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생존투쟁의 기록이 담긴 '사로잡는 얼굴들'
과거 출간 뒤 재미있게 읽다가, 바쁜 일이 생겨 미뤄둔 책이 있었다. 당시 지인의 SNS를 통해 책 출간 소개를 접했던 책이었다. 지인에 따르면 이 책에는 돼지와 말과 같은 '농장동물'의 사진들이 실려있다고 쓰여 있었다. 흥미로웠다. 개, 고양이의 동물권만 주목받는 시대에, 농장동물의 사진 에세이집이라니?
지난해 9월 나온 책 <사로잡는 얼굴들>은 나이 든 동물들을 촬영한 사진 에세이다. 특히 농장동물에 주목했다. 작가 이사 레슈코는 동물권, 노화, 죽음에 관한 주제로 작업하는 사진작가다. 미국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 '하퍼스 매거진(Harper's Magazine)', 영국 '가디언(The Guardian)' 등에 작품이 게재된 바 있다.
저자 이사 레슈코는 나이 든 동물의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거의 10년 간 미국 전역의 생추어리, 즉 동물 안식처이자 보호 구역인 곳들을 돌아다녔다. 그가 방문했던 생추어리는 닭과 오리, 거위, 돼지, 말 소 등 음식으로 소비되기 위해 사육 돼왔던 농장동물을 모아 이들의 회복과 돌봄을 위해 운영되는 곳들이라고 한다.
저자는 생추어리에서 만난 농장동물과 자신이 기존에 알고 있던 반려동물(개, 고양이 등) 간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또 의도적으로, 나이 든 개의 초상을 조금만 넣었다고도 썼다.
우리는 동물에게 나이 듦을 허락하는가
우리는 통상 반려동물에게는 나이 듦을 허락하지만, 농장동물에게는 나이 듦을 허락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아는가? 보통 돼지는 6개월, 닭은 30일이 되면 도살된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수명이 결정되는 셈이다. 만약 사육되는 과정에서 병에라도 걸리면, 그마저도 살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나이 든 농장동물'은, 그 자체로 인간이 만든 지옥 같은 시스템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다. 즉 사진에세이 <사로잡는 얼굴들>은 생존자의 기록집인 것이다. 동물의 나이 듦을 바라보면서, 어느새 자연스럽게 인간의 폭력성과 권력을 사유하게 된다.
사진에세이의 첫 사진은 이름 모를 수탉의 사진이다. 이 사진은 책 제목처럼 내 눈을 '사로잡았다'. 닭의 모습을 보면서 한참 동안 시간을 보냈다. 이 수탉은 '공장식 축산 농장'의 과정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다. 사진을 보면 나이가 들어 털이 빠졌고, 앙상한 날개뼈도 눈에 들어온다. 날개뼈뿐만이 아니다. 얼굴의 털, 부리, 눈, 벼슬에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이 수탉의 존재는 '닭이 닭답게' 늙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깃털이 빠질 새도 없이 도살되는 대다수의 닭과는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계속 보다 보면 안타까운 마음보다는, 나이 든 닭의 날개뼈가 아름답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나이 든 닭을 본 적이 있는지? 보통 우리가 상상하는 닭의 모습이란, 대부분 살집이 어느 정도 있고 비교적 깨끗해 보이는 산란계나 육계를 상상할 것이다. 나이 든 닭을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동물 사진을 찍는다는 것
책을 읽으면서, 권력을 지닌 인간이 동물을 대상으로 사진을 촬영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요즘은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다. 카메라가 장착된 휴대폰이 대중적으로 보급된 현 상황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더 이상 작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사진을 찍는 촬영자의 태도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촬영자의 태도는 사진의 용도와 관계가 깊다. SNS가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사진은 흥미 위주의 콘텐츠나 자기 자랑으로만 소비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동물을 대상으로 한 사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런 사진 콘텐츠의 특징은 흥미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귀엽고 예쁜 동물의 사진 혹은 동물을 희화화한 사진이다. 동물을 대상으로 쉽게 사진을 찍고, 이를 SNS 콘텐츠로 소비하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만 하는 걸까.
