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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Aug 29. 2021

지리산 무박 종주 중 찾아온 세 번의 위기

봤던 영화를 또 보는 마음. 이전에 인상 깊이 봤던 장면에 대한 기대감과 이전에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장면에 대한 설렘. 바로 그 마음으로 지리산에 갔다. 이번이 세 번째다. 지리산이라는 장소만 같지. 산을 함께 오르는 이도 달랐고 거리도 달랐다. 이번 지리 메이트(mate)는 서울 메이트 명훈이다. 걸어야 할 거리는 총 35.3km. 계획은 35.3km였지만 중간에 계획을 변경해서 29.2km를 걸었다.


방울토마토, 복숭아, 보리 과자, 커피 비스킷, 콘스틱, 군밤, 햇반, 비건라면, 비건떡국까지. 주름졌던 가방 표면이 오랜만에 쫘악 펴졌다. 마치 다림질하지 않아도 되는 배불뚝이 와이셔츠처럼 말이다.

"이렇게 네가 많이 챙겨 올 줄 알았으면 아까 장 볼 때 덜 살 걸 그랬다."

토할 듯한 가방을 보면서 명훈은 말했다.


다른 시간대의 버스를 탈 선택권이 없었다. 성삼재행 버스는 하루에 딱 하나 밤 11시 버스뿐이었다.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했다. 성삼재 버스 플랫폼이 어딘지 찾는 와중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명훈에게 물었다.


"냄비 챙겼지?"

"아... 놓고 왔다."


첫 번째 위기.

밤 10시 54분. 냄비를 놓고 온 것을 깨달았다. 냄비가 없으면 물을 끓여서 햇반을 데우거나 라면을 끓일 수도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다 있다는 다이소는 문을 닫았고 터미널 내 모든 상점의 불은 꺼졌다. 냄비를 살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지리산에 대한 불꽃같은 기대감은 두려움으로 변했고 순간적으로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집에 가고 싶다."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될 거야."

"형, 그러면 주변에 버려진 냄비라도 있는지 잘 찾아보자."


이미 정신은 나갔다. 버스 정류장에 무슨 냄비가 있겠는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버스를 놓치지 않았다. 우리는 지리산 성삼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안에서 친구를 만들어볼까, 그래서 뭐 냄비를 구매하든지 빌려보든지 해보자"


내심 거짓말이기 바랐다. 아니, 명훈이 준비한 지리산 서프라이즈라고 믿었다. 성삼재에 도착해서 냄비를 꺼내 주길 간절히 바라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잠을 푹 자야 산행을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어떻게든 잠들려고 애썼다. 평소에는 머리만 대면 잠들었는데 무엇 때문인지 잠들지 못했다. 냄비 때문이었을까? 선잠을 자다 깨다 반복했다. 휴대폰을 꺼내 '성삼재 코펠'을 검색했다. 무엇이든 다 찾아주는 포털사이트에도 '성삼재 코펠'은 없었다. 지리산으로 가는 내내 온통 냄비 생각뿐이었다.


떨리는 마음, 떨리는 몸, 떨리는 사진

두 번째 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새벽 3시, 여름날 지리산의 추위. 사람들은 주섬주섬 가방에서 외투를 꺼내 입는다. 산은 도심지보다는 기온이 낮기 때문이다. 3번째 지리산. 다시 오를 생각을 하니 떨린다. 마음 때문이었을까. 몸도 함께 부르르 떨린다. '역시 산이라 시원하구나.' 성삼재에서의 풍경을 보기 위해 전망대에 올랐다. 바람이 피부를 타고 들어오더니 몸과 입이 춤을 추듯 떨기 시작했다. 떨리는 몸이 내 마음대로 제어되지 않자 공포감이 엄습했다. 한여름에 말도 안 되는 이 추운 날씨, 그리고 물을 끓일 냄비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까지. 가을 남방과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가방을 멨다. 가방이 바람막이가 되어줬고 가방 무게 때문에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가서 그런지 체온이 올라갔다. 물을 끓일 냄비만 있으면 딱이다.



헤드랜턴으로 비치는 곳을 제외한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수놓았다. 흑암 가운데 별들이 더욱 빛난다. 노고단 고개 입구에 가니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사람들이 노고단에서의 일출을 보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우리는 갈 길이 멀다. 곧장 등산로에 다시 들어섰다. 열대우림을 가보지도 않았지만 열대우림이 떠올랐다. 자욱한 안개와 잎마다 맺힌 이슬과 젖은 땅. 평소 마시던 서울의 공기와 상쾌한 공기 덕분에 힘차게 걸었다. 냄비를 놓고 왔다는 사실도 잊은 채로.


혼자보다 둘이 낫다? 요즘엔 혼자가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는 사람도 많지만, 난 그래도 혼자보다 둘이 낫다. 등산도 늘 그랬다. 혼자서도 잘 다녔지만 둘이 더 좋았다. 무엇보다 같은 날의 공기와 풍경을 함께 추억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낭만적인가. 뭐 상황에 따라서는 끔찍할 수도.


