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이는 다른 곳으로 떠났다.
일주일 중 가장 나른해지는 일요일 아침이었다. 엄마의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똘이 다른 곳으로 보냈어.”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답장했다.
나: 어디로?
엄마: 아빠랑 엄마를 물어서 누구 줬어.
나: 아빠랑 엄마를 왜 물어?
엄마: 다른 개와 싸우려 해서 말렸는데 아빠랑 엄마랑 물었어. 아빠는 피가 철철 나서 침대보가 다 젖었어.
나: 병원은 가봤어? 아빠랑 엄마 우선 응급실부터 어서 가봐.
엄마: 알겠어, 아빠가 자꾸 안 간다고 해서... 설득해서 영동 응급실로 다녀올게.
나: 똘이는 어디로 보냈어?
엄마: 아빠 아는 사람한테 보냈어.
심상치 않은 기운이 맴돌았다.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울먹이며) 그.. 아빠.. 아는 사람한테 보냈.. 다니까..”
나는 부랴부랴 옷만 갈아입고서 서울 집을 나섰다. 마음이 급했다. 코로나로 인해 무주로 가는 일부 시간대의 버스 운행이 중단되었다. 아빠와 엄마도 영동에 있는 병원 응급실에 가기로 하여 영동으로 가기로 했다. 응급실에서 아빠와 엄마를 만났다. 아빠와 엄마 둘 다 상처는 크지 않았다. 피가 철철 났다는 건 과장된 표현 같았다. 하지만 성견에게 물린 바람에 많이 놀라기도 했고 무엇보다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은 듯했다. 일단 아빠와 엄마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무주 집으로 향했다. 운전을 하며 아빠에게 어떻게 된 건지 물었다.
아빠의 이야기는 이렇다.
토요일 저녁에 부모님과 똘이는 산책을 나갔다. 간만의 산책이었다. 산책 도중 멀리서 강아지 한 마리가 보였고 똘이가 엄청 흥분했다. 똘이가 다른 강아지에게 달려가려는 걸 아빠가 말렸다. 어떻게 통제했는지 듣지 못했지만 대략 평소 아빠의 모습을 미루어보건대 결코 적절한 방식으로 통제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똘이가 아빠를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아빠는 불충한 똘이를 내쫓기로, 개장수에게 팔아버리기로 결심했다. 어렸을 때 "집 나가라. 너 같은 아들 필요 없다"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일종의 그런 훈육이었을까? 아니면 인간을 문 짐승에 대한 보복이었을까?
결국 개장수에게 보냈다. 충분히 교정이 가능한 '똘이'를 그냥 죽여 버렸다. 똘이를 개장수에게 보내는 과정은 단순했을 것이다. 전화 한 통이면 됐을 것이다. 잔인하다. 아빠와 엄마는 6년 동안 매일을 함께했던 가족을 살해했다. 그간 볼 수 없었던,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잔인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현실이 되었다.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이라고 증오하고 비판했던 일이 실제 내 눈 앞에 벌어졌다.
나는 더 이상 대화를 진행할 수 없었다. 화가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집까지 가는데 조용히 운전에만 집중했다. 집에 도착했다.
나: 아빠, 개장수 전화번호 알려주세요. 성견인 데다가 덩치도 커서 개장수에게 보내면 입양도 제대로 안되고 최악의 곳으로 갈 수도 있어요. 제발 알려주세요. 훈련사를 알아보고 행동 교정시키면 돼요. 아빠, 엄마 신경 안 쓰도록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이후에 똘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다른 곳에 입양 보낼게요. 똘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래요. 아시잖아요. 제가 올 때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한창 뛰어놀고 냄새 맡으며 산책해야 할 아이를 가둬 두었으니 얼마나 스트레스받았겠어요.
아빠: 안 돼. 끝났어. 사람 한 번 문 개는 못 키워. 신경 쓰지 마라.
나: 아빠 제발요.
