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도시,서울>을읽고
아기돼지 삼 형제는 엄마로부터 독립을 한다. 삼 형제는 각자 자기가 살 집을 짓는다. 첫째는 짚더미로 집을 짓고 둘째는 나무집으로 짓고 셋째는 벽돌집을 짓는다. 결국 늑대가 들이닥쳐 첫째와 둘째는 튼튼한 벽돌집이 있는 셋째의 집으로 피신한다. 셋째가 첫째와 둘째를 도우면서 우화는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 우화는 그저 가족 간 우애를 드러낸 감동적인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교훈을 준다. 첫째와 둘째가 짚더미와 나무로 집 짓는 걸 게으르기 때문이라며 셋째의 부지런함을 본받아야 한다는 교훈 말이다.
KOSTAT 통계 플러스(통계청 간행물) 2018년 여름호에 따르면 전국 전체 가구의 주거빈곤은 1995년 46.6%에서 2015년 12.0%로 개선되었다. 반면 서울의 1인 청년 가구의 주거빈곤은 1995년 58.2%에서 2000년에 31.2%로 크게 감소하였으나 다시 증가하기 시작해 2015년에는 37.2%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주거빈곤 가구는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주택에 거주하거나 지하 또는 옥상 거주 가구, 주택 이외의 기타 거처(오피스텔 제외)에 거주하는 가구를 뜻한다.
지방에서 서울로, 지상에서 지하로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당시에는 반지하 원룸에서 살았다. 그 게 5년 전이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지만 주거 공간은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갔다. 그나마 학교를 졸업하고 반년 간 알뜰히, 부지런히 저축해뒀던 돈 덕분에 보증금을 낼 수 있었다.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26만 원, 공과금 별도였다. 부엌 화장실의 경계는 화장실 문이었다. 방에 매트리스를 깔면 침실이 되고 식탁을 놓으면 주방이 되고 노트북을 켜고 영화를 보면 거실이 되는 신기한 방이었다. 신민주 작가의 책 제목처럼 집이 아니라 '방'에 살았던 것이다.
촌사람이 서울에 처음 살아봤기 때문일까. 집에 머무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저녁이면 복싱이나 유도 체육관을 갔고 주말이면 어떻게 해서든 약속을 만들었다. 집에 애정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바깥으로 나돈 건지, 바깥으로 나돌아서 집에 애정이 생기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집은 철저히 잠만 자는 공간이었다.
나는 그나마 운 좋게도 가성비 좋은 반지하를 구했다. 대학가 근처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던 적이 있었다. 내가 살던 집과 크기는 비슷했지만 월세는 2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친구 집에는 침대가 있었는데 과장을 조금 보태면 팔이 긴 사람은 침대에 앉아서 설거지와 요리가 가능해 보이는 구조였다. 알뜰살뜰한 공간, 그야말로 여백의 미가 없는 효율적인 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시내 기숙사 건축은 번번이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상권 하락 그리고 원룸 임대로 생계를 이어가는 건물주가 있다는 이유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서울 내 4년제 대학교에 다니는 청년들은 희망이 있다. 비록 지금은 닭장 같은 집에 살더라도 명문대 졸업장을 손에 쥐고 나면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여 '방'이 아닌 좀 더 넓고 아늑한 '집'으로 이사 갈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물론 무한경쟁 체계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그 희망도 사라진다.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그다음 쪽방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쪽방촌에 사는 사람의 경우는 대학가에 사는 학생과 상황이 매우 다르다.
첫째, 주거 환경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쪽방을 명확히 정의 내린 자료는 없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방을 여러 개의 작은 크기로 나누어서 한두 사람이 들어갈 크기로 만들어놓는 방. 보통 3제곱미터 전후의 작은 방으로 보증금 없이 월세로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3제곱미터는 싱글 퀸 사이즈 침대 하나 사이즈다. 그 안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한다. 쪽방은 보통 화장실이 없고 방 안에서 취사가 가능하지 않다. 쪽방 주민은 건물에 있는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을 사용한다.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한데 심지어 1층을 두 개의 층으로 나뉜 방도 있다. 온수와 난방도 허락되지 않는다. 쪽방은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아래 쪽방'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곳이다.
쪽방 평당 임대료는 18만 2,550원, 서울 전체 아파트 평균의 4배
쪽방의 평균 평당 임대료 18만 2550원.
서울 전체 아파트의 평균 평당 월세인 3만 9400원의 4배를 훌쩍 뛰어넘는 임대료다.
<착취도시, 서울> / p.104
둘째, 쪽방 주민의 월소득은 현저히 낮다. 2019년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쪽방 거주민 1949명 대상 월소득 100만 원 미만은 82.7%였고 주 소득원은 정부보조 수급비(70.3%)였다. 일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건강상의 이유(72.8%)에 응답한 이가 가장 많았고 일자리가 없다는 이유(8.0%)가 뒤를 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은 서울 기준 1인 가구 주거급여로 23만 3000원 안에서 월세를 지원받는다. 즉 쪽방 주민 복지를 위해 지급되는 국민의 혈세는 쪽방 소유주에게 흘러간다.
