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전북 무주군, 전북 전주시, 부산 다대포, 제주시
초록빛 풀과 나무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생글생글 웃게 된다. 여름이라는 계절을 좋아하는 이가 이해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뺨을 타고 흐르면 무더위를 실감한다. 푹푹 찌는 날씨에 출퇴근하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모두 빠져나간 것 같은 기분이다.
언젠가부터 여름휴가를 위해 멀리 이동하지 않게 되었다. 이동하다 힘을 다 쓰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럴 땐 집에서 가까운 곳이지만 평소라면 가보지 않았을 곳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도 좋다. 도시 곳곳이 휴가지다.
날씨가 좋다면 걸어 다니며 거리를 탐방해도 좋겠지만, 숨만 쉬어도 땀이 흐르는 무더위에는 시원한 장소가 제격이다. 도시에서 큰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장소가 어디일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는 도서관이다.
도서관을 책만 보는 장소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책과 건축이 만나 특별한 공간을 형성한다. 잘 지어진 아름다운 도서관 내부를 둘러보며 건축 여행을 떠나기에도 적합한 장소다. 책과 건축이라는 볼거리가 있는 도서관, 짧은 휴가를 내고 즐기기에 좋은 휴가지 아닐까.
숲과 책이 만난 오동숲속도서관
1년 전 살고 있는 지역 성북구 내에 '오동숲속도서관'이 개관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숲 속에 도서관이라니. 접근성이 그다지 좋지 않지만, 숲 속을 거닐며 숲산책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숲속'도서관이 지닌 양날의 검. 상월곡역에서는 30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걷기 좋은 날씨라면 도전해 볼 법했지만 높은 온도와 습도 때문에 마을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마을버스 정류장에서는 5분 정도만 숲길을 걸으면 오동숲속도서관에 도착한다.
오동근린공원의 숲을 지나면 도서관이 등장한다. 도서관 건축물은 숲의 주인은 나무라고 다짐한 듯 숲의 키를 넘지 않는 느낌이었다. 도서관 안에 들어서자 숲이 보이는 창가쪽은 만석. 책장으로 둘러싸인 중앙부 열람실도 만석.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역시 인기 명소는 평일에 와야하나보다. 하는수없이 카페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시원한 곳에 자리잡고 소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도서관 내외부를 둘러보기도 했다. 오동숲속도서관은 건축적 매력이 가득한 장소였다. 숲과 어우러지도록 낮은 높이로 지어졌다. 또한 장소의 역사성을 간직한 공간이기도 하다. 오동숲속도서관이 자리잡은 곳은 원래 목재파쇄장이 있던 곳이다. 파쇄장 먼지와 소음으로 인해 민원이 끊이지 않던 장소였다고 한다.
먼지와 소음의 장소가 조용한 사색이 머무는 책의 장소로 탈바꿈했다. 기둥과 지붕은 목구조로 기둥과 기둥을 연결해 서가로 조성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도서관에서 나무로부터 나온 책을 읽는 공간이라니 조화로운 장소다. 이런 매력 덕분일까. 오동숲속도서관은 2023년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특별상과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았다.
특별한 도서관에서는 평소와 다른 책을 읽는 걸 추천한다. 반복되는 건조한 일상에 생기를 더해준다. 특히 요즘 같은 무더운 여름 날씨에 탈출구가 되어준다. 문학 작품을 읽다 보면 소설 속 주인공이나 시의 화자에 몰입해 다른 세계로 빠져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책과 공원을 결합한 공간은 오동숲속도서관이 처음은 아니다. 서울시는 공원 내 책쉼터를 조성하고 있고 오동숲속도서관은 일곱 번째 책쉼터다. 추천하고 싶은 또 하나의 책쉼터는 '천왕산 책쉼터'다. 천왕산책쉼터은 2023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산촌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형설지공도서관
대도시에만 멋진 도서관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얼마전 고향 무주 산골영화제에 놀러갔다가 멋진 도서관을 발견했다. 무주상상반디숲에 있는 형설지공도서관이다. 무주상상반디숲은 연면적 4,686제곱미터, 지하 1층, 지상 3층의 규모로 건립되었다. 이중 2층부터 3층의 대부분은 도서관 용도로 쓰이고 있다.
사실 무주에 대규모 문화공간이 들어선 게 어색했다. 하지만 작은 산촌이라고 도서관도 작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문화시설 접근성을 고려하면 작은 산촌에도 이런 복합문화공간이 필요하다.
