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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May 28. 2021

그러면 치킨도 안 먹어요?

초보 채식주의자. 그때는 채소를 먹으면서 마음과 체질이 변화해가는 시기였다. 과자에 들어가는 동물성 재료에는 문제의식이 없던 때. 매 끼니때마다 스스로와 싸웠다. 채식한다고 드러내지도 않았던 시기라 의도적으로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지 않기도 했다. 괜히 채식한다고 소문냈다가 나중에 다시 육식하면 너무나도 창피하지 않나. 상상만 해도 부끄럽다.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렸다. 친구와 가족을 만나 채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홍보하거나 설득할 겨를이 어디 있나. 일단 황급히 설득시켜야 할 건, 바로 나의 뇌와 입. 30년 간 길들여진 녀석들을 설득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동물들이 칼에 찔리고 피를 쏟고 비명을 지르는 현실. 문자로 읽고 영상을 통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 가려져 있는 현실을 알아가는 과정도 힘들었지만 어디에서도 피 흘리는 동물을 볼 수 없는 현실에서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것도 힘들었다.


정말 힘들었던 건 매번 찾아오는 퇴근길.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서 지상으로 올라온다. 도시의 노동자, 우리네 모습은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도축되고 가공되는 동물의 모습과 흡사하다.


헬스장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아르바이트생보다 나를 먼저 반기는 건 치킨집 치킨 냄새였다. 아마 에스컬레이터 위에 있던 모든 이들 또한 이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딱히 저녁에 정해놓은 메뉴가 없는 이들에게는 저녁 메뉴가 결정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에스컬레이터가 출구 근처에 도착하자 질서 있게 서있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그중 몇몇은 피리 부는 사나이의 선율에 홀린 쥐처럼, 치킨집으로 향했다. 하마터면 나도 그들을 따라갈 뻔했다. 초보 채식주의자에게 퇴근길 에스컬레이터는 험난한 시험대였다.


치킨사(史) 그리고 치킨철학

'자서전을 쓴다면 치킨을 빼고 쓸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삶을 되돌아보면 치킨은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가계 재정이 넉넉지 않았지만 부모님은 먹는 것에 돈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다. 아들이 '무엇을 갖고 싶다'라고 말하는 데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셨지만 '무엇을 먹고 싶다'라는 표현에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주셨다. 특히나 치킨 같은 경우에는 무조건 오케이였다. 가족 모두가 좋아했고 큰 부담이 되지 않는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무주군내에서 나름 도시의 모습을 갖춘 '무주읍'에 살았다. 어린 시절에는 면소재지가 아니라 읍소재지에 산다는 사실에 어깨가 으쓱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치킨집 개수가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하는데 한몫하지 않았을까. 우리 집에서 주로 시켜먹는 치킨집이 있었다. 무주읍내 치킨계 양대산맥, 페리카나와 멕시카나. 엄마는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페리카나 후라이드 치킨을, 나는 빨간 양념의 멕시카나를 좋아했다.


저마다 치킨 철학이 있다. 나는 맛있는 부위부터 먹는다. 다리, 날개, 퍽살 순이었다. 뼈 있는 치킨을 시키면 꼭 찾아먹는 부위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위인데. 약간 뼈가 말린 듯이 생긴 부위를 좋아했다. 그 부위 안에는 콩팥(?)이 들어있었는데 그렇게 구수할 수가 없다. 치킨을 먹을 때 나만 아는 보물찾기 같은 재미였다.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치킨집이 무주에 자리를 잡았다. 다사랑, BHC, 교촌, 네네, 호식이두마리, 또래오래, 닭살이야 등. 치킨집 개수가 늘어나는 속도 정도라면 무주는 대도시가 되고도 남았을 텐데. 아쉽게도 치킨집 개수만 늘어났다. 촌에 사람은 줄어드는데 이상하게도 죽는 닭은 늘어난다. 어쨌건 그렇게 무주에서의 치킨 역사는 막을 내린다.


치킨을 위한 유학길?

나름 촉망받는 무주의 인재는 유학길을 떠난다. 치킨 유학도 시작된다. 대도시 전주에는 도시 크기에 걸맞게 다양한 치킨이 있었다. 기숙사의 친구들과 함께 일주일에 두세 번 치킨을 먹었다. 반반도 좋고 후라이드도 좋고 양념도 좋았다. 어쨌든 치킨이지 않은가. 한 번은 기숙사 4층에 살 때였다. 저녁 10시가 되면 기숙사 출입문을 봉쇄했다. 공부 꽤나 하는 학생들이 모인 기숙사였다. 문제가 있다면 답이 있는 법. 우리는 수학 문제집 단원 맨 마지막에 있는 심화 문제를 풀듯, 머리를 맞대고 치킨을 시켜먹을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쉽게 해답이 나왔다. 바로 줄넘기. 줄넘기와 줄넘기를 엮어 치킨이 담긴 비닐봉지를 걸어서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듯 치킨을 길어 올리는 것이다. 봉쇄된 출입문을 뚫고 치킨을 입성시킨 우리는 전리품을 나누듯 치킨을 해치웠다. 대학 때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배달시켜 먹기도 하고 순찰하듯 거의 모든 치킨집을 돌아보았다. 취업에 성공하여 서울로 왔을 때도 치킨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무미건조한 서울 일상에 단비 같은 존재였고 반지하방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실낱처럼 들어오는 빛 같았다.


