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올해의 책] 김희주 '서울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서울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푸념 섞인 혼잣말로 되뇌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참 모순적이게도 서울살이를 꿈꾸던 내가 서울로 이주한 이후로 내내 고민했던 문제였다. 너른 바다와 숲이 보이는 집에서 사는 상상을 하곤 했다. 마음마저 옥죄는 빌딩 숲속에서 아침 지옥철 사람들 사이에서, 퇴근 후 반지하 방 한 칸에서 종종 상상했다. 언젠가는 '탈서울' 하리라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가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서울을 떠날 수는 없었다. 현실적으로 어디로 가고 싶냐는 것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지역에 있는지가 더욱 중요했다. 최근 대학원 석사과정을 밟는 동안 '서울이 아니라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올해 약 반년 동안 연구 프로젝트 조사원으로서 전라도의 한 지역에 자주 방문했다. 지역에 사는 주민을 만나 인터뷰도 하고 삶을 관찰할 기회였다.
지역에 가겠다고 다짐한 건 아니었지만 고속버스에 몸을 실을 때마다 자주 상상했다. '과연 이곳에서 나는 어떤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일종의 사고 실험. 결론적으로 내 일자리도 문제였지만 라이브 커머스 일을 하는 아내의 일자리가 더욱 문제였다. 이 지역뿐만이 아니다.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다 비슷한 처지일 테다.
서울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연말이 되면 많은 이들이 올해를 돌아본다. 서점가에서는 올해의 책을 선정한다. 한 해 동안 꾸준히 책을 읽어왔고 나름의 서평을 써왔던 나도 감히 올해의 책을 선정해본다. 내가 꼽은 올해의 책은 <서울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다. 속초 북 스테이 '완벽한 날들' 추천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책이다. 답답하게 가슴팍에서 빙빙 돌던 혼잣말이 한 권의 책으로 등장했으니 얼마나 신기했겠는가.
저자 김희주씨는 18년 동안 서울살이를 하다가 지금은 양양살이를 하고 있다. 그는 기자, 기획자, 프리랜서 에디터, 학원 강사, 출판사 대표, 가구 공방 운영자 등을 거쳐 양양에서 새로운 직장을 구했다. 다양한 일을 경험한 만큼, 스스로를 '이력서가 지저분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커리어 관점에서는 손해 보며 살았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연결된 선 같은 이력이 아니라 산재한 점 같은 이력은 불안요소다. 나 또한 매번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그 동떨어진 점들을 어떻게든 이어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에 손해라 할 것까진 없지만 출렁이는 파도 같은 삶은 선택에 대한 기회비용이다.
나는 교육지원직, 온라인 서점 도서 DB 관리자, 건축현장관리인, 객원기자 등을 거쳐 대학원에 다니는 중이다. 이른 때라고는 할 수 없는 나이에 석사 과정을 진학하고 논문에 어려움을 겪는 면까지 닮았다. 내적 친밀감이란 이런 것이었던가. 선배님이라고 부를만한 저자와 책을 찾은 듯한 기분이었다.
충동구매한 양양 집으로 이사갑니다
책은 두 파트로 구분된다. Part1은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Part2는 '양양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연히 만난 바로 이 선배가 '서울살'과 '직업역마살'에 관한 살풀이를 해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어갔다.
서울을 떠난다는 결정을 단 30분 만에 했다는 점에서 놀라운 일이긴 하겠다. 그렇게 우리는 낯선 동네의 모델 하우스에서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서 2년 뒤 양양에 오겠다는 결정을 했다.
- 21p
놀랍게도 저자가 서울을 떠나기로 한 결정은 30분 만에 이뤄졌다. 여행 도중 우연히 모델하우스에 들르게 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하지만 저자가 고백하듯 "서울을 떠나 시골에 살자는 이야기를 종종 해왔다"는 것을 미루어보면 서울을 떠난 결정이 단순히 충동적이지만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집 충동구매가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집 계약은 그간 일과 삶에 관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과 대답이 녹아든 '신의 한 수' 아니었을까.
