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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Jun 20. 2021

마당 있는 집

아빠는 십만 원을 주고 데려온 강아지의 이름을 ‘십마니’라고 지었다. 아빠의 개명 센스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 웃음이 터졌다는 건 그 이름에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엄마는 ‘똘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새로 온 식구는 하나인데 한 두 달간 집에서는 두 개의 이름이 불렸다. 나는 똘이와 십마니라는 이름을 번갈아 불렀다. 어쩌면 '비극'은 십마니라는 이름을 지었을 때부터 예고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똘이는 2015년생이다. 흰털이 복슬복슬하게 난 ‘시고르자브종’이다. 엄마 친구 집 강아지가 새끼를 낳으면서 분양을 받았다. 아주머니는 무료로 분양하려 했지만 아빠는 돈을 주고 키워야 한다며 십만 원을 아주머니에게 드렸다. 아빠가 똘이를 데려올 때 굳이 돈을 지불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평소 아빠의 모습으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아빠는 아마도 책임감을 갖고 똘이를 키워보겠다는 마음이었을 것 같다. 일종의 가족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스스로 의지를 다지는 행위 아니었을까.



엄마는 깔끔하다. 집이 24시간 청결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옷이나 책이 널브러뜨려져 있는 모습이 보이면 참지 못한다. 먼지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를 전주로 가기 전까지는 매일같이 청소 잔소리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너저분하게 살고 있는 걸 보면 나도 참 대단하다. 어쩌면 남들이 뭐라 해도 꺾지 않는 고집은 이때부터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함께 사는 삶에서 강아지 털이 날리는 방은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똘이가 집에 올 때부터 똘이의 보금자리는 방이 아니라 마당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엄마는 강아지를 데려왔지만 방 안에는 들이지 않겠다고 했다. 온 가족이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기도 하거니와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의 엄마의 깔끔함 때문이었다.


우리 집은 마당이 조그만하게 있는 오래된 목조시골집이다. 똘이의 집은 마당 한편에 만들어졌다. 밤이 되자 문제가 생겼다. 똘이가 어미와 떨어졌기 때문인지 일주일 동안 밤새 울어댔다. 잠귀가 어두운 아빠와 나는 쿨쿨 잠들었지만 잠귀가 밝은 엄마는 궁시렁궁시렁대며 하는 수없이 똘이를 방 안으로 들였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마당에 사는 강아지가 방 안으로, 그것도 엄마가 눕는 침대 위로 온 것이다. 엄마는 여러 마음이 교차했던 것 같다. 어미와 떨어진 새끼 강아지에게 연민을 느꼈을 수도 있고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모두를 위한 평화 협정이었을 수도 있겠다.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확실한 건 근간에 똘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건 분명하다.  


엄마는 그렇게 우리 집 막내를 안고 잤다. 신기하게도 똘이의 울음은 그쳤다. 울어대는 아기들이 엄마의 품에 안겨 단잠을 자는 것처럼, 똘이도 엄마의 품에 안겨 잠에 들었다. 똘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침이 되면 똘이를 마당에 풀어놓았다. 여느 새끼 강아지들이 그렇듯 에너지가 넘쳤다. 엉덩이 쪽에 손가락 만한 꼬리를 상하좌우로 세차게 흔들며 마당을 운동장 삼아 뛰어다녔다.


마당에는 똘이 말고도 우리 집 셋째 ‘해피’가 있다. 해피는 ‘프렌치 브리타니아’종이다. 사람들은 해피를 보면 사냥개라고 부른다. 여러 집을 전전하다 우리 집에 왔다. 해피는 똘이를 잘 보살펴줬다. 천방지축 똘이의 장난을 받아주었다. 둘은 신나게 좁은 마당을 휘젓고 다녔다. 퇴근 후 저녁 시간은 똘이, 해피와 함께 노는 게 일상이었다. 내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건지 아이들이 나와 놀아주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즐겁게 놀았다.     


해피는 ‘앉아’, ‘엎드려’, ‘왼발’, ‘오른발’, ‘기다려’를 수행할 줄 아는 천재견이었다. 똘이는 그야말로 천방지축이었다. 어떤 간식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마냥 신나서 장난치기를 원했다. 놀아주기를 끝내는 쪽은 항상 우리 쪽이었다. 똘이는 지치지 않았다. 마치 물레방아의 물이 순환하듯 똘이의 에너지는 쓰면 다시 채워지는 것만 같았다. 팔뚝만 한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체력의 끝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런 녀석에게 ‘기다려’, ‘앉아’, ‘엎드려’, ‘왼발’, ‘오른발’과 같은 정지 동작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수행 불가 임무였다. 우리 가족은 똘이를 바보라고 놀려댔지만 교육이 불가능한 똘이의 에너지를 사랑했다. 나는 매번 간식을 잘게 쪼개어 주면서 5가지 임무 정도는 수행할 수 있는 요원으로 훈련시키려 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똘이가 꼬리를 흔들면 간식을 꺼내 지급했다. 오히려 똘이가 엄마와 아빠를 훈련시키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똘이는 우리가 방 안으로 들어가면 마당에서 해피를 귀찮게 했다. 해피는 천방지축의 똘이의 장난을 받아주기도 하고 자기 집을 내어주기도 했다. 2015년생 우리 집 막내 똘이는 그야말로 우리 가족에게 치트키였다. 'Show me the 웃음'. 엄마와 아빠는 다투다가도 똘이 녀석 때문에 다시 웃었다.


우리 가족은 전보다 훨씬 더 많이 웃었다. 똘이는 우리 가족의 웃음을 먹고 자란 듯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다. 흰 도화지 위에 점 하나 같던 검은 눈은 어느새 또렷해졌고 귀도 쫑긋 서서 하늘을 향했다. 뒤뚱뒤뚱 엉성하게 달리던 모습은 폼이 나기 시작했다.


드넓은 운동장 같던 마당은 똘이에게 답답한 공간이 되었다. 마당 끝에서 몇 발자국 뛰면 어느새 반대편에 가있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똘이를 데리고 매일 저녁 강변과 공원, 학교 구석구석을 산책했다. 그 시기에 직장 때문에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로 올라오면서 아빠와 엄마에게 신신당부했다.


"똘이 스트레스받으니까 매일 산책해야 해."


이후 똘이는 엄마, 아빠의 건강 트레이너가 되어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녔다. 나는 아빠와 엄마가 아니라 똘이에게 부탁했어야 했다. '살살 산책해달라고'. 엄마 아빠의 손목은 목줄에 묶여 똘이에게 끌려다녔다. 그 무렵 엄마는 허리 수술을 하고 아빠도 허리 건강 상태가 악화되었다. 자연스럽게 똘이의 산책 시간은 사라졌다. 똘이에게 드넓은 운동장이었던 마당은 어느새 감옥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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