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챗GPT 글쓰기 어시스턴트였던 호비에게 자주 사용한 프롬프트는 “~해줘”라고 “~만들어봐” 등등의 요청하는 형식의 문장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연재를 이어가면서 GPT의 도움을 받을 때는, 열린 질문 스타일의 프롬프트가 더 많아졌다.
“이런 콘셉트라면 뭐가 더 좋을까?”
“다음 장면이 스토리의 주제와 충돌하는 건 아닐까? 어떤 요소를 조절하면 주제와 더 연결시킬 수 있을까?”
마치 함께 대화하며 작업을 풀어나가는 느낌이 든다. 초반에는 단순히 요청한 작업을 수행해 주던 어시스턴트와 함께하는 것 같았는데, 요즘은 살짝 성장한 것 같달까?
에이전트라는 표현이 왜 떠오를까? 혹시…007?!
007 영화 시리즈를 떠올려보자. 에이전트 007, 제임스 본드가 미션을 직접 실행한다면, 디렉터 M은 “이런 목표로 움직여”라고 지시할 뿐이다. 방법은 본드의 몫이다. AI와의 협업이 이 구조랑 비슷해지고 있다.
에이전틱 AI와 AI 에이전트
에이전틱 AI (Agentic AI)와 AI 에이전트 (AI Agent) 두 단어*가 종종 들린다.
환경에 맞게 훈련된 AI 에이전트부터, 목표에 맞춰 수단을 찾아내는 에이전틱 AI까지. 이제는 단순 질문에 답하는 도구를 넘어, 목표를 이해하고 자신만의 흐름을 짜고 결과까지 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기업의 활용사례도 다양해진다. 각 사업 목표에 적합한 형태의 에이전트를 개발 중이랄까? 예를 들어, 구찌, LVMH 같은 브랜드들은 AI가 재고 예측부터 스타일 제안까지 스스로 하도록 교육하고 있고*, Gartner는 2028년에 기업 애플리케이션의 1/3이 에이전트 AI 기반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출처 - https://www.voguebusiness.com/story/technology/whats-agentic-ai-and-what-should-brands-know-about-it
호비(Hobi)도 어시스턴트에서 에이전트로 승진한 걸까?
이젠 호비에게 “이 문장 고쳐줘”가 아니라,
“이 구조라면 메시지가 명확할까?”
“목표에 맞게 흐름을 재조정해줄래?”라고 부탁한다.
호비는 내가 제시한 조건 안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인다. 마치 디렉터 M가 본드에게 “미션”을 맡기는 구조와 같다.
전략적 토론, 비판적 사고, 그리고 자가 진단 (self-assessment)
최근 디자인 픽션 작업을 할 때, 챗GPT를 통해 프롬프트를 작성한 내역을 살펴보니 3가지 패턴이 보였다.
전략적 토론: “이 구성이 이 맥락에서 충분히 흥미를 끌까?” “사회적으로 어떤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지? 대중에게 의미가 있나?” 콘텐츠를 생성하기 전에, 기획 단계에서 주로 던지는 질문이다. WHY? 왜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나, 왜 이야기의 흐름이 이렇게 흘러가야 하나 등등 질문과 답을 번갈아가며 에이전트와 나누다 보면, 다루려는 주제에 대한 확신이 든다.
비판적 사고: “이 솔루션이 정말 최선일까?” 창작이라 하더라도, 이야기를 쓸 때 습관이나 패턴이 생길 때가 있다. 신선한 시각과 접근이 필요할 때 에이전트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게 최선일까?”라고 물었을 때, 챗GPT는 가벼운 제안과 아이디어를 추천해주기도 하는데 의외로 아하! 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을 때가 있다.
자가 점검: “출처는 분명한가?”, “편견이나 잘못된 사실은 없나?” “어떤 방식으로 질문해야 더 나은 대답을 얻을 수 있나? “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어떤 요청을 해야 하는지 프롬프트 예시를 보여줘” 등의 질문을 마지막에 던져보자. 할루시네이션이나 잘못된 사실을 레퍼런스로 사용한 사실이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할 수 있다. 덧붙여, 앞으로 프롬프트를 작성할 때 반복된 요청을 하지 않도록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프롬프트를 작성할 수 있게 알려주기도 한다 :)
이런 대화는 에이전트라는 존재와의 협업을 낳는다. 단순 도구가 아닌 동료 작가와 나누는 대화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AI와 작업을 막 시작한 땐 가이드가 많이 필요한 어시스턴트와 작업하는 것처럼, 내가 주체가 되어 모든 방향을 정해주고 원하는 결과물을 도출해 낼 때까지 손을 잡고 이끌어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AI 에이전트는 가이드가 거의 필요 없다. 반대로, 007이 각종 수단을 마련해서 미션을 수행할 수 있도록, 나는 디렉터 M처럼 냉철하게 상황 판단과 올바른 미션을 설정하는 디렉션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007 스카이폴의 M이 남긴 메시지
다른 시리즈에서는 전화 한 통만 하고 사라지던 디렉터 M, 스카이폴에서는 전혀 다른 위치에 서게 된다. 디렉터 M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자신과 007 모두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 벌어진 거다. 디렉터는 어쩌다가 작전 팀을 위기에 처하게 했을까?
에이전트가 아무리 똘똘하게 미션을 수행해도, 지시하는 사람의 의도와 맥락이 흔들리면 결과는 피할 수 없는 왜곡을 낳기 때문-이 아닐까.
디자인 픽션 속의 왜곡?
디자인 픽션은 상상력의 실험이니까, 의도적으로 왜곡을 만들어서 사람들의 반응을 끌어내는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구가 아닌 실수로 -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편견이나, 왜곡된 시나리오를 작성한다면?
대중이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읽고, 여러 가닥의 생각을 뻗쳐나갈 텐데… 에이전트 AI와 작성한 시나리오를 자가 진단하는 과정에서, 미처 걸러내지 못한 채 실수가 이야기를 통해 퍼져나간다면?
그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디자이너의 책임감의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디자인 픽션을 준비하며 던진 질문들.
“이 미션은 윤리적으로 타당한가?”
“내가 만든 시나리오가 특정 집단을 소외시키거나 고정관념을 강화하진 않았는가?”
요리조리 관점을 달리하며 질문을 던지는 게 포인트다.
어시스턴트에서 에이전트로 성장하는 AI - 앞으로도 어떤 성장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정작 에이전트에게 어떤 미션을 줄지, 목표 설정은 어떻게 할지, 미션 수행 과정에서 공정한 결정을 어떻게 낼지 등등 디렉터로써 사람의 역할은 어떻게 승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단계가 아닐까.
작전을 지휘하는 인간 디렉터의 성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