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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Apr 14. 2021

순이 잘 지내요?

우리는 보통 외출하는 김에 분리수거를 한다. 그날도 우리는 분리수거를 하기 위해 오피스텔 지하 1층으로 갔다. 분리수거장에서 박스에 붙은 테이프를 떼어내며 분리수거를 하고 있었다. 한창 박스를 정리하고 있는데 관리소 미화 직원 분이 가까이 오시더니 그냥 버려도 된다고 하셨다. 그렇게 가려던 차에 문득 지하 1층 주차장에 사는 '서희'가 떠올랐다. 나는 물었다.


"서희 잘 지내나요?"


직원으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되었다.


서희는 우리 오피스텔 지하주차장에 사는 고양이다. 작년에 오피스텔로 이사 오면서 우리를 반겨준 건 관리사무소 직원도 아니었고 옆집 사람도 아니었다. 바로 지하 1층의 서희였다. 사실 서희가 우릴 반긴 건 아니었을 것이다. 이방인이었던 우리가 서희를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동숭동에 살면서 수많은 고양이 친구들과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놀았기에 서희를 보는 순간 너무나 반가웠다. 동시에 매우 의아했다. 공원이나 건물들 사이에서 자리 잡고 살아가는 길고양이는 익숙했지만 오피스텔 지하주차장에 사는 고양이라니. 어찌 된 영문인지 몰랐지만 마음이 쓰였다. 이후로 눈에 보일 때면 집에 들어가서 냉장고에 쟁여둔 사료와 츄르를 가지고서 다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사람 손을 많이 타진 않았는지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사료와 간식을 주차장 한쪽에 놓아주었더니 서희는 눈치를 보며 호기심을 보였다. 우리 부부도 함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멀찍이 떨어져 자동차 뒤로 숨어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서희는 슬금슬금 다가와 먹기 시작했다.


동숭동을 떠나오며 길고양이를 정기적으로 돌보는 일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했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쓰였다. 1층 경비실에 찾아가 매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아저씨, 혹시 지하 1층에 고양이가 살던데 혹시 돌보시는 분들이 있나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 이유는 고양이라는 동물이 우리 사회에서 매우 호불호가 강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캣맘과 캣대디처럼 고양이를 지극히 사랑하고 돌보는 무리가 있는 반면, 고양이를 학대하고 잔인하게 죽이기까지 하는 무리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경비 아저씨께서는 매우 긴장하셨을 테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나의 질문을 들으며 말투와 사용하는 단어 그리고 행색과 외모들을 순식간에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계셨던 것 같다.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왜요? 무슨 일 있나요?"

"아니요. 지하에서 고양이가 어떻게 사나 걱정도 되고 그런데 통통해서 누가 돌보시는 분이 있는지 궁금해서요."


경비 직원은 긴장을 푸셨는지 자식 자랑하듯 서희 양육 일기를 풀어내기 시작하셨다. 서희가 지하주차장에 산 지 오래됐고 관리소 미화 직원이 밥도 주고 중성화 수술까지 시켰다고 한다. 중성화 수술 이전에는 출산한 새끼를 아는 사람들에게 입양까지 시켰다고 한다.


이후 지하주차장을 오가면서 서희가 주로 생활하는 공간이 지하주차장 한편에 창고 같은 공간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캣타워와 스크래쳐가 놓여 있었다. 길고양이를 볼 때마다 늘 빚진 마음이 있는데 캣타워를 보자 마음속 한편에 있던 괜한 부채감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어느 날에는 아주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서희를 보기도 했다. 괜히 흐뭇해졌다. 이후로는 서희가 눈에 보여도 인사 정도만 건네고 따로 간식이나 사료를 챙기진 않았다. 그게 불과 몇 개월 전의 이야기다.



서희 잘 지내냐는 나의 물음에 아주머니는 발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우리 순이 아세요? 우리 순이 여기 떠난 지 3개월 됐어요."


서희의 이름은 순이였다. 순이의 이름을 지어준 이는 건물 미화를 관리하시는 직원 분이셨다. 캣타워를 놓아준 이도 바로 그였다. 그냥 순이도 아니었고 '우리 순이'라 불렀다.


직원 분은 '떠났다'라고 했지만 사실은 '버려졌다'. 사정은 이러했다. 자동차 보닛 위에 종종 오르던 순이의 발자국 흔적으로 몇 번의 민원이 들어왔었다고 한다. 아마도 추운 겨울에 따뜻한 곳을 찾아다니다가 자동차의 보닛 위로 올라간 것 같다. 오피스텔에 오래 산 사람들은 순이의 존재를 알고 있었거니와 종종 사료나 간식을 챙길 정도로 마음을 썼다고 한다. 모든 주민이 서희에게 호의적이진 않았을 것이다. 몇몇의 주민은 지속적으로 관리소에 민원을 넣었고 직원은 순이가 차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졸졸 따라다니며 설득(?)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순이에게 설득이 먹히지 않자 직원은 고민 끝에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목줄'이었다. 고양이에게 목줄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목줄을 메는 직원의 마음이 헤아려졌다. 하지만 순이가 목줄을 차고 있는 내내 우는 바람에 목줄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이와 좌불안석의 직원 마음이 상상되어 속상했다.


이후로 언젠가 직원은 사흘간 개인 사정으로 일을 쉬었다. 한파가 닥친 1월이었다. 사흘간 쉬고서 다시 돌아왔을 때 순이는 사라졌다. 창고에 있던 캣타워도 분리수거장에 꺼내어져 폐기 처분되었다. 나도 당시 분리수거장 옆에 놓인 캣타워를 봤다. 당연히 새로운 캣타워를 구입해서 사용하던 캣타워를 버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주민 중 한 명이 지속적으로 민원을 넣었고 결국엔 관리소장의 지시로 순이는 지하주차장에서 쫓겨났다. 전화 몇 통으로 순이 삶과 터는 지워져 버렸다. 분리수거장의 쓰레기처럼 말이다. 직원 분은 종종 순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잊고 분리수거장과 창고를 맴돌며 습관처럼 순이를 부른다고 했다. 꼭 어디선가 다시 나타날 것 같다면서.


인간과 고양이의 공존을 위한 누군가의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순이의 삶이 송두리째 변해버리게 되었다. 고양이란 존재가 감히 자동차 보닛 위에 올라갔던 탓일까.


순이의 생사는 관리소만이 안다. 순이의 목에는 직원의 전화번호가 새겨진 목걸이도 있었다고 한다. 한동안 직원은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간혹 TV에서 봤던 집으로 돌아왔던 반려동물들의 이야기처럼 순이도 기적처럼 돌아와 주길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순이는 돌아오지 못했다. 순이는 어디에 있는 걸까? 관리소에서는 그 한파에 순이를 어디에 버린 걸까? 새끼 때부터 사람의 보살핌을 받고 평생을 주차장 창고 한편에서 살았던 순이는 어느 날 갑자기 한 번도 가본 적 없었을 어딘가에 버려졌다. 순이는 잘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 살아있을까.


봄이다. 땅에서 초록 풀들이 고개를 내밀고 앙상했던 가지에 새순이 돋는다. 생명의 기운을 뿜어내는 시기다. 꽃놀이라도 가야 할 것만 같은 날씨다. 동료 동물권 활동가들의 재판 방청 연대를 가던 바로 그날, 나는 순이가 더 이상 지하주차장에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사이, 인간에게 불편을 준다는 이유와 인간의 이익과 편의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동물들의 생명이 지워가고 있는 걸까. 우리는 얼마나 많은 동물을 분리수거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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