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막을 내렸다. 집권여당의 성폭력 문제로 시작된 선거였기 때문이었을까.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 박형준 후보가 각각 57.50%, 62.67%로 당선했고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와 김영춘 후보가 각각 39.18%, 34.42%로 낙선했다. 야당 국민의힘의 압승이었고 집권여당의 완패였다. 민심은 완전히 돌아섰다.
나는 스스로를 정치에 무관심한 편이라고 소개한다. 정치판에 숨겨진 복잡한 수를 계산하기도 어렵거니와 조삼모사 정치인들에 진절머리가 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끔 힐끔힐끔 정치판을 들여다보게 된다. 선거 때가 되면 누굴 뽑을지 고심하게 된다. 홍보 용지를 살펴보며 나를 대변해 줄 사람 그리고 목소리가 작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내 줄 사람을 찾게 된다.
과거를 심판하는 선거?
“그래도 여당 후보가 당선되는 꼴은 못 본다.”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심판’의 선거였다. 투표 전 후보들의 약력과 공약을 살펴봤다. 더불어민주당의 홍보물은 살펴보지도 않았다. 너무나 괘씸했다. 당헌과 당규를 고쳐서까지 후보를 냈다. 원칙도 없고 부끄럼도 모르는 철면피다. 파렴치한 탐욕의 선거였다. 만약 후보를 내지 않고 소수 정당에 힘을 보탰더라면 어땠을까.
집권여당 후보가 서울시장이 되는 꼴은 두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막아야 했다. 게다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4·7 재보궐선거에 필요한 예산' 자료에 따르면 민주당 인사의 귀책사유로 인한 선거비용은 859억 7300만 원이었다.
어디 이뿐인가. 선거로 발생된 쓰레기도 엄청나다. 선거는 투표용지에 도장 한 번 찍는 이벤트가 아니다. 어마어마한 경제적, 사회적 비용이 지출되는 일이다. 앞으로는 보궐 선거의 사유에 따라 발생하는 경제적 비용을 정당에서 책임지는 방식의 제도적 장치 마련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즉 과거를 심판하는 선거라는 점에서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후보를 선택하지 않았다.
내 표가 사표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
“찍을 후보가 없어 기권했다.”
“투표는 최악을 피해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다.”
“내 표가 사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말들이다. 이번 선거에도 어김없이 이런 이야기들이 돌았다.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선거? 왜 투표는 항상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걸까. 찍을 후보가 없어 한탄하며 차악의 후보에게 투표하거나 기권한 이들이 있다. 잘은 모르지만 본인의 표가 사표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 아닐까.
이번 4.7 보궐선거에서도 좋은 후보들이 많았다. 성소수자, 여성 공약을 담은 후보, 기후위기 공약을 담은 후보, 성장보다는 분배를 강조했던 후보, 선거 후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후보.
사표가 되지 않기 바라는 유권자의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투표한 후보가 당선되지 않는다고 하여 의미 없는 선거는 아니다. 어쩌다 우리나라 정치판에 빨간색과 파란색만 남게 되었는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과연 정치인들 때문만일까? 찍을 후보가 없는 이유는 우리가 거대한 괴물 양당에게만 투표했기 때문은 아닐까?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홍기빈 소장은 지난 3일 두 개의 양당을 “주워 먹고 자라난 두 개의 괴물”이라고 표현했다. 양당을 “표만 받을 수 있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정당이고요, 표만 받고 나면 무슨 짓이든 하는 정당입니다. 둘 다.”라고 표현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표현이었다. 우리가 지금 두 마리의 괴물을 키우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KBS, MBC, SBS 등 방송 3사 4.7 보궐선거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20.3%, 30대 9.4%가 소수 정당에 투표했다. 특히나 주목할 건 15.1%의 20대 여성들이 소수정당을 지지했다.
숫자로만 표현되는 민심을 정확히 알 방도는 없다. 한 표, 한 표 속에 담긴 복잡한 심경은 유권자만이 알 테다. 20대와 30대 일부는 누군가 사표라고 생각하는 정당에 표를 던졌다. 나는 이들이 심판을 넘어서 미래의 희망의 의미를 담아 소신껏 투표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거대 양당에 투표한 이들이 모두 소신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마지못해 투표한 이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차악에 투표한 후 몰려오는 찝찝함 때문에 늘 ‘최선’을 선택하려고 노력한다. 투표 결과를 볼 때마다 내가 찍은 후보들의 낮은 득표율에 아쉽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차악에 투표하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와 함께 뜻을 하는 동지들이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고 희망을 본다. 또한 적어도 투표 후 찝찝함은 없다.
이번 선거는 끝났다. 다음 선거에서는 소신껏 투표하는 이들이 많아지길 소망한다. 소신 있는 유권자들이 많아져 희망의 신호탄을 함께 쏘아 올렸으면 좋겠다.
(오마이뉴스 기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