1층에는 자유롭게 책을 열람할 수 있는 공간과 카페 그리고 실내놀이터가 있다. 2층과 3층에는 책이 비치되어 있다. 2층 공간의 일부는 무주 관련 도서를 비치하여 지역 관련 문화, 역사, 관광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배치했다. 관광객을 비롯해 무주에 관해 궁금한 이들은 이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2층과 3층을 연결한 공간이 독특하다. 유행처럼 번졌던 기존의 계단서가와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기존에 유행했던 계단서가는 등받이가 따로 없어서 이용자들이 불편한 점이 있다. 그러나 형설지공도서관의 계단서가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여 도서관이라는 공공공간 내부에서도 아늑한 개인 공간을 만들어냈다.
형설지공도서관은 삼면이 통유리창으로 되어 있다. 북쪽으로는 무주읍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쪽과 남쪽으로 보이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다. 굽이진 산세를 조용한 도서관에서 보다 보면 자연의 리듬이 느껴진다. 책을 읽기에도, 산촌의 풍경을 감상하기에도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무주를 방문한다면 형설지공도서관에 들러볼 것을 추천한다. '휴가 가서 무슨 도서관'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내부를 둘러보면 절대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사실 건축미가 돋보이는 도서관은 많다. 아직 가보진 않았지만 언젠가는 방문하게 될 몇 개의 도서관을 추천해 본다.
볼거리 가득한 알짜 휴가지
먼저 부산광역시에 있는 동남권 최대 규모 국회부산도서관이다. 이 외에도 부산도서관(2021년 부산다운건축상 은상), 금샘도서관(2021년 부산다운건축상 동상), 수영로도서관(2022년 부산다운건축상 은상)이 있다. 규모가 크거나 건축상을 받진 않았지만 멋진 다대포 해변을 조망할 수 있는 '다대도서관'도 있다.
서울 은평구립도서관은 200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 2002년 서울특별시 건축상 은상을 수상했다. 고대에서 툭 떨어진 것 같은 분위기의 이국적인 건축미가 느껴진다. 불광근린공원과 맞닿아 있어 오동숲속도서관처럼 숲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도서관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는 책의 도시다. 전주시청 1층을 도서관으로 조성했을 정도로 책에 진심이다. 관광지로 유명한 한옥마을에는 한옥을 개조한 한옥마을도서관이 있다. 한옥의 매력을 살려 평소와 다른 분위기 속에서 책을 읽고 지붕과 기둥 등을 관찰하는 묘미도 있다.
학산숲속시집도서관은 가장 가보고 싶은 도서관이다. 지형을 최대한 살려 도서관을 지었고 나무로 마감처리를 했다. 창밖으로는 숲이 보인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시 특화도서관이다. 시가 가슴에 차곡차곡 박힐 것만 같은 도서관이다.
제주특별자치도에는 2020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을 수상한 도서관이 있다. 제주북초등학교 김영수도서관이다. 연면적 365㎡의 작은 도서관이다. 새로 지어진 건축물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학교 도서관을 원도심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리모델링했다. 내부 한옥목구조에서 오랜 시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이 도서관은 원도심 주민이었던 고 김영수씨가 학교에 도서관을 기증했는데, 학교는 다시 마을에 도서관을 공유했다. 어쩌면 책 한 권을 읽는 것보다 김영수도서관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도 의미 있는 휴가가 될 수 있겠다.
매년 국토교통부에서는 대한민국 공공건축상을 시상한다. 도서관을 별도로 선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년 1개꼴로 도서관이나 책을 주제로 한 공간이 선정된다. 또한 많은 지자체가 지역 내 우수한 공공건축물을 발굴하여 시상한다. 지역별로 선정 기준이 조금씩 다르지만, 도서관은 건축상 수상작의 단골 메뉴이니 주위에서 멋진 도서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경기도, 대전광역시, 부산광역시, 서울특별시, 전라북도 등이 지역 건축상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올여름은 도서관으로 떠나는 휴가 어떨까? 도서관은 볼거리가 가득한 알짜 휴가지다. 책이라는 볼거리는 물론이고 건축적으로도 매력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게다가 요즘은 도서관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작가와의 만남, 강연, 글쓰기, 전시, 예술 활동 등 다양한 문화 활동도 열린다. 도서관 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