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보다 두려움이 많은 두 번째 도전

by Rumierumie

파리에서 런던은 비행기나 유로스타를 타면 1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정도로 가깝다.


프랑스 워킹홀리데이 시절, 알바 첫 달 월급을 모아서 런던으로 여행을 갔다. 프랑스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하기 전부터, 남친과 나는 런던에서 견우와 직녀처럼 만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런던에서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았던 터라 런던이 어떤 도시인지 잘 몰라도 기대에 부풀었다.


런던에 도착한 첫날, 안타깝게도 이 도시와 나의 케미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았다. 영국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나라라고 중학교였는지 고등학교였는지, 어쨌든 역사책을 보면서 달달 외웠었는데, 직접 만난 영국은 딱 그 느낌이었다.


개성 없는 건물들과 죄다 비슷하게 생긴 2층 구조의 주택가들이 늘어서있었다. 힙하다고 소문난 이스트런던에 가봤지만, 옛날 공장 건물들을 리모델링해서 허름해 보였다. 파리에서 한창 미술관, 궁전, 편집샵 등등 예쁜 곳만 골라 다니느라 런던 날것의 모습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되었던 걸까? 런던의 무뚝뚝한 첫인상에 잔뜩 실망했었다.

사람일은 모른다더니, 런던의 첫인상에 실망한 날로부터 4년 후에 사랑과, 꿈과,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20대 중반에 다시 한번 영국으로 갔다. 두 번째 워킹홀리데이에 도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영국 워킹홀리데이의 무대는 런던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비자 수속을 밟아 여권에 손바닥 만한 비자 스티커를 붙이는 순간까지도 판타지가 하나도 없는 런던에서 얼마나 즐기면서 살 수 있을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사랑에 빠질 수 없는 도시에서, 또다시 해외에서 살겠다는 결정은 쉽지 않았다. 20대 초반, 끌리면 끌리는 대로 살던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어떤 것들이 두 번째 워킹홀리데이를 주저하게 했던 걸까?






어정쩡하게 쌓인 경력, 버릴까, 살릴까

이십 대 중반의 두 번째 워킹홀리데이 준비 기간은 현실적인 고민으로 가득했다. 특히 직업선택에 대한 고민이 컸다.


경력 2년 차, 짧지만 대학교 졸업하고 처음 쌓은 게임 마케터 경력을 영국에서도 이어갈 수 있을까? 이미 잡식성 이력서로 한차례 마음고생을 했기 때문인지, 첫 직업에 대한 경력을 더 이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그리고 직업에 대한 경험을 인정해주는 직업과 회사를 찾으면 커리어를 쌓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만약에 게임 마케터 경력 인정을 안 해주면... 어떤 직업을 찾아야 할까? 새로 경력을 다시 쌓기 시작했다가, 워킹 홀리데이 기간 중간에 일이 잘 안 풀려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이력서가 아주 너덜너덜해지는 실패를 경험할까 봐 걱정이 많았다.



성공한 사람, 있는 걸까?

두루뭉술하지만 내가 세운 워킹 홀리데이 ‘성공’의 예시는, 워홀 기간이 끝난 후에도 영국에서 풀타임으로 회사에서 일하며 워킹 비자를 딴 사람들이었다.


파리로 떠나기 전, 성공적으로 프랑스 워홀 기간을 채우고 귀국한 사례를 보면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실패를 할 것인지 얼추 계산해봤었다. 런던으로 떠나기로 결정한 후에, 프랑스 워홀 때처럼 사전조사를 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때는 영국과 한국 사이의 워킹홀리데이 비자 체결이 된 지 2년이 채 안된 때였다. 영국은 워홀 비자가 2년이다 보니까 내가 지원하던 때에는 비자 기간을 모두 채워서 영국살이를 한 사람을 만나기 어려웠다.


대신에, 런던의 살인적인 물가와 초기 구직활동 실패 때문에 계획한 워홀 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일찌감치 한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종종 들을 수 있었다.



경력은? 생활 비용은? 실패하면 그때는?

비자 신청 서류 준비부터 발급받기까지 3개월 동안, 세 개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마음을 시끄럽게 했다. 바다 건너 영국에서 내가 오는 날을 기다리는 런던 남친과 한국 시간 밤늦게부터 새벽까지 두 번째 워홀에 대한 걱정과 고민을 털어놨다. 참을성 있는 런던 남친이 그때 다 들어주었으니 망정이지, 어디다가 마음을 툭 털어놓고 공감해달라고 징징대기가 힘들었다. 워홀은 결국 누가 시키는 게 아니라, 스스로 결정해서 떠나는 거니까.



어느 날, 평소처럼 밤이 꼴딱 새도록 남친과 통화를 하다가 끊을 때쯤이었다. 런던 남친이 한글과 영어를 반씩 섞어가면서 달래다가 끝에 말했다.


“It’s scarier when it’s in our head.”


머릿속으로 계속 상상만 하면 두려울 뿐이니까 행동으로 하나씩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서 두려움을 극복하라는 말을 했다. 나보다 11개월 늦게 태어났지만 어른스러운 런던 남친의 그 말에, 정신이 들었다.

"그래, 할 수 있는 것조차 안 하고 걱정만 하면 안 되지!"



이전 02화런던과 나는 서로에게 노관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