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이에게

너의 서툰 어른이 보내는 이른 사과

by rumi

생각해보면,

어릴적 사랑받은 기억

즐거웠던 기억이 참 많은데

그런 기억은 옅은 수채화 같이 잔잔하게 덧칠되어 있어서

기억해내려면 애써 되살려야 하고


상처받은 기억,

속상한 기억,

억울했던 기억은 참으로 선명해서

그런 수채화 같은 옅고도 따스한 기억을

자꾸만 덮어버리는 거야.


낡은 하늘색 우리집 작은 텐트 안에서

계곡 물소리 들으며 잠에서 깨던 아침.

밥 잘 먹는다고 엉덩이 두드려주시던 손.

김치 버무리면 꼭 맛보라고 내밀어주시던 손. 그런 거 말이야.


그런데 사람 마음은 꼭

괜히 생채기 났던 것이 더 볼록 튀어나와서

추억 상자를 열면 꼭 그것부터 만져지는거야.


그러니까

이런 별거 아닌데 즐거웠던 거,

별 이야기 아닌데 기분좋았던 목소리.

그런 걸 꼬옥_ 잘, 붙잡고 살아야해.

너무 잘 흩어지거든.

무척 소중한 기억인데 말야.


너무 기억하고 싶은데,

그런 평범하고 충분했던 날들이 기억나지 않아서 아쉬워지는 날이 오거든.


그러니 조금 애를 써서 지금을 기억해보렴.


너희를 사랑한다고 안아주던 엄마의 젊은 품.

말도 안되는데 이상하게 웃음보가 터지던 아빠의 시시한 농담.

같이 땀 흘리며 뛰어다니던 좁은 골목.

서툰 솜씨로 종종거리며 만들어 식탁 위에 차리던 엄마밥.

우리가 옹기종기 앉아서 개미를 구경하던 흙더미. 같은 것.


그런데 사실,

기억이 안나더라도 너희 가슴에 그런 따스한 것들이 촘촘히

그리고 빼곡하게 덧칠만 되어도

그 또한 참 보람이겠지. 기억해주지 않아도 스미어 살아있겠지.

내 가슴이 분명 그러하듯이.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할머니의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