농부도 공무원도 아닌 양양에서의 일자리
하기야 충동구매도 서울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주거 문제만 보자면 서울보다 다른 지역이 훨씬 양호하다. 그랬기 때문에 충동구매도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서울을 떠나 다른 지역살이를 시도하려는 이에게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다. '취업 남방한계선(수도권 집중화 현상으로 인해 특정 지역 남쪽으로는 내려가기 꺼린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용어)'이라는 말이 괜히 생겼겠는가.
무엇보다 농사를 짓거나 공무원이 되는 게 아니라면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좀처럼 찾기 어렵다.
- 6p
그렇다면 저자는 농부도 공무원도 아니라면 양양에서 어떤 일자리를 구했을까? 집을 충동구매한 2년 뒤, 양양으로 먼저 이주한 남편은 창고 건물에서 공방 '우드샵 다움'을 창업한다. 저자는 서울 일을 정리하고 양양으로 돌아와 한동안 남편과 함께 공방 일을 한다.
이 대목에서 창업, 특히 비수도권 지역 창업의 어려움을 볼 수 있다. 안타깝게 공방은 문을 닫는다. 우여곡절 끝에 창업했는데 성공한 이야기가 아니라니. 다행히도 저자는 도시재생지원센터에 입사하여 양양살이를 지속하고 있다. 글 쓰는 노동자로 살다가 도시재생 일을 하게 된 스토리가 궁금하지 않은가?
종종 미디어에서 비수도권 지역으로 이주한 청년의 행복한 이야기가 낭만적으로 묘사되곤 한다. 적잖은 이들이 비현실적이라고 느낄 테다. 간혹 그들은 경제적 형편이 나을 거라는 합리적인 의심도 거둘 수 없다. 반면 저자는 서울에서 내 집이 없어 2년마다 집을 이사해야만 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랬기 때문이었을까. 공방의 실패 이야기와 탈서울 이야기가 더욱 진솔하게 느껴졌고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이미 지방 소멸을 언급하는 어마 무시한 책들도 일자리를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딱히 해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경보만 울리는 만연한 세태는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저자와 같이 비수도권에서 농부, 공무원이 아닌 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물론 수도권에 계속 거주하고 싶은 이들도 있겠지만, 탈서울을 꿈꾸며 수도권이 아니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이들도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낭만 그 사이의 이야기가 절실한 시대다. 한 가지 제안해보자면, 출판업계뿐만 아니라 지자체나 지역 기업에서는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리는 프로젝트를 기획해보는 것도 고민해 볼 만하다. 비수도권 지역에 일자리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겠지만, 이미 있는 일자리나 지역의 삶이 알려지지 않는 것도 수도권 집중화에 한몫한다. 이는 명백한 악순환이다. 지방기업에서는 인재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도 간간히 들린다. 일자리가 아니라 인재가 부족한 지역도 존재한다는 뜻이다.
탈서울을 향한 막연한 두려움 혹은 낭만 덜어내기
이 책이 탈서울을 향한 막연한 두려움 혹은 낭만으로 가득 찬 생각을 한 스푼 덜어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탈서울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지역에 가서 직접 살아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겠지만, 모두가 실행에 옮기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처럼 서울살이를 꿈꾸며 서울에 올라왔지만 다시 새로운 지역살이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탈서울 가이드북'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이렇게 살면 좋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 133p
책을 읽고 바로 탈서울하겠다는 결심이 확실히 선 건 아니었다. 아무리 비슷해도 저자와 나는 다른 사람이니까. 다만 깨달은 바가 있다.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획에 맞게 착착 진행하며 만족하려는 건 욕심이라는 것. 이는 서울을 떠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겠다. 우리는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후순위는 꾸려놓은 환경 안에서 만족하고 적응하며 살아야 한다. 예를 들면 가고 싶은 지역을 정하고 일을 찾아보는 것이 허무맹랑한 상상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새로운 지역에 간다는 건 무조건 두려워할 일도, 희망으로만 가득 찰 만한 일도 아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가는 저자의 모습을 보며 용기와 위로를 얻었다. 무엇보다 저자가 먼저 걸어간 탈서울 발자취를 따라서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여러 방면으로 탈서울을 고민하는 나도 언젠가 충동구매와 같은 극적인 사건을 덜컥 마주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