만약 대상이 사람이었다면, 지금처럼 그렇게 쉽게 찍을 수 있었을까. 개인의 SNS에 올리는 게 이토록 쉬울 수 있을까. 수전 손택이 언젠가 했던 "사람들을 촬영한다는 것은 그들을 침해하는 일이다"라는 말처럼, 사진 촬영 또한 그들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사 레슈코의 사진 촬영은 앞서 언급한 현실과는 대비된다. 흥미와 자랑 목적으로 동물을 촬영하여 대상화하는 현실과는 다르다는 뜻이다. 그는 인간의 흥미나 자랑을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다.
사진 촬영 대상과 촬영자 간에 생기는 힘의 불균형이 늘 불편하다는 그의 고백에서도, 나이 든 동물을 촬영하는 작가로서의 윤리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구조된 동물들은 대개 낯선 이들을 경계한다. 그들의 신뢰를 얻어야만 했다. ... 만약 동물이 내 존재 때문에 불안감을 느끼는 것 같아 보이면, 나는 즉시 물러섰다. 그런데도 촬영을 계속하는 것은 그들을 착취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26쪽
비인간동물의 비극적 사건을 인간동물의 세계로
책 <사로잡는 얼굴들>의 이야기를 읽고, 사진에서 동물의 얼굴을 보다 보면 농장동물이 아둔한 짐승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된다. 먹는 동물과 키우는 동물이 따로 있다는 편견은 부서지고, 새로운 길이 열리는 걸 느끼게 된다.
이 동물들은 생각하고 느낄 줄 아는 지각 있는 존재이고, 개별성과 고유성이 있다.
- 31쪽
그러나 눈으로 보고 아는 데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과거 터키 해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을 기억하는지. 이는 전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키며 유럽 난민정책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사진 한 장으로 사람들이 전쟁과 난민 문제의 심각성을 주목하게 만든 사례다. 하지만 사람들 관심은 점차 사그라들고 있다.
책 <태도가 작품이 될 때>의 박보나 작가는 쿠르디 사진을 예로 들며 "멀리서 마음 아파하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비극적 사건을 나의 삶 속으로 가지고 들어오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비인간동물의 비극적 사건을 인간동물의 세계로 연결하는 상상이 필요하다. 사육장과 도살장은 은폐되어 있다. 비극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반면 정육점, 식당 그리고 우리의 식탁은 희극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의 욕망과 폭력성이 비극을 비극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쉽고도 어려운 혁명, 채식지향
채식 지향의 삶을 살아보기로 다짐해 보자. 끊임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공장식 축산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거부해 보자. 육식 문화에 반기를 드는 건 어떨까. 채식이라는 게 일견 개인적이고 또 쉬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가장 어려운 혁명일지도 모른다.
원한다면 단번에 비건(동물성 식품을 비롯한 상품을 모두 거부)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게 어렵다면,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채식을 하거나 하루 한 끼 채식을 하는 채식지향인이 되는 것도 방법이다.
동물들을 위한 팜 생추어리(Farm Sanctuary)를 설립했고 책 <Farm Snctuary>의 저자인 진 바우어는 "엄청난 고통과 파괴를 초래하는 시스템의 톱니바퀴 속 부품이 되고 싶지 않았다"라고 고백하며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을 시작했다.
그는 나아가 1989년 뉴욕 왓킨스 글렌 인근에 70만 제곱미터 넓이(약 21만 평)의 동물 피난처인 '생추어리'를 설립했다. 그는 "생추어리는, 동물을 상품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철창과 우리에 가두어 기르는 축산 시스템의 무자비한 폭력을 향한 노골적인 맞대응"이라고 말한다.
국내에도 아기돼지 새벽이 생추어리가 있다.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살아남은 새벽이와 실험실에서 살아남은 잔디(돼지)가 있다. 이들 또한 생존으로 투쟁하는 한편, 이들과 함께 활동가들 또한 고군분투 중인 것으로 안다. 새벽이 생추어리에 가서 돌봄으로 연대하거나, 단체를 후원하는 것도 멋진 발걸음이 될 것이다.
사진집 <사로잡는 얼굴들>은 삶을 변혁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 믿는다. 각자 삶에서의 실천으로 나아가보자. 그러면 언젠가는 '나이 든 닭'을 그저 사진집이 아닌, 실제 눈앞에서 보고 생활에서 맞이하는 날 또한 오지 않겠는가.
* 새벽이 생추어리 소식은 https://www.instagram.com/dawnsanctuarykr/에서 볼 수 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