아빠: 아, 정말 너 왜 그러냐? 그렇게 할 일이 없냐?
나: 아니 그러면 저나 동생이 그렇게 해도 똑같이 하실 거예요? 가족이에요. 가족. 똘이도 가족이라고요.
무주 집에 들어온 지 30분도 되지 않아 밖으로 나와버렸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일요일인 데다가 비까지 오는 바람에 길에 사람이 없었다. 읍내에 유명 영양탕 집을 다짜고짜 찾아갔다. 개장수라는 말은 차마 쓰지 못했다.
나: 안녕하세요? 혹시 개 사업하시는 분이라고 해야 하나요, 전화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사장님이 당황하며 뜸을 들였다.)
나: 다름이 아니라 강아지를 데려오려고 하거든요. 아빠께서 강아지를 팔아버렸는데 전화번호를 알려주시지 않아서요. 죄송합니다..
사장님: ... 아닙니다.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번호를 검색한다.) 여기 전화번호 드릴게요.
전화번호를 받아 적었다. 똘이가 무사하기만을 바랐다. 개장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말하고 혹시 오늘 무주에 방문했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일단 업자들은 집에서 키우는 일반 애완견은 크기가 작아 구매하지도 않고 도축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본인은 무주에 간 적도 없고 학산에서 도사견을 번식시키고 키워서 보신탕 집으로 공급을 한다고 한다. 그러니 강아지를 별도로 구매하거나 판매하지는 않는단다. 물론 개를 사서 자그마하게 분양사업도 하는 업자들도 있지만 본인은 그렇지 않단다. 그러더니 대뜸 견종이 뭐냐고 물었다. 대답을 채 하기도 전에 “혹시 진돗개예요?”라며 물었다. 진돗개는 아니지만 진돗개와 풍산개 믹스견이고 6세라 다 큰 성견이라고 답했다. 그러더니 아마도 똘이처럼 덩치가 큰 성견은 분양이 안 될뿐더러 개장수들이 사지도 않을 거란다.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전화를 끊었다.
당시엔 몰랐는데 견종을 말하지도 않았는데 진돗개냐고 물었던 게 미심쩍었다. 하지만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똘이와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그리고 똘이를 살해하고 방관한 아빠와 엄마가 있는 '그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친구와 간단히 저녁을 먹은 후 서울로 올라갔다.
똘이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버림받았다고 스스로 자책하고 있지 않을지, 간절히 목 놓아 울고 있는 건 아닌지. 진작 똘이의 고통스러운 생활을 알고 있었음에도 가끔 산책 한 번 나가는 것만으로 스스로 용서하고 똘이를 위로했던 모든 날들이 미안했다. 내가 좀 더 진지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였다면, 그리고 애썼다면 괴로웠던 똘이의 일상을 바꿔줄 수 있지 않았을까. 나의 욕심과 가족들의 욕심이 똘이의 단 한 번의 생을 불행히 만들었던 건 아니었는지 자책했다. 아무런 힘이 없는 자책이었다.
똘이는 나와의 산책에서 단 한 번도 다른 동물이나 사람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았다. 짖거나 무는 행동, 공격적인 행동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일반 강아지에 비해 덩치는 클지 모르지만 내게는 그저 산책을 좋아하는 강아지였다. 물론 그 외모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난 항상 똘이와 산책할 때 사람이 지나가거나 다른 동물들이 보이면 다른 산책로를 이용했다. 불가피하게 마주쳐야 한다면 똘이와 산책을 멈춰 서고 똘이를 진정시키고 앉게 했다. 위협적인 행동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똘이는 말이 없다. 꼬리와 입과 눈 그리고 발로 감정을 표현한다. 온몸으로 의사를 전달한다. 사람을 반길 때는 펄쩍펄쩍 뛰기도 하고 골목에서부터 걸어 들어오는 가족들의 냄새와 발자국 소리로 알아채고서 반기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말을 하지 않지만 마음의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들을 수 있었다.