전문가들은 쪽방의 주거 기능 자체는 긍정했다. 김선미 서울 성북주거복지센터장은 쪽방이 "노숙을 막아줄 '방파제' 역할을 한다"라고 말하며 실제로 "1970년대에 미국에서는 쪽방과 비슷한 주거자원인 SRO(single room occupancy)가 대거 철거되자 홈리스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쪽방과 고시원이 노숙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그물'이자, 노숙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발판'으로 기능하는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적합한 주거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 쪽방을 이용한 약탈적 임대 행위다.
'빈곤 비즈니스'는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되, 빈곤으로 벗어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닌, '빈곤을 고착화'하는 산업이다. 가뜩이나 돈 없고 오갈 데 없는 이들의 곤궁한 처지를 이용해, 마땅한 노력 없이 불로소득으로 폭리를 취하고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데에만 관심을 보이는 행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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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쪽방촌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몰랐던 세계가 있다는 사실에 한번 놀랐고 쪽방의 환경과 월세 비용에 또 한 번 놀랐고 그 수익을 얻기 위해 투자하고 부를 쌓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넋을 놓게 되었다.
우리의 혈세를 약탈하는 이는 누구인가?
쪽방의 계약은 보통 구두로 이뤄진다. 방 있음이라고 적힌 간판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해 관리인과 만나 그 자리에서 계약한다. 부동산 계약서도 없고 보증금도 없다. 계약서가 있을 리 없다. 최저주거기준을 만족하는 '주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대료는 일세로 납부하기도 하고 월세로 납부하기도 한다.
쪽방 건물 한 채다 매달 287만 5168원(평균값을 통한 추정)을 현금으로 받으면서도 카드 결제나 현금 공제가 되지 않아, 수익은 드러나지 않는 '그림자 현금' 형태로 집주인의 주머니 속으로 흐른다.
/ p.103
318채 중 다주택 소유자들이 갖고 있는 건물은 56채(17.61%)에 달했다.
/ p.101
빈곤 비즈니스를 이용해 착취하는 소유주만 있는 건 아니다. 오래된 자료이긴 하지만 2002년 한국도시연구소 <쪽방연구>에는 쪽방 주인 할머니 박 씨의 인터뷰가 나온다. 박 씨는 야박하게 사람을 내쫓지 못한다고 했다. 방세가 밀리면 바로 내보내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은 몇 개월씩 방세를 내지 못하는 사람을 그냥 지내게 해 준 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쪽방촌 소유주가 쪽방촌 지역에 사는 경우에 해당하고 그중에서도 매우 일부일 것으로 짐작된다.
누가 주민인가?
4.7 보궐선거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선되었다. 지난 14일 국민의힘 부동산시장정상화특별위원회가 동자동주민대책위원회와 간담회를 가졌다. 동자동주민대책위원회는 동자동 '토지 소유주'로 구성되어 있다. 토지 소유주들은 스스로를 당당하게 주민이라 칭한다.
<한국일보>는 서울시의 쪽방 현황 내부 자료에 명기된 318채 쪽방 건물 가운데 등기가 되어 있는 243채 등기부 등본을 전수 조사를 했다. 전수 조사 결과, 전체 270명 소유주 중 188명(69.62%)이 쪽방촌 밖 다른 지역에 살고 있었다. 반면 2018년 기준으로 서울 시내 쪽방 주민들은 평균 11.7년 동안 쪽방촌에 머물고 있다. 누가 진짜 쪽방촌의 주민(住民)일까?
14일 오후, 동자동에 방문하여 쪽방촌을 둘러봤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이었지만 쪽방촌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고층 오피스빌딩 숲 사이에 쪽방과 여인숙 그리고 작은 가게들이 모여 있었다. 동자동 쪽방촌 곳곳에는 빨간 깃발이 걸려 있었다. 토지 소유주들의 공공재개발 반대 의사 표현이었다. 골목길마다 빨간 깃발이 펄럭이는 데다가 최근 LH 사태와 보궐선거 영향까지 더해져 ‘진짜 주민’들은 더욱 불안에 떨고 있다.
공공재개발이라고 소유주들의 땅과 건물을 빼앗는 게 아니다. 이윤이 없는 게 아니다. 소유주들이 공공재개발을 반대하고 민간재개발을 주장하는 이유는 개발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이미 살고 있는 거주민(居住民)의 삶은 안중에도 없다. 쪽방의 이윤만으로는 모자라서, 공공재개발 이윤만으로는 모자라서, 호시탐탐 민간 재개발을 욕심내고 있다.
다시 한번 아기돼지 삼 형제 우화를 떠올려본다. 우리 사회에 늑대들이 늘어나고 있다. 늑대가 되길 희망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2016년 JTBC 탐사플러스에 따르면 고등학생들은 가장 선망하는 직업 2위로 '건물주와 임대업자'(16.1%)가 꼽혔다.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혈세가 빈곤한 이들을 위해 복지비로 사용된다고 하지만 결국 누구의 배를 불리고 있는가. 누가 게으른가. 아니, 이렇게 묻자. 누가 여전히 타인을 쪽방에, 고시원에 가두고 싶어 하는가.
우화는 '자본주의적 근면'이라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남긴다. 첫째와 둘째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다소 빈곤한 재료로 나름의 집을 지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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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돼지 삼 형제에서 나쁜 것은 누구인가? 게으르고 불운한 첫째, 둘째 돼지인가? 나뭇가지와 지푸라기라도 쌓아 올린 그 노력을 수포로 만들어버리고 결국 '홈리스'로 만들어버리는 늑대인가?
<착취도시, 서울> /p. 203-204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