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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erumie Aug 17. 2020

체감온도 36도, 존버하는 런던

에어컨 없이 영국에서 여름 나기

낮에는 36도, 밤에도 30도!

런던의 지긋지긋한 여름은 제대로 더위를 ‘멕’였다.



유럽의 여름은 한국에 비해 습도가 낮아서 온도가 올라가면 마른 장작처럼 바싹 타오른다. 조금의 구름이나 그늘만 만나도 신기하게 시원해지는데, 런던 날씨치고는 드물게 지난 2주 동안 30도를 웃도는 맑은 날씨가 계속됐다. 해가 떴다가 지는 동안, 그늘 한 점도 잘 내어주지 않았다.


파리와 런던에서 살면서, 에어컨이 설치된 집에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옛날 건물들을 보존하려고 공사 허가도 잘 나지 않고, 에어컨이 없어도 버틸만하니까 굳이 설치하지 않는 것 같다.

 

지난 6년간, 평일에는 회사에서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자리에 앉아 가디건을 필수로 챙겨두고 일했기 때문에, 에어컨 없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출근 전 이른 아침이나 퇴근 후의 늦은 저녁엔 이미 더위가 식어버려서 유럽의 여름이 어디까지 고약해지는지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었는데, 올해 원격 근무를 하면서 아주 철저하게 런던의 여름을 겪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
Qu'ils mangent de la brioche!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랬단다. 그래, 꿩 대신 닭이라고, 봄철에 주말 쇼핑을 갔다가 마트에서 선풍기 한 대를  샀다. 포장도 안 뜯고 서너 달을 묵혔던 선풍기, 이것마저 없었다면 정말로 드러누울 뻔했다. 오전 10시부터 맹렬하게 집안의 온도가 올라가더니 점심 때는 바람 한 점 없이 햇빛과 열기가 집을 가득 채웠다. 선풍기 한 대와, 얼음물 수십 잔으로 겨우 버텼다.


에어컨 없이 공격적으로 퍼붓는 햇빛과 대결하다가 결국 병이 났다.


흐리고 으슬으슬 추운 유럽에서 맑은 날씨는 항상 선물같이 여겨졌는데, 고약한 더위가 연이어 괴롭히니까 제발 빨리 여름이 끝났으면 하고 비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나고 숨이 차니까,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더위에 혀가 말랐는지 입맛도 뚝뚝 떨어졌다.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와 몇 잔째인지 세지 않게 된 얼음물을 들이켜면서 일을 하다가, 뭘 이렇게까지 태양이 열일하나 울컥했다. 한국에서는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많이들 다치고, 피해를 입고, 이런저런 사고가 많이 나는데, 영국에서는 죽어라 덥다니.

2020년에는 도무지 적당히가 없다. 바이러스에, 수해에, 더위까지, 짜증이 치밀었다.


더위에 지쳐서 녹아버린 내 모습을 지켜보던 밤비가 결국 응급약을 처방해줬다. 하루만 기다리라고 큰소리를 떵떵 치더니, 다음날 아마존 박스가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포장을 뜯었다. 의기 양양한 표정으로  건넨 응급약은 물총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깔깔대고 웃었다. 웃을 힘도 없이 축 쳐져있었는데 물총 덕분에 웃었다.

 

펌프질을 열심히 하면 물줄기가 깜짝 놀랄만큼 멀리 나간다.


어린이처럼 깔깔대면서 물총을 쏘다보니까 차가운 물방울 때문에 열기가 식었다. 머리에 잔뜩 올랐던 열과 짜증도 한차례 식었다. 더위보다 더 고약했던건 내 짜증이었나 싶었다. 한차례 웃고 나니까 맑은 하늘도 덜 미웠다. 물총에서 떨어진건지, 땀방울이 떨어진건지, 뒷마당에 물방울이 툭툭 떨어지고, 더위 때문에 잔뜩 올랐던 무언가도 떨어져나갔다.








글을 쓰면서 조금 웃었다. 영국의 여름에 대해서 써야겠다고 생각한 어제까지만 해도 체감 온도 35,6도를 기록하더니, 오늘 아침부터 20도 초반으로 온도가 뚝 떨어지고 가을비가 오는 날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한껏 덥혔던 영국 땅을 원래대로 식혀보기라고 할 셈인지, 천둥에 번개에, 거센 빗줄기까지 하루 종일 요란법석이다.


설마... 이번에도 적당히 안 하고 끝을 볼 셈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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