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신혼집을 마련한 후로 벽에 그림을 한 점도 걸지 않았다.
하얀 벽에 무엇부터 걸어야 할지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그림이 걸리는 순간, 공간의 분위기가 정해지는 게 두려워서였을까?
현실에서는 거실 벽에 그림 한 점 못 거는 사람이 전시회에 작품을 걸게 됐다. 이번엔 무려 오프라인이라서 NFT 아트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작품과 소통하는 기회가 될 것 같다.
NFT 빌라 (5.16-5.29)
이태원에서 열리는 한국 최초의 오프라인 NFT 전시 그룹전 <NFT 빌라>. 유진상 교수님과 홍학순 교수님이 기획한 NFT 빌라 전시회에 참여하는 90명의 아티스트들과 내 그림을 나란히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글로벌하게 유명한 작가들 옆에 서보고 싶어서, NFT 새내기는 뱁새 가랑이가 찢어지게 준비 중이다.
그런데 말이지, 그림을 벽에 거는 행위에 왜 열정이 솟아나는 걸까? 무언가를 ‘건다’는 행위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자.
그림을 걸다
사물을 벽에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한다는 뜻이다. 그림을 그리기로 했으면, 결심이 흐지부지 떨어지지 않게 벽에 콱 박아두고 싶은 마음 때문에 전시회에 그렇게 참여하고 싶은 건가 보다. 취미로 그냥 마음 내킬 때 스케치북에 한 장 그리고 구석에 콕 박아두던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마음 그대로 토해내고, 솔직하게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더 많이 그리고 싶다. 벽에 걸겠다는 의지 덕분에 새로운 컬렉션 준비도 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림을 거는 행위에 열정을 가지고 싶다.
말을 걸다
무언가를 먼저 시작한다는 뜻이다. 해외생활을 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어쩐지 나 스스로에게 새로운 것을 먼저 시작하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내 앞에 놓인 상황을 수습하면서 주먹구구식으로 코 앞에 닥친 것만 헤쳐나가다 보니 먼저 일을 벌이려는 시도가 부족했다.
NFT에 관심을 가지고,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 주변에 서성거리다 보니 매일 새로운 것들을 시작한다. 그림에 이야기를 담고, 전시를 준비하고, 브런치 북을 발간하고, 그러다 보니까 일상생활에서도 먼저 시작하는 것들이 생긴다.
싸움을 걸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어떤 것을 내맡겨보고 싶은 시기가 올 때가 됐나?
앞 뒤 재지 않고 그냥 우다다다다 부딪혀버리고 싶다. 한 살씩 나이를 챙겨 먹다 보니, 실수하는 게 무서워서 살얼음 판을 살금살금 걷듯이 지냈다. 회사 생활도 잘해보려고 한 걸음씩 딛으면서 살았고, 해외 생활도 잘 적응하겠다며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최근에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탄탄한 계획을 세워보겠다고 안 돌아가는 머리를 쥐어짰다.
그런데 말이지, 계획대로 살려고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조심하는 게 성질에 안 맞나 보다. 도미노처럼 화끈하게 와르르르 쓰러뜨리는 모습이 보고 싶다. 속 시원하게 뭔가 지르려면 싸움을 걸려면 상대를 잘 골라야 한다. 전시회에 그림이 걸릴지, 그냥 나 자신하고 싸움 한 판을 하고 말지, 두고 보자.
NFT 빌라 오프라인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그림이 걸렸을 때 어떤 느낌일지 처음 고민해봤다.
스케치북에 쓱싹~하고 한 장 그릴 때는 다른 누군가가 이 그림을 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키는 대로 비율을 정했다. 그런데 전시에 출품하려면 규격이 있고, 작품 파일 형식도 지켜야 하니까 그림을 걸었을 때 어떻게 보일 것인지 생각하게 됐다.
Oncyber.io - 가상현실 속 갤러리를 열었다
NFT 아트는 디지털 작품이니까, 가상현실 속에 갤러리에 걸어둔 모습을 보면서 감을 잡아 보기로 했다. 한국 NFT 아티스트 커뮤니티에서 소개받은 oncyber라는 가상 갤러리를 사용해봤다.
갤러리 스타일을 고를 수 있는데, 약간 거칠고 투박한 내 작품의 성향에 맞게 인테리어를 선택했다. 3D로 구현된 갤러리를 VR로 감상하면 정말 걸어 다니면서 그림을 구경하는 느낌일 것 같다. 천장이 반쯤 뚫리고 유리창이 깨진 웨어하우스 스타일에 걸린 그림들을 보니까 기분이 좋다. 전시회에 출품할 영상 작업은 아직 한참 남았는데, oncyber 갤러리를 보니까 벌써 전시회에 다녀온 것처럼 김칫국이 벌컥벌컥 들어가는 중이다.
이태원 전시 공간을 사진으로 엿봤다
NFT 빌라 전시회 운영팀과 아티스트분들이 공유해 주신 사진을 봤다. 작품 전시용 블루 캔버스 장비에 대한 정보도 받았다. 가상현실로 어림잡아 생각했던 공간보다 훨씬 재미있는 구조였다. 한국에 한 번씩 휴가를 가면 꼭 이태원에 들러서 이곳저곳 둘러보곤 했는데, 이번 전시공간은 또 새로웠다. 아기자기하면서 호기심을 자아내는 전시장.
이노므 코로나만 아니라면 매일 전시회 장소에 가서 지킴이도 하고, 홍보도 하고 그럴 텐데ㅜ
전시 공간을 보고 나니까 더 열정이 솟아난다. 황새 같은 아티스트들의 작품 옆에서 버티려면은 영상 작업에 더 집중해야 할 것 같다. 전시도 해보고, 작품과 더 소통하다 보면 어느 날 우리 집 거실에도 용기 있게 그림을 거는 날이 오겠지?
+덧붙이는 말
oncyber.io는 이미 NFT 아트 민팅에 성공해본 사람이라면 정말 쉽게 갤러리를 꾸밀 수 있을 것 같다. 혹시 아직 NFT민팅을 하지 못했다면 <한 걸음씩 따라하는 NFT 아트>를 읽어보면서 전시하고 싶은 작품을 민팅하고, 가상현실 속 갤러리도 꾸며보길 바란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nftandrum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