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교인이 말하는 천국과 지옥 1편
'가나안 교인이 말하는 천국'은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사라졌는가
#2 하나님 나라와 천국
#3 가나안 교인이 상상하는 천국
십 대에 천국이란 개념을 처음 접했다. 그 천국이 십 대 때 신앙과 삶의 형태를 결정했던 것 같다. 그때 배운 천국은 간단하다. 사후세계 심판받는 공간이었다. 보상받는 천국이 있다면 처벌받는 지옥도 있다. 그때 배웠던 천국은 불교에서 말하는 천당이었다. 성인이 되어서 생각해보니 교회와 목사에게 제대로 속았다. 아니면, 성도들이 이해 못할까 봐 단순하게 설명하려고 불교의 천당을 설명했던 것일까? 오해했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일관적이고 지속적으로 교회에서 ‘불교 천당'을 배웠다. 평소 주일 예배에도 천당을 설교했고, 나를 비롯한 착한 성도들은 아멘으로 화답했다.
어렸을 적 교회는 1년에 2~3번 부흥회를 열렸다. 여러 강사 목사들이 초청되었는데 이상하게도 한결같이 헌금과 복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복은 돈복이었는데 결국엔 다 돈 이야기였다. 종종 신비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강사 분들도 왔다. 교회판 무당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중 한 강사 분은 천국과 지옥에도 층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이 천국을 보여주시며 천국 탐방을 시켜줬다고 한다. 천국의 방은 각종 보석으로 휘황찬란하게 꾸며져 있었다고 묘사했다. (아마 그 보석 방에는 루이뷔통 가방과 롤렉스 시계도 있지 않았을까? 목사님이 부끄러워서 이야기를 못한 듯하다. 시골이라 못 알아들을까 봐 그랬나.) 이생에서 공로를 많이 쌓은 사람들은 층수가 높은 곳에 거하고 그 방의 모습들도 조금씩 달랐다고 한다. 예를 들면, 베드로와 예수님은 7층에 있고, 언더우드 선교사는 5층에 있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나는 '이생에서 5층에도 못 살 테니 천국에서라도 7층에서 살아보자’라는 마음을 먹었다. 새로운 인생을 꿈꾼 것이다. 지옥 탐방 이야기도 들려줬다. 불지옥, 구더기 지옥, 물지옥에 대해 묘사했고 불구덩이에 있는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달라며 소리를 질렀다고 이야기했다. 끔찍하고 잔인했다.
구구절절 천국과 지옥에 대해 묘사했지만, 요약하면 천국과 지옥에도 계급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교회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계급을 경험하는데 천국에도 계급이 있다니 참 끔찍하다. 경쟁 천국! 이런 교회를 다녔으니 내 신앙과 삶이 어땠겠는가.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
땅 속에 묻힌 아무도 모르는 보석이라네
그 보석 발견한 사람은
기뻐 뛰며 집에 돌아가
집 팔고 땅 팔고 냉장고 팔아
기어이 그 밭을 사고 말 거야
CCM '천국은 마치'의 가사 中
거의 매주 이 노래를 들었다. 게다가 나는 율동팀이었다. (다들 멋 좀 부려보려고 기타도 치고 드럼도 치는데 왜 나는 율동을 선택했을까. 춤도 잘 못 추는데 춤이 좋았다. 뭔가 ‘백 프로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교회 할머니들에게 꽤 인기도 있었다.) 입뿐만 아니라 몸으로도 노래를 했으니, 집 팔고 땅 팔고 냉장고 팔아서 하나님 믿고 천국 가야 한다는 신앙이 몸에 새겨진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집은 무주였고 학교는 전주였다. 엄마는 주말에 무주 교회에 가지 말고 학교에 남아 공부하길 원했다. 몇 번을 싸운 뒤, 나는 엄마 몰래 교회 형 집에서 자고 교회를 갔다. 그 날 교회에서 엄마를 만났고 엄마는 울었다. 무엇이 고등학생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또는 맹목적으로 만들었을까. 그땐 순교자의 마음이었는데 지금 보니 <그것이 알고 싶다> 사이비 신도 같기도 하다. 천국과 지옥 교리는 이토록 강력하다.
