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하와이 신혼여행 이야기를 자주 꺼낸다. 하와이에 대한 기억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와이안 피자를 자주 먹기 때문이다. '반하와이안' 피자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파인애플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 주길 바란다. 파인애플은 죄가 없다.
하와이 신혼여행 당시 하와이안 피자는 딱 두 번 먹었다. 첫 번째는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파이터> 하와이 편에 나온 피자집이다. 숙소로부터 꽤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오픈카를 타고서 상쾌한 하와이 공기를 애피타이저로 마셨다.
40분간 고속도로를 달려 피자집에 도착했다. 피자집은 호숫가에 있었는데 사람이 붐비지 않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다만, 토핑을 직접 선택해야 하는 고난도 피자집이었다.
'당황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자주 주문해본 것처럼.'
어떤 말을 듣고 어떤 말을 했는지 모르는 사이 주문이 끝났다. 어떤 피자가 나올지 상상이 되지 않아 불안했다. 손님이 우리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부터는 불안함은 증폭되었다. 피자의 '맛'에도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주문했던 피자가 나왔는데 당연하게도 이상한(?) 피자가 나왔다. TV 속 먹음직스러웠던 피자의 모양새와는 너무도 다른 피자가 나왔다. 백종원씨를 탓할 게 아니라 내 영어 실력을 탓해야 하는 상황인데 솔직히 백종원씨가 원망스러웠다.
가게 앞 요트가 정박해 있는 바다를 바라보며 미각이 아닌 시각의 힘을 빌려 피자를 입에 넣고서 씹어 삼켰다. 그랬기 때문일까. 그날을 떠올리면 그때의 피자 맛은 기억나지 않고 오로지 바깥 풍경만이 떠오른다. 참 다행이다.
두 번째로 먹은 하와이안 피자는 하와이 공항에서 먹었던 피자다. 햄버거와 피자 등 다양한 음식을 파는 음식점이었는데 참새와 비슷한 조그마한 새들이 음식점 내부에서 사람들 사이로 날아다녔다. 새들은 땅에 떨어진 음식물을 먹고 있었다.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음식을 먹었다.
참 진기한 풍경이었다. 우연찮게 이때의 피자 맛도 기억나지 않는다. 새들이 날아다녔던 음식점의 풍경만 기억에 남았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직전 하와이에서의 두 번째 피자 맛을 보며 생각했다. '한국형 하와이안 피자가 찐이구나.'
한국에 돌아와서도 하와이안 피자를 자주 먹었다. 신혼여행 당시에도 채식에 대한 고민을 하던 차였고 하와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채식을 막 시작했기 때문이다. 치즈를 뺀 하와이안 피자는 채식인에게 아주 완벽한 요리였다(사실 내게는 파인애플만 올라가면 다 하와이안 피자다).
요즘에 비건 피자를 판매하는 음식점이 꽤 늘어나기도 했지만 정작 내가 사는 동네에는 하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피자가 먹고 싶어지면 재료를 사서 요리해 먹는다.
요리라고 하기엔 조금 부끄럽지만 오븐만 있으면 쉽게 요리할 수 있는 비건 피자 레시피를 소개한다. 필수 준비물은 비건 토르티야(혹은 피자 도우), 파인애플, 비건 마요네즈, 토마토 페이스트 그리고 각종 채소다.
1. 토르티야 위에 토마토 페이스트를 고르게 발라준다. 덕지덕지 바르면 짜기 때문에 고르게 펴 발라야 한다.
2. 비건 소이 마요나 비건 갈릭 마요 듬성듬성 뿌려준다.
3. 채소는 먹기 좋은 크기와 모양으로 썰어 기름에 살짝 볶아준다.
4. 볶은 버섯, 양파, 감자, 당근을 토마토 페이스트 위에 올려놓는다. 피망과 파인애플은 볶지 않고 생으로 올려놓는다.
5. 오븐에 넣어 200℃ 온도로 10분~15분 간 데워준다.
조금 어설프지만 하와이안 셔츠가 떠오르는 알록달록한 피자가 완성되었다. 토르티야의 쫀득함과 파프리카와 양파의 아삭함을 비롯한 각종 채소의 다양한 식감, 소이마요의 고소함, 케첩과 파인애플의 새콤달콤함이 잘 어우러진다. ‘피자와 파인애플’은 상상도 못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파인애플만 빼고서 만들면 된다. (하지만 파인애플을 빼면 피자는 ‘하와이안’이 될 수 없다.)
하와이 여행 후 하와이안 피자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우리는 함께 공유하는 추억이 생겼고 채식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욱 강경한 하와이안 피자파가 된 이유도 그중 하나다.
우리 부부는 하와이안 피자를 먹을 때 하와이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파인애플 하나 얹었다는 이유로 우리는 식탁 위에서 다시 하와이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며 노트북 앞에서 또다시 한번 하와이로 여행을 떠난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참 이상한 존재다. 하와이에서는 제대로 된 하와이안 피자를 먹지도 못했지만 집에서 토르티야에 파인애플을 얹고 하와이 추억을 이야기한다. 이와 반대로 막상 해외여행을 가서 한국음식을 찾는다. 예를 들면 아내는 해외에 갈 때 컵라면을 반드시 챙긴다. 유럽의 최고봉 스위스 융프라우에서 컵라면을 파는 건 어찌 보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융프라우 정상에서도 신라면을 먹었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가지 못한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어떤 식으로든 여행을 하고 그 안에서 만족하는 법을 터득하는 게 인간이니까.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내는 하와이로 이미 추억여행을 떠났다. 노트북 앞 내 뒤통수에 대고서 하와이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다. 지금 우리가 그때의 하와이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언젠가 '집콕 휴일'을 그리워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