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계획 조례에 용적률뿐만 아니라 고도제한도 반영해야...
시골 무주에서 상경한 나에게 서울 롯데타워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어떤 택시 기사님은 화창한 날에 롯데타워 정상에서 북한과 중국 상하이가 보인다고 했다. 농담일 테다. 그만큼 롯데타워가 높다는 거겠지. 실제로 롯데타워 아래에서는 목덜미가 시원해질 때까지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야만 꼭대기를 볼 수 있다. 롯데타워 위용이 이뿐인가. 서울 어디서든 고개를 내민 롯데타워를 보고서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롯데타워 같은 초고층 빌딩 덕분일까. 요즘은 10층, 20층 고층건물을 봐도 그다지 높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추석 명절에 무주에 갔다가 15층 건물을 보고서 입이 떡 벌어졌다. 압도적이었다.
무주읍은 인구가 1만 명이 되지 않는 작은 도시다. 열 손가락으로 아파트 숫자를 셀 수 있을 만큼, 고층 건축물의 숫자도 적은 도시다. 사실 ‘도시’보다는 ‘동네’라는 말이 어울리는 작은 읍이다. 추석 명절에 무주읍 내를 걷던 중 숨이 턱 막히는 순간이 찾아왔다. 1~2층의 주거용 건축물과 상가건축물이 대부분인 도로변에 높게 솟은 15층짜리 주상복합건축물이 내 눈동자를 덮었다. 믿을 수 없었다. 과거에 도로 너머로 보였던 푸른 산은 가로막혀서 보이지 않았다.
故정기용 건축가는 10년 간 무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는 책 <감응의 건축>에서 “건축에서 전일적 접근이란 건축을 개별적 건물로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과 그 주변 환경, 나아가서는 하늘의 질서까지 고려해 넣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15층 주상복합건축물이 주변 환경과 조화롭지 않다는 것은 누구라도 한눈에 알아보지 않을까? 이 건물에 하늘의 질서 따위는 없다. 자본의 질서만이 작동하는 것 같다.
무주에 이렇게 높은 건축물이 지어질 수 있다고?
처음 15층 건물을 보면서 둘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법적인 건축물'이거나 '합법적인 엉망진창 건축물이거나’ 해당 건축물이 있는 부지의 용도지역과 용적률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무주군 군 계획 조례에 따르면 일반상업지역은 용적률 800%, 제1종 일반주거지역은 200%까지 가능하다. 해당 부지는 일반상업지역과 제1종 일반주거지역이 걸쳐 있는 지역이다. 두 개의 용도지역이 걸쳐 있는 경우,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국토계획법)에 따라 각 비율에 따라 용적률이 조정된다. 용도별 면적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어, 국토계획법에 따라 도면에 표기된 면적만큼 가중치를 부여하여 계산해 보았다. 결과적으로 약 670%까지 건축할 수 있지만 해당 부지는 399%까지만 건축하였다.
건축물이 위치한 부지의 면적은 3,564㎡, 연면적은 14,353㎡로 용적률은 399%였다. 결론적으로 불법은 아니다. 해당 부지 용적률이 399%인 이유에 대해서 정보공개 청구를 요청하였으나, 해당 자료의 부존재로 인하여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합법적이지만 조망을 독점하려는 고약한 건물
합법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가? 주상복합건축물에 다양한 상권이 들어서면 인근 주민들과 무주 읍민들에게도 이로운 건축물이라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건물의 역할을 단순히 경제성에만 근거할 수 있을까? 경제성에 근간한다 하더라도 과연 그 건물로부터 나오는 수익은 누구 주머니로 갈까?
고층건물이라고 무조건 비판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비슷한 높이와 규모의 건축물은 이미 무주에 있다. 대부분 공동주택에 해당한다. 기존 공동주택과 15층 주상복합건축물의 결정적인 차이는 '위치'다. 대부분 읍 상권 중심지가 아니라 주변부에 건축되었다. 더욱이 기존에 지어졌던 공동주택들은 주변의 경관을 해치지 않는다. 물론 건축 이전의 경관이 더 좋지만 건축 이후에도 산을 완전히 가리지는 않기에 미간을 찌푸릴 정도는 아니다.
15층 주상복합건축물은 조금 다르다. 앞서 설명했듯 저 멀리 보였던 산을 완전히 가렸다. 그런데 이 건축물이 고약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이 건물이 위치한 부지의 특성 때문이다. 이 건축물은 읍 중심지 도로변을 끼고 있기도 하지만 반대편에는 남대천을 끼고 있다. 강과 산이라는 훌륭한 조망권을 독점하고 있다. 평소 골목을 걷던 읍민들은 이제 주상복합건축물 껍데기만 봐야 한다. 푸른 하늘과 산 능선이 보이던 풍경을 이제는 대리석과 네모난 창문 껍데기가 대신한다. 그 창문 안에 거주하는 소수만이 창문 너머 강과 산 그리고 푸른 하늘의 풍경을 독점한다. 경관을 사유화하기 사람들의 욕망과 자본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경관은 공공재다. 빈자와 부자를 가리지 않고, 지역 주민이든 아니든 누릴 수 있어야만 한다. 합법적이지만, 절대 ‘적합한’ 건물은 아니다. 아주 고약한 건축물 아닌가?
용적률과 건폐율뿐만 아니라 지형에 따른 고도제한이 필요하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걸까. 용도지역에 따라 용적률과 건폐율만이 고려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용도지역에 따라 평면적으로 단순히 용적률과 건폐율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고도를 제한해야 한다.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프랑스는 '절대 높이'가 정해져 있고 런던은 고층건물 제한 구역을 정하기도 한다. 국내 사례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서울시는 남산과 평창동을 비롯한 몇 개의 지역에 최고 고도지구가 지정돼 있다.
작은 도시라고 도시계획 조례를 헐겁게 두어서는 안 된다. 애초에 용적률이나 높이제한과 같은 법률들은 최소화하여 제정해야 한다. 낮은 건물을 부수고 높이 올리기는 쉽지만 이미 높이 올라간 건물을 부수기가 어렵다. 또한 이미 토지와 건물이 사유재산화된 대한민국에서, 용적률을 하향하거나 높이제한을 두는 법률을 개정하는 데 현실적인 제약들이 너무나도 많다. 빽빽이 건물이 들어서고 고층 건물이 들어설수록, 법률을 개정하기는 힘들다. 고도제한을 두고 경관을 관리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하는 일이 비록 ‘도둑맞고 문 고치는 일’인지언정 반드시 고쳐야만 한다. 시급한 문제다. 또한 고도제한과 용적률, 건폐율은 주변 환경이나 경사도와 같은 지형을 고려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도시계획/설계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보는 게 필수적이다.
대도시 친구들이 무주를 방문할 때마다 ‘작지만 아름다운 도시’, ‘잘 정돈된 도시’라는 칭찬을 해주었다. 그때마다 시골이라고 주눅들기보다는 고향 무주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다. 물론 나에 대한 칭찬은 아니었지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그 친구들이 다시 무주에 와서 이 건축물을 보면 어떤 말을 할까?
(오마이뉴스 기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