으로만 소비되지 않았으면 한다. 신혼부부를 위한 공약은 쏟아져 나온다. 주거 지원 정책을 펼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는 후보가 있고 재정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는 후보도 있다. 내 눈에는 모두 양치기 소년처럼 보이는데 나만의 기우일까. 번지르르한 공약을 잘 만드는 후보가 아니라 뱉은 말을 지키는 후보가 시장이 당선되었으면 좋겠다.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