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마인드는 존중하는 마음이다

by Rumierumie

한국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해외 생활 ‘썰’을 가끔 푼다. 첫 번째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고생했던 일들을 털어놓다가 인종차별당했던 에피소드를 털어놨었다.


“영화 13구역 봤어? 파리에서 내가 살던 지역이 13구역이잖아. 실제로 파리에서도 범죄율 높아서 집값이 싼 동네래. 근데 그중에서도 차이나타운에 있는 아파트가 제일 싸서 거기 살았어. 아침저녁으로 주민들이 중국말로 너무 자연스럽게 말을 걸더라고, 내가 중국 사람처럼 생겼나 봐 ㅋ”


웃자고 털어놓은 썰, 친구들은 모두 웃었고 나도 웃었다. 파리에서 살던 이야기를 해달라는 친구가 있으면 자주 써먹던 에피소드였었다. 그때는 몰랐다, 무의식적으로 특정 인종, 국적, 그리고 나 자신을 어떻게 차별을 하고 있는지.


런던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회사만 다녔을 뿐인데 세계 일주를 하는 것만큼 다양한 나라, 인종, 국적 사람들과 마주친다. 전 세계 사람과 일하면서, 점차 무의식적으로 저질렀던 차별 행위와 태도에 대해 깨달았다.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을 존중하기 위한 글로벌 마인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런던 속의 아시아

런던에서의 첫 직장은 아시아, 유럽, 그리고 미국까지 합쳐서 13개의 오피스가 있는 글로벌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였다. APAC 팀에서 일했는데, 런던 본사에 각 아시아 국가별 담당자가 있었다. 한국, 중국, 일본, 세 팀은 한 명이상 담당자가 있었다. 그리고 홍콩, 타이완, 싱가포르는 런던 본사와 현지 오피스가 함께 담당했었다.


첫 출근 후, APAC 팀 사람들과 가까워지면서 이전에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았는지, 어디에 살았는지 개인적인 일들도 나누는 시간이 많았다. 점심시간에 같이 아시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함께 탐색하곤 했는데, 회사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한식당이 새로 들어왔을 때, 한국 담당자들보다 중국과 일본 담당자들이 더 빨리 맛집 인증을 하고 온 적도 있다.


친해진 팀원들과 여느 때처럼 수다를 떨다가, 워킹홀리데이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다. 파리에서 살았다고만 했지, 어떤 일을 어디서 하고 살았는지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없었는데 마침 재미있는 얘기겠구나 싶어서 친구들에게 잘 먹혔던 그 에피소드를 다시 꺼냈다.


“13구역에 살았고, 엄청 싸구려 차이나타운에 살았…”

아차 싶었다. 매일 제일 가깝게 지내는 APAC 팀원들에게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순진하게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동료들 앞에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인종 차별에 대해 안하무인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 그대로 숨어버리고 싶었다.


어떤 점이 잘못된 걸까?

1. 다른 중국사람들이 나를 중국인으로 착각해서 기분이 나빠하고 화를 낸 점.
생각해보니까 동양인이 밀집한 곳, 그것도 특정 국적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자기와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을 보고 추측했을 수도 있다. 만약 나의 국적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잘못 알고 있는 점을 고쳐줬다면 화낼 일이 아니었을 수도 있는데, 한 번도 한국 사람이라고 설명한 적이 없었다.

2. 중국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싸구려, 더러움, 미개함 등등. 그리고 그 나라 사람 전체가 똑같을 것이라고 멋대로 추측했다.
8개월이나 살았던 동네에 친했던 이웃사람 하나 만들지 못하고, 마음의 벽을 만들었던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나였다.

3. 어느 나라던지 잘 사는 동네, 가난한 동네가 있는 법이다.
특정 지역의 경제 수준이 낮은 이유는 어느 개인의 잘못도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살던 지역 주민들을 통째로 가난한 지역 주민이라고 깔보는 자세로 살았다. 주거지 선택의 자유와, 개인적인 경제 수준에 맞춰 선택한 지역 주민들의 판단을 존중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허겁지겁 말실수했다고 사과했다. 직장 동료들은 사람 좋게 웃으면서 사과를 받아줬다. 다행히도 우리는 계속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설날에는 각 나라의 설음식을 가져와서 도시락 파티를 하기도 했고, 추석에는 집에 초대해서 자기 나라 고향의 특별한 추석 음식 차림상을 내놓기도 했다. 런던 속에서, 우리는 끈끈한 연대감 같은 것을 키웠다.



다름을 알아가는 것

한국에서 취업 준비를 할 때, 글로벌 마인드를 갖춘 인재상에 맞는 자기소개서를 쓰겠다고 여기저기 뜯어고친 적이 있었다. 다른 나라, 문화, 생활 속에서도 씩씩하게 주어진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썼었다. 그게 진짜 글로벌 마인드였을까?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모이는 글로벌 시대에, 진짜 필요한 마인드는, 서로 다름을 알고 존중하는 마음이 아닐까? 한쪽의 시선으로만 보고, 무심코 던진 말이 다른 쪽의 시선으로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상처 받기 전에, 그릇된 태도와 시선을 바로잡아 모두 자기에게 필요한 만큼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전체를 보고 돌보는 게 글로벌 마인드라고 생각한다.


런던 남친의 부모님은 자메이카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영국으로 이민을 오셨다. 영국에 온 후로, 눈에 보일 듯 말듯한 인종 차별을 받으며 스트레스를 받는 나에게, 남친의 부모님은 당신 세대에 겪었던 노골적인 차별과 차가운 시선 때문에 힘들었던 날들을 이야기해주시곤 했다. 입이 떡 벌어지게 괴로운 이야기를 무심하게 털어놓고는, 힘들더라고 긍지를 잃지 않고 꿋꿋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진짜 이기는 사람이라고 응원해주셨다.