사색을 하고 싶다고? 고독을 즐기고 싶다고? 20시간 산을 걷다 보면 둘이 걸어도 충분히 고독을 느낄만한 침묵의 시간이 생긴다. 걱정마라. 안전을 위해서라도 산에는 혼자보다 둘이 가는 게 낫다. 그런데 명훈과 나는 서로를 너무 믿었기 때문일까. 나는 양말을 놓고 와서 명훈의 양말을 빌렸고. 명훈은 냄비를 놓고 왔다. 혼자 왔다면 위험한 순간을 대비해 더욱 철저하게 준비했을 텐데 우리는 서로를 너무나 믿었기 때문이었을까. 느슨한 준비로 지리산에 왔다.



냄비는 없지만 끼니를 때울 수 있다. 물을 끓일 필요가 없는 마늘바게트와 버섯야채죽을 해치웠다. 배고픈 상태에서 식은 죽 먹기는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초록 풀숲을 헤치고 도착했던 대피소와 일부 전망대에서의 안개가 자욱한 풍경이 기억에 남는다.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했을 때였다. 명훈은 본인의 텀블러를 데워보자는 신박한 의견을 제시했다. 명훈이 출발 직전 "어떻게든 될 거야"라는 말을 실현하려는 시도다. 어떻게든 해보려는 시도였지만, 어떻게든 될 것 같지는 않았다. 텀블러는 진공 상태의 사이 공간을 이용하기 때문에 "어림없는 시도일 거라고, 텀블러만 망가질 것"이라고 말하며 명훈을 말렸다.



오후 2 30.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했다. 굽이굽이  능선을 따라 회색빛 안개가 둥둥 떠다니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초록색 빛깔의 산이 고개를 내밀었다, 숨었다를 반복했다. 라면봉지를 열고 수프를 털어 넣은  거꾸로 마구 흔든다. 누런 라면에 붉은 수프가 듬성듬성 묻어 있다.  트인 풍경을 바라보며 생라면을 먹었다. 비상식량이 별미가 되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속도로는 제시간에 천왕봉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다. 어림없다. 어쨌건 미리 예약해 둔 숙소로 가려면 세석대피소까지 가서 백무동으로 내려가야 했다.



걷다가 쉬면서 간식을 먹고 다시 일어나 걸었다.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르지만 어느새 세석대피소에 다다랐다. 가지고 있던 음식은 동이 났고 명훈이 가져온 바나나칩만이 남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등산화 밑창은 뜯어졌고 가방 속 크록스 샌들을 꺼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함마저 찾아왔다.



세 번째 위기는 무릎에 찾아왔다.

오후 6시 30분, 해가 질 무렵 세석대피소에서 백무동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바위로 된 내리막길과 계단을 계속 내려간다. 무릎 통증은 심해졌고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누가 무릎의 인대를 꽉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명훈이 챙겨 온 무릎보호대가 통증을 그나마 완화시켜줬다. 풍경은 어둠 속에 가려졌고 계곡 물소리는 끊기지 않았다. 풍경보다 더욱 보고 싶었던 건 표지판. 표지판과의 밀당이 시작되었다. 보물찾기 하듯 표지판을 찾았다. "갈 길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해!" 그런 마음이 들 때면 왠지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표지판이 등장했다. 그러다 마음을 비우고 걷다 보면 표지판이 나타났다. 반가움에 표지판을 확인하지만 금세 기분이 상하고 약 오르기까지 하다. 2km 정도 걸었을 거라 예측하면 1km 정도밖에, 1km 정도 왔을 거라 예측하면 0.5km 정도밖에. 애가 탔다.



표지판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대략 시간을 계산해보니 이전 코스의 속력과 얼추 엇비슷했다. 어느 순간 마음을 비우고 명훈과 다짐했다. "부지런히 걷는 수밖에 없다." 걷다 보면 반드시 끝이 오겠지. 무념무상으로 걸었다. 잠시 쉴 땐 아픈 무릎을 부여잡고 '내 인생에 무박종주, 다시는 없다.' 되새겼다.


오후 10시. 백무동의 빛이 보인다. 자연의 빛이 아닌 문명의 가로등이 이토록 반가울 수가. 살았다. 명훈과 나는 절뚝거리며 예약한 펜션으로 향했다. 불 켜진 냉장고 안의 병맥주가 우릴 유혹했고 우리는 절뚝거리는 발걸음으로 거침없이 냉장고로 향했다. 맥주 한 병을 사서 펜션에 들어왔다. 씻은 후 우리는 허기를 달랬다. 냄비가 없어서 먹지 못해 남은 라면 하나를 끓여 밥을 말아먹었다. TV에서는 영화 <신세계>가 방영 중이었다. 신세계... 언제 잠든지도 몰랐다. 깨보니 몸은 두들겨 맞은듯한 상태였고 오후 일정 때문에 아침 일찍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29.2km, 20시간 산행의 훈장이 온몸에 새긴 채 서울에 도착했다. 한강이 이리도 반가울까.



지금 나는 글을 쓰며 중간에 오대산 국립공원을 검색하고 있다.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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