"똘이가 변했어"
아빠와 엄마는 똘이가 변했다고 이야기했다. 아빠와 엄마는 똘이에게 교감을 원한 게 아니었다. 충성을 원했다. 아빠와 엄마를 물었던 건 일종의 의사표현이었는데 그따위 의사표현은 '불충'이었다. 감히 짐승이 사람을!? 똘이는 그동안 괴로웠다고 쌓였던 고통을 표현한 것이다. 바깥 냄새를 맡고 싶었고 오랜만에 바깥 냄새를 맡으니 흥분되었던 것 같다. 주체할 수 없었던 거다. 처음부터 아빠와 엄마를 물려고 했던 게 아니라 아마 아빠의 강한 통제에 아마 더 흥분해서 입질을 하였던 것 아닐까?
아빠는 똘이가 아빠와 엄마를 물게 된 이유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을까? 똘이에게 가장 많은 시간과 애정을 쏟은 건 아빠였다. 대소변을 치우는 몫도. 하루에 두, 세 번 밥을 주는 것도. 그렇기 때문에 똘이에게 물린 아빠는 몸보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아빠가 마냥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아빠를 용서할 수 없다.
똘이는 산책을 좋아했다. 마당에서 뛰노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산책을 매일 가야만 했다. 그런데 똘이가 성체가 되면서 힘이 더욱 강해졌다. 반면 부모님은 나이가 들면서 기력이 약해졌다. 산책을 데리고 나갈 상황이 아니었다. 2019년 이후로는 짧으면 한 달에 한 번, 길면 세 달에 한 번 오는 '내'가 해주는 산책이 전부였다. 똘이에게 미안했고 미안하다. 똘이와의 마지막 산책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 날은 뭔가 이상했다. 무주에 저녁 늦게 도착한 날이었는데 똘이의 눈빛이 이상했다. 밤 11시가 넘었지만 산책을 다녀왔다. 그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또 산책을 다녀왔다. 그리고 엄마에게 조심스레 똘이를 입양 보내자고 제안했다. 엄마도 이미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빠가 워낙 똘이를 좋아해서 반대했다고 한다. 그 대화를 나눴던 날이 똘이를 본 마지막 날이었다.
아빠가 똘이를 개장수에게 보낸 그 이후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무기력했다. 똘이가 간 곳도 알 수 없었고 똘이의 생사 또한 알 수 없었다. 진실을 안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진실을 알지 못할 때 더 괴로운 법이다. 똘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몰랐다. 그날 밤 저녁 엄마는 내게 똘이를 안락사시켰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믿을 수 없었다.
다음날 월요일, 엄마에게 장문의 문자가 왔다. "똘이를 보내줘야 한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희도 가슴 아프겠지만 엄마와 아빠가 더 마음이 아프다. ... " 이런 내용이었다. 통화하기 싫었지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아이가 우는 것처럼 울먹이며 이야기했다. 엄마는 전날 밤 잠도 못 자고 밤새 울었다고 했다. 너무 슬퍼서 아빠를 설득하려 했지만 아빠는 완강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전화해서 아빠를 바꿔주었고 결국 외할머니와 통화 이후에 아빠는 설득되었다고 한다. 아빠는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 개장수에게 전화했다. 아빠는 개장수에게 아들도 슬퍼하고 아내도 슬퍼해서 다시 데려오려고 한다고 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말 끝에 엄마는 이야기했다. 똘이는 이미 ‘해체’되었다고. 정확히 그 단어였다. ‘해체’.
아빠가 전화를 바꿨다. 아빠는 살짝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사과의 한 마디도 단순했다. 마치 전화 한 통으로 똘이를 개장수에게 보냈을 때처럼. 그날의 통화는 부모님과의 마지막 통화다. 3개월이 훌쩍 지났다. 당분간은 차마 ‘그 집’에 갈 수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당분간 후레자식으로 지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