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umierumie Jun 29. 2020

디자이너를 위한 레트로

뉴트로 열풍 속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레트로

유재석, 이효리, 비가 ‘싹쓰리’로 활동하면서 뉴트로라는 단어가 자주 보인다.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쳐 만든 신조어라는데, 예전에 유행한 것들을 새롭게 즐기는 요즘 갬성인가 보다.


민감하게 트렌드를 따라가도 모자랄 판에, 지난 금요일 우리 디자이너들은 트렌드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한 시간을 꼬박 들여서, 우리는 디자인 스프린트 레트로를 진행했다.






복고풍 레트로? 회고하기!

런던에서는 프로젝트 레트로, 또는 project retroprospective meeting이라고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회고’라고 불렀다. 이름은 다르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업무에 집중하느라 바빴었다면,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 우리가 지나온 경험을 되돌아보면서 분석하고 배우는 시간을 가지는 것을 통틀어서 레트로라고 부른다.





레트로, 언제 하면 좋을까? 

이번 디자인 스프린트를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한 번도 같이 일해본 적이 없는 디자이너들과 팀을 짜서 진행하다 보니, 초반에 스프린트 계획하는 과정에서 어? 어라? 갸우뚱하면서 합이 안 맞는 상황을 마주쳤었다. 짧은 일정이 개발팀의 스프린트와 연계되어 있는 바람에, 디자이너들끼리 잘 맞는 부분이 있어도 일단 디자인 스프린트를 계획한 대로 마감하는 것에 집중해서 마구잡이로 달렸다.



개발팀과 디자인 스프린트 참여자들이 마감 이후에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전달해 주는 바람에 한시름 놨지만, 디자이너들끼리는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원격 근무라서 서로 간의 기류를 읽기는 힘들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방 안에 코끼리가 있으니까, 날을 잡아서 다 같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방 안에 코끼리?

런던에서 마케팅 에이전시에서 처음 회사 생활을 할 때, 까칠했던 한 클라이언트와 빡빡한 미팅을 했었다. 미팅이 끝나고 누군가가 말했었다.


There’s an elephant in the room.



그 말을 듣고, 클라이언트가 코끼리처럼 뚱뚱 하다는 건 줄 알았다.

클라이언트가 짜증나긴 했지만 외모 가지고 그러는 건 좀 아닌것 같은데...? 이러면서 퇴근했다. 집에 와서 밤비에게 물어보고서야, 이 문장의 뜻을 제대로 이해했다.



방 안에 코끼리가 있다는 것은, 직접적으로 꺼내놓고 말하기 거북한 주제가 있는데, 아무도 그 주제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은 상황을 뜻하는 표현이다.  


미팅에서 클라이언트가 유독 까칠하게 굴었던 이유는, 클라이언트 측의 회사 예산이 갑자기 삭감되는 바람에 계획했던 프로모션을 급히 수정해야 했기 때문인데, 클라이언트 측의 문제다 보니, 에이전시 측에서는 싫은 내색을 못하고 빡빡하게 구는 클라이언트의 기분을 맞춰줘야 했던 것이다.


이번 디자인 스프린트에서는 예전 경험처럼 커다란 코끼리는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아기 코끼리 정도가 있었달까?



아기 코끼리..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까?

런던에서 레트로 미팅에 참여하거나 진행하면서 느낀 점은, 의도에 따라서 과정이나 내용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공통적인 구조만 소개하면 꽤 간단하다.   

     프로젝트에서 잘한 점은 무엇일까?   

     프로젝트에서 잘 안된 점은 무엇일까?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 (우리 팀의 경우엔 project manager 또는 delivery manager)가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맡아서 레트로를 진행한다.



정해진 시간 동안 각자 세 가지 질문에 대한 자신의 회고 내용을 적는다. 포스트잇 하나에 포인트 하나씩 적어서 가지고 있다가, 퍼실리테이터가 보드에 붙이라고 하면 그때 모두 동시에 붙이곤 했는데, 원격근무를 하게 된 후로는 리모트 레트로 보드를 지원하는 서비스를 사용하거나, whiteboard를 지원하는 콜라보레이션 툴을 사용해서 각자의 포스트잇을 원격으로 공개한다.


모든 회고 내용이 보드에 공개된 후에는, 퍼실리테이터가 내용을 읽어 내려가면서 비슷한 내용의 포스트잇을 그룹으로 묶는다. 자세한 추가 설명이 필요한 경우에는 퍼실리테이터가 질문을 하는데, 작성자가 직접 설명할 때도 있고, 작성자는 모르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설명을 덧붙일 때도 있다.


디자이너 세 명, 퍼실리테이터 한 명, 작은 규모의 레트로였지만 순서에 맞춰서 모두 진지하게 회고를 했다.



긍정적인 피드백은 우리를 춤추게 한다

잘 된 점에는 다른 팀원들이 이번 디자인 스프린트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노력한 점을 적었는데, 모두들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서로 노력한 점을 놓치지 않고 칭찬하는 시간을 가지니까 자신감도 생기고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피드백은, playful 퍼실리테이션을 칭찬받은 것이다. 원격으로 디자인 스프린트를 3일간 진행하니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모두 피곤했는데, 내가 던지는 농담과, 재미있는 스케치들이 참여자들의 기분을 업! 시켜줬다는 내용이었다. 일이지만, 되도록 재미있게들 아이디어를 냈으면 하는 마음에 실험적으로 시도한 것인데, 섬세하게 눈치채고 칭찬해주니까 고마웠다.



이야기하면 코끼리는 작아진다.

다 같이 경험한 프로젝트인데, 신기하게도, 몰랐던 일들이 드러난다. 잘한 점, 잘 안된 점, 서로가 모르고 있던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코끼리는 점점 작아진다. 아는 것이 많아지고 공감의 힘이 커질수록,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 긍정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에 팀은 집중하게 된다.


디자이너들은 초반에 스프린트를 계획하면서 각자의 역할과 명확한 해야할 일이 정해지지 않은 채로 각자 가장 잘하는 것부터 시작한 점이 잘 안된 점을 적는 보드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서로 생각했던 것이 같을 때, 안도하는 표정을 보고 다행이다 싶었다. 혹시 나만 불편하게 느끼는 것인가 싶어서 조마조마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같은 코끼리는 만나지 말자.

레트로의 마지막은 Action, 개선점을 정하는 것이다. 잘된 점과 잘 안된 점을 읽으면서 개선점도 자연스럽게 적는데, 우리는 아기 코끼리를 상대했더니 개선점도 아기자기하고 당장 실행 가능한 점으로 보드를 채울 수 있었다.





앞으로도 어려운 점은 새로 생기고, 코끼리가 방안에 찾아올 일도 생길 거다. 하지만 레트로를 마치면서 우리 함께 기대하는 것은 하나다.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같은 코끼리를 다시 만나지 않기.

앞으로 같은 일로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끼거나, 프로젝트에 부정적인 영향이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아기 코끼리는 우리의 첫 디자인 스프린트 레트로와 함께 퇴장했다.


뉴트로 같은 열풍은 아니지만,

아기 코끼리와 함께한 솔직한 레트로가 참 좋았다.



작가의 이전글 떡볶이는 런던의 한(恨)식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