그러던 나는 동물권을 이유로 채식을 하기로 한다. 치킨을 입에 대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무슨 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치킨 금식 선언이라니.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는데 나를 오랫동안 알고 있던 가족과 친구들은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러면 치킨도 안 먹어요?"

채식을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그러면 치킨도 안 먹어요?' 그 뒤로 물고기도 안 먹어요? 우유는요? 등 다양한 질문이 쏟아지지만 대부분 첫 질문은 '치킨'이다. 그만큼 사람들 삶에 중요한 존재라는 걸 의미한다. 게다가 결혼한 사실을 밝히면 뒤따라오는 질문은 "아내는요?"다. 내가 채식을 하는 동안에도 아내는 치킨을 시켜먹었다. 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가끔 해주면 친구들의 동공은 커지면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지인들은 절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뒷 이야기를 궁금해한다. 흥미로워 보이는 영화의 예고편만 보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은 질문을 쏟아낸다. 치킨아내와 노치킨남편의 저녁 식탁이 궁금한가 보다.


지금은 아내도 치킨을 '못' 먹지만 1년 전만 해도 한 두 달에 한 번 꼴로 치킨을 시켜 먹었다. (아내는 내가 채식을 하기 전에도 고기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아내는 냄새에 괴로워하는 내게 치킨의 튀김만 손수 골라주었다.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두 번 거절하고 세 번째 받아먹었다. 수영장에서 두 발을 대고 헤엄치는 꼴이랄까. 이제야 글을 통해 밝히는 사실이지만 채식을 시작하고 반년 정도는 치킨을 먹은 것도 아니고, 안 먹은 것도 아니었다. '튀김가루은 닭의 살은 아니야.' 스스로 그리고 아내를 그렇게 설득했다. 그러던 어느 날 튀김을 먹는데 튀김 안쪽에 허엿한 무언가가 보였다. 살점이었다. 아 내가 지금까지 먹어온 게 튀김만은 아니었구나. 이후로는 튀김도 먹지 않았다. 아내도 손수 튀김을 골라주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됐다. 돌아보면 참 추접스럽기도 하지만 튀김만 먹던 그 시절이 아니었다면 치킨을 끊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네가 치킨을 정말 좋아했잖아... 치킨 시켜먹을 수 없을 때에는 편의점에서 닭다리를 사갈 정도였으니까."

친구 명훈의 말이다. 내가 치킨을 입에도 대지 않는 모습이 명훈에게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나 보다. 우리는 지난 만남에 돈가스를 먹었다면, 이번 만남에는 치킨을, 다음 만남에는 삼겹살을 먹을 정도로 육식 만찬을 즐겼다. 치킨을 좋아하지만 1인 1닭은 부담스러운 내게, 명훈을 만나는 시간은 치킨을 먹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명훈, 치킨 때문에 당신을 만난 건 아니야...)


가끔 치킨을 즐겨먹던 나의 모습을 이야기해주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치킨을 먹던 나의 옛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나도 한때 학살의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늘 인지하고 함부로 비방하거나 비난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물론 몰라서 먹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동물들이 겪는 현실을 지속적으로 알려야겠다는 다짐을 함께.


이제 나는 1인 1닭을 반대한다. 엄밀히 말하면 치킨을 만들기 위해 사육하고 운송하고 학살하는 시스템을 반대한다. 어르신들의 말씀처럼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자동차에 기름 넣듯 매주 치킨을 먹던 내가 치킨을 반대하다니. 건강한 치킨, 고통 없는 치킨, 자유로운 치킨, 동물복지 치킨은 없다. 치킨이 되기 위해, 닭가슴살이 되기 위해 태어나고 죽을 뿐이다. 병든 닭이든 건강한 닭이든 결국 치킨이 된다.


결혼 후에 우리 부부는 이사했다. 사는 지역은 달라졌지만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삶은 똑같다. 또한 여전히 Ctrl+C, Ctrl+V한 것처럼 지하철역 출구 앞에는 치킨집이 있다. 하지만 달라진 게 있다. 나의 뇌와 입.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시험이라고 여겼던 치킨 냄새가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이제는 역한 냄새로 느껴진다. 닭의 살과 뼈가 타는 냄새다. 냄새가 코를 타고 들어와 신경을 타고 뇌에 도착하면 뇌에서는 자동적으로 영상이 재생된다. 쇠고리에 거꾸로 매달려 피를 쏟고 비명을 지르는 닭의 영상 말이다. 트라우마가 이런 걸까. 비명과 피로 물든 영상이 매번 재생된다. 진실을 보았고 진실은 내 몸에 남았다. 마냥 고통스럽고 괴롭지만은 않다. 진실은 우리를 자유케 하니까.


이 이야기가 "그래도 치킨 먹고 싶을 때 있지 않아?"라는 질문에 충분한 답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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