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이른 아침에 시작하는 건축 현장 TBM 이야기
현장관리인이 건축 현장에서 하는 일을 시간 흐름에 따라 정리하였습니다. 현장 상황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은 개인 경험을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사무직에서 건축 현장으로 이직하면서 하루의 시간표가 달라졌다. 현장에 따라 달랐지만 새벽 5시에서 6시 사이에 일어나 눈곱 정도만 떼는 세수를 하고서 머리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출근한다. 현장 사무실에 도착하면 운동화를 안전화로 갈아 신고 현장 옷과 안전 조끼 그리고 안전모를 착용한다. 안전 서류를 챙기고 당일 해야 할 일과 TBM 시간에 공지할 내용들을 되짚어본다. 시간이 좀 남으면 믹스커피 한잔을 마시며 여유를 즐긴다. 안타까운 건 그런 날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보통은 허겁지겁 수첩과 도면, 안전화와 안전물품을 챙겨 TBM이 진행되는 장소로 뛰어간다. 잠시 숨을 고르고 7시 30분이 되면 TBM을 시작한다.
건설 현장에는 TBM 시간이 있다. Tool Box Meeting. 공사장 아침 회의라고 보면 된다. 툴박스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진행해서 툴박스 미팅이라는 말이 생겼다.
TBM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체조, 공종별 인원 보고와 공사 내용 보고, 안전 관련 유의사항 및 기타 현장 지침 공지, 건의사항 듣기.
첫째, 동그랗게 둘러 아침 체조를 한다. 안전관리자가 아침 체조를 맡아서 진행했다. 현장 일은 대부분 몸을 쓰는 일이기 때문에 부상 방지를 위해 몸을 데우고 풀어주는 것이다. 특히 겨울에는 신경을 써야 한다. 날씨가 추우면 몸이 경직되는데 부상의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둘째, 공종별 팀장이 인원 보고와 공사 내용을 보고한다. 흡사 초등학교 조회 시간이나 군대 아침 조회 시간과 같았다. "경량팀 인원 8명, 오늘은 4층과 7층 엠바 작업이 있을 예정입니다.", "타일팀 인원 10명, 1층과 2층 화장실 타일 시공 예정이며 오후 1시에 자재 반입 예정이오니 건물 입구를 비워주시고 통행에 유의 부탁드립니다."
현장관리인인 나는 귀로는 그들의 보고를 듣고, 손으로는 수첩에 인원과 공사 내용을 적고, 눈으로는 인원 보고한 인원이 맞는지 체크한다. 공사 내용과 인원은 미리 알고 있던 내용이어도 아침 보고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체크해야 한다.
셋째, 안전 관련 유의사항 및 기타 현장 지침을 공지한다. 당일 특별히 공지해야 할 안전 유의사항을 전달한다. 예를 들면, 철거하는 공사구역 출입을 통제한다던지 콘크리트 타설 지역에 출입을 통제하는 것과 같은 공지다. 이후에 앵무새처럼 전달하는 게 있다. 이 시간이 되면 나는 교장 선생님이 되는 것만 같았다. 훈화 말씀 전달하듯 내용을 읊었다. 사다리는 2인 1조 작업, 높은 장소 공사 시 안전벨트 사용, 항시 안전모와 각반 밴드 사용, 실내 흡연 금지. 때로는 볼 일은 꼭 화장실에서 봐달라는 이야기까지. 간혹 페트병에 소변을 보거나 완공되지 않은 화장실에 소변을 보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앵무새처럼 전달하는 이유는 이렇게 매일 전달함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거의 매일 범죄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넷째, 건의사항을 듣는다. 건의사항이 있더라도 평소에 수시로 팀장과 소통하는 편이라 보통 이 시간은 별 의견 없이 넘어가는 편이었다.
크게 네 가지 일정이 마무리되면 TBM은 8시쯤 종료된다. 혹자는 온라인으로 공지사항을 전달하고 미리 숙지하면 되는데 번거롭게 이른 아침에 꼭 모여서 전달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요즘은 젊은 세대들도 건설 현장에서 종종 보이지만 아직은 디지털 기기 사용에 취약한 고령층이 대부분이다. 하루아침에 기상상황이나 현장 상황에 따라 변경되는 사항이 많아 번거롭더라도 이른 아침에 TBM을 진행하면서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게 효율적이다. 게다가 체조와 안전 관련 사항은 다 함께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다소 구시대적인 문화로 보일지 모르지만 매일 아침에 대면하여 전달하는 것보다 효과적인 대안은 없다.
모든 운동을 하기 전에는 스트레칭과 같은 준비 체조가 필요하다. 건축 현장에서는 TBM을 통해 경직된 몸을 풀고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는다. 다음 번에는 TBM 이후 8시부터 현장관리인이 현장에서 하는 일을 소개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