신사의 나라라는 영국. 안타깝지만 신사의 나라에도 ‘다름’의 다양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을 인격이 아니라 인종으로 보고 판단하는 차별. 의식적인 차별도 있지만,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무의식적인 차별도 일어난다.


무지한 차별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첫 직장에서는 다르면서도 비슷한 동료들이 있었기에 잘 버텼지만, 퇴사 후에 새로운 환경과 회사들을 만났을 때 종종, 긍지를 갖고 억지로라도 꿋꿋하게 버텨야 하는 시기도 있었다.



해외 생활하면서 겪는 차별, 속상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슬픈 일만 있는 건 아니다. 다른 나라, 국적, 문화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과 만나기 때문에 생기는 글로벌한 경험들은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한 다리 건너 친척 같은 사이, 유럽

대학원을 마치고, 취업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생일을 맞았다. 생일날 휴가를 쓸까 하다가, 입사 초기라서 그냥 평소처럼 출근을 했다. 내 자리에 앉으려고 보니, 직접 구운 케이크와 생일 카드가 놓여 있었다. 팀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생일 날짜를 기억했다가 축하해주려고 깜짝 선물을 준비해주었다.


고마워서 여러 번 인사를 하고, 케이크도 나눠 먹었다.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생일 카드를 열었는데, 온 세상 언어가 다 적혀있었다. 한글로 생일 축하한다고 적으려고 시도한 흔적(?)도 있었다. 영국에서 가장 영국 같은 회사로 손꼽히는 곳에서, 글로벌 인재들을 몽땅 만나는 게 신기해서 생일 카드에 적힌 언어를 하나하나 다 찾아보고 물어봤다.


아시아처럼 아주 다른 대륙에서 온 직장 동료들도 있지만, 훨씬 많은 동료들이 유럽 국가 출신이다. 이전 회사에서 APAC팀에서 느꼈던 연대감이, 유럽 동료들 사이에게서 자주 보인다. 비슷한 언어나 문화가 그들만의 공감대를 만들어 준다. 유럽 사람이 아니라서 소외감을 느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들의 문화에 호기심을 가지고 궁금해하면 누구라도 환영해주기 때문이다.


유럽 문화를 기웃거렸더니, 휴가철에 유럽 어딘가로 떠날 계획이 생겼을 때, 현지인들만 아는 숨겨진(?) 해변이나 맛집을 추천해주는 직장 동료들이 많아졌다. 다른 사람에게는 가르쳐주지 말라고, 유명해진다고 속삭이는 모습이 좀 귀엽다. 기브 앤 테이크라고, 한국이나 근처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팁을 알려달라고 할 때 나도 슬쩍 나만의 추천지를 알려주기도 한다.



국경 없는 지식 나눔과 배움

지금 다니는 회사는 유럽 방송 연합 (European Broadcasting Union)에 속해있는데, 작년 겨울에 큰 AI 컨퍼런스를 우리 회사 맨체스터 오피스에서 열었다. 마침 맨체스터에 있는 팀들과 회의 일정이 있었던 터라, 컨퍼런스도 참여하기로 했다.


프랑스, 네덜란드, 핀란드, 영국, 그리고 그 외에도 많은 유럽 미디어 회사들이 참가한 컨퍼런스에서 인공지능과 관련된 현재 프로젝트와 기술에 대해서 발표하고 배우는 자리였다. 연합에 속한 회원들끼리 나누는 정보라서 그런지 상당히 자세하고 솔직한 내용의 발표가 이어졌다. 때로는 현장에서 콜라보레이션 제안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신없이 컨퍼런스 발표 내용들을 듣고 적다가 생각했다. 배우려는 마음만 있으면 배움의 기회가 열려있고, 도움이 필요하면 네트워크가 연결되는 세상에 살고 있구나. 이런 환경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열정적으로 살면 그게 다 글로벌 역량인 것 같았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나라들. 저마다의 사정에 맞춰서, 나누고 배운 지식을 가지고 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나가는 사람이 되면 또 그게 글로벌 인재 아닐까?


브렉시트 때문에 유럽 연합에서 떨어져 나온 영국은 개밥에 도토리 같은 신세가 되긴 했지만, 아직도 유럽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많다. 글로벌하게 열린 기회들을 내가 잡을 수 있는 만큼 잡으면서, 둥근 지구 어딘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






런던에서 일할 뿐인데, 전 세계 사람들을 만나고 같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놀랍다. 세상은 넓은데, 다 같이 만나서 일할 기회는 흔치 않다. 아시아부터 유럽까지 지구 반 바퀴를 돌아서 연결된 우리는 어떤 운명으로 만난 걸까. 외국생활을 하면서 이 세상에 나 혼자 외롭게 사는 것 같다가도,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게 아닌 사람들을 만나면 왠지 정이 가고 힘이 난다.


좋은 사람들을 만날수록, 예전에 가졌던 편견과 무의식적인 차별의식을 고치고 싶어 졌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할 줄 알고, 다름을 배우고, 환영하는 것. 이제껏 무심코 차별하거나 그릇된 관점으로 바라봤던 것들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평등(equality)을 넘어서, 불평등한 조건들에 가장 적합한 해결책을 찾아 형평한(equity) 지원을 아끼지 않는 글로벌 마인드를 가지고 싶다.


이해와 존중. 영국에서 일하면서 내가 가장 받고 싶은 것들이다. 차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존중하는 자세를 나부터 가져야지.


이전 08화커피 한 잔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