심판하는 장소로서의 천국을 전부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다만, 문제는 교회가 보상하는 공간으로서의 천국만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말 잘 들으면 천국에서 보상받고 말 안 들으면 지옥 가서 처벌받는다는 교리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오두막>에서는 주인공을 학대했던 아버지를 천국에서 만난다. 천국은 공로와 관계없이 모두가 따뜻하고 고통 없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이와 같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여러 모습의 사후세계에 대해 배웠다면 어땠을까? 과연 고등학생 이현우는 몸과 마음을 다 던지는 헌신적인 삶을 살았을까? 그렇지 않을 거란 걸 교회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천당 교리지만 교인들이 얻는 유익이 있다. 지속적이진 않더라도 교인은 평온함을 누릴 수 있다. 일종의 게임을 하거나 마약을 하는 것과 같은 효과다.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다. 설교를 듣거나 찬양을 하거나 기도를 할 때, 천국을 상상하며 잠시 다른 세계와 차원으로 이동한다. 이렇게 잠시 다른 세계에 다녀오면 시궁창 현실을 견뎌낼 힘이 생긴다. 시궁창인 현세에서 신앙인으로 살면 천국 가서 보상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니까. 현실이 너무 견디기 힘들 때마다 교회에 가서 천국 마약을 투여받으면 된다. 일주일에 한 번으로 부족하면 수요일에도 가고, 그것도 부족하면 매일 아침 새벽에 가면 된다. 교회는 365일 연중무휴다.
그러면 교회가 처벌과 보상으로서의 천국과 지옥에 집착하면서 신실한 교인을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자비한 처벌을 내리는 지옥을 가르치고 세뇌시키는 이유는 교회를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백지수표나 다름없는 천국 보상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급으로 마음껏 부려먹기 위함이다. 교회는 마음껏 부려먹고 열심히 봉사한다고 토닥거려준다.
열심히 일해, 보상은 하나님이 주실 거야, 나중에.
자본주의가 착취 없이 굴러갈 수 없듯이 교회도 교인들의 착취 없이 굴러갈 수 없는 구조다. 그 구조를 체계화하기 위해서는 교리가 필요한다. 사후에는 심판이 있고 심판에 따라 천국과 지옥에 간다는 교리다.
교인들은 무급으로 성가대도 하고 주일학교 교사도 하고 식당봉사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찬양단도 하고 가끔 교회청소도 하고 세차도 하고 창고 정리도 한다. 그러다가 교회에서 마주치는 목사님이나 장로님에게 칭찬 한 마디를 들으면 호랑이 기운이 솟는다. 어쩌면 천국의 보상이 아니라 그 칭찬 한마디가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다양한 일을 하면서 많이 배웠고 성장했다. 재미도 있었다. 그래도 용서는 못한다. 나는 기도한다.
하나님, 만약 심판하실 거라면
나 말고 나를 속인 교회와 목사들 먼저 심판해주세요.
십 대 시절에도 의문이 들었던 건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왜 목사님들은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거지, 무급이 아니라? 생계유지를 해야 한다고? 그럼 스님들이나 신부님들처럼 생계유지비 정도만 받으면 되지 않나. 왜 규모 좀 되는 담임목사들은 차도 좋고 월급도 많을까. 천국에서 보상받을 생각이 없는듯하다. 이 땅에서 다 챙기려는 속셈인가. (안타깝게도 부교역자들은 노동환경이 열악하다.)
목사들이 많은 월급을 원하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자녀들이 있기 때문 아닐까. 외국에서 대학도 다니고 어학연수도 간간히 받아야 하니까. 담임목사 아들이니까 그 정도 혜택을 받아야 한다, 천국이 아니라 바로 지금. 정말 화가 나는 건 그토록 권장하는 봉사에 담임목사 아들들은 많은 시간 할애하지 않는다. 자녀가 문제다. 이 정도면 목사도 결혼 못하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예수천국, 불신지옥' 전도가 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어디선가 변모되여 교회와 목사의 입맛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전해지고 있을 것이다.
내가 불순해진걸까. 뭐, 심판은 하나님이 하시겠지.
이 글은 경험을 토대로 작성하였기에 모든 목사와 교회가 이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힘겹게 목회하면서 참된 복음을 전하고 살아가는 목사님들의 노고와 신앙에 존경을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