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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erumie Jul 25. 2020

공원에서 비키니를 입는다면

런던에서 여름을 나는 중입니다.

무려 27도! 파란 하늘이 쨍쨍한 런던,  

우리는 힙스터들이 살고 있다는 해크니로 떠났다.


맛있는 카페 커피나 한잔 마시면서 공원에서 산책하는 가벼운 계획이었다.


공원 근처에 도착했는데 벌써 더웠다.

작은 개인 카페 입구에서 아이스 모카 두 잔을 사 가지고 종이 빨대를 쪽쪽 빨면서 힙해 보이는 공원을 골라 입장했다.





해크니는 진짜로 멋쟁이들로 가득했다.

입구부터 바이브 넘치는 음악, 파티, 생기 넘치는 에너지가 가득했다.


에너지와 흥에 취해서 나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거리며 공원을 둘러봤다.

그런데 싱그러운 초록색 잔디밭 위로 잔뜩...



흘러넘치는 살색 물결을 발견했다?!

둥글고 반들거리는 엉덩이들이 공원에 널브러져 있었다.


더운 날씨에 맑은 하늘, 내리쬐는 햇빛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서 최소한의 옷만 입고 여름을 즐기는 사람들로 공원은 꽉 차있었다.



빨갛게 익어가고 있는 살결들을 보니까,

마치 붕어빵 틀을 앞으로, 뒤로 굴리듯이

앞 뒷면 골고루 태울 수 있게 누워있는 이들을 굴려주고 싶었다.


 

다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옷을 벗고 눕는 걸까?

몰래 나무 뒤에서 수줍게 옷을 벗을까?
당당하게 벌떡 일어나서 바지를 훌렁 내릴까?
비키니만 입고 집에서부터 걸어온 건 아닐까?


간디 같은 남자와 물범처럼 생명력 넘치는 여자, 둘은 누구보다 행복하게 서로를 껴안고 누워있었다.

너무 하얘서 정말 태울 수 있을까? 싶은 사람도 보인다.



부끄러워서 몸을 감추고, 남과 비교하고, 그럴 시간이 없었다. 햇빛이 귀한 영국 땅에서 파란 하늘과 내리쬐는 햇빛은 모든 사람들의 옷을 훌렁훌렁 벗겼다.



아이스 모카의 얼음이 다 녹아갈 때쯤, 땀이 줄줄 흐르게 더운 공원 한복판에서 문득 깨달았다.


눈 앞에 펼쳐진 살색 물결이 부담스럽지 않았던 이유는, 소소하게 행복을 즐기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행동이 그냥 좋고 부러워서라는 것을.



힙스터들의 패션에 뒤처질까 싶어서, 잘 안 입던 점프슈트를 일부러 꺼내 입고 땀을 줄줄 흘리는 내 앞에, 오직 자신만의 행복한 순간을 찾아 거추장스러운 옷을 다 벗어버린 자신감과 뚜렷한 주관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런던에서 6번째 보내는 여름,

언제쯤 나는 비키니를 입고 공원에 누워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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