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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erumie Dec 02. 2022

엉덩이력이 떨어졌다

해가 짧아진 런던의 아침은 7시가 넘어도 컴컴하다.

따듯한 이부자리를 떠나기가 어려워서 뒹굴뒹굴거리며 몇 분이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때였을까? 브런치 알림이 떴다.

“작가님의 글을 못 본 지 무려…150일이 지났어요ㅠ_ㅠ”


150일, 무려 5개월 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구나. 눈물을 흘리는 이모티콘이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안 쓰려고 그런 것은 아니야 ㅠ_ㅠ 그런데 말이지…


이놈의 엉덩이력이 떨어지고 있는걸 

작가는 재능이나 실력만큼 ‘엉덩이력’을 키워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가로서의 삶> 책에서도 꾸준히 정해진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쓴다고 했다. (그는 책에서 ’엉덩이’라는 말은 감히 쓰지 않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성실한 태도를 보아하니 엄청난 수치의 엉덩이력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지난 150일 동안 내 엉덩이는 의자에 얌전히 있을 생각을 못했다.


<한 걸음씩 따라 하는 NFT 아트​> 책이 출간되고 난 후, 어쩐지 다시 종이와 연필을 잡기가 싫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먹고 사느라 바빴다고 할 수밖에. 아니지, 더 잘 먹고 더 잘 사는 방법이 있을까 머리를 굴리느라 바빴다.


왠지 무라카미 하루키가 내 뒤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150일 전과 다를 게 없는데?

맞다, 거의 반년을 푸닥거리한 것 치고는 크게 바뀐 게 없다. 애초에 “더 잘 살겠다”는 안일한 목표가 체력과 시간을 소모하게 만든 원인이었을까. 현생에서 마음을 조급하게 만드는 일들을 하루빨리 해결해두고 싶은 욕심이 컸다.


‘연봉과 복지가 더 나은 회사에 가면 마음이 편하겠지?’

‘이스트 런던에서 슬슬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한국이 출산율 최저 국가 top 3라는데, 이제 슬슬 국가 출산율 상승에 기여를 할 때가 되었나?’

‘N잡 시대엔 패시브 인컴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고?’


해결하고 싶은 일들은 끝이 없었다.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이것저것 손을 댔다.


이직을 해볼까?

복지가 좋다고 소문난 스웨덴, 덴마크, 등등 북유럽 국가의 회사에 지원을 했다. 첫 스크리닝 콜부터 오퍼까지 거의 8주에 걸친 과정을 소화했는데, 결국 지금의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소문과 현실은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두 달 정도 시간을 들여 회사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숨길 수 없는 피로와 근심이 보였다.


안타깝지만, 여러 회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아도 지금 내 자리에서 재미있게 하고 있는 일과 바꿀 수 있을 만큼 좋은 조건을 찾지 못했다. 많은 시간을 들여 진행한 이직 프로젝트가 결국 제자리에 머무는 것으로 결론이 나니까 허무했다.  


이사를 가볼까?

면접이 없는 날에는 런던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집 조사를 했다. 런던은 서울보다 훨씬 크고, 동네마다 특징이 강한 편이어서 비교 분석하는 재미가 있었다. 재미가 없는 부분은… 소름이 쫙 돋을 만큼 비싼 집 값 정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현상 때문에 런던의 모기지 이자율은 작년 대비 거의 3배 가깝게 뛰었다.


이스트 런던의 거친 인상이 싫어서 다른 동네로 계속 눈을 돌려보았지만, 도무지 견적이 안 나왔다. 서쪽으로, 남쪽으로, 남의 집 구경을 다녔는데, 마지막에는 지하철을 타고 다시 동쪽으로 향하는 내 모습이 유리창에 비쳤다. 10년 가까이 한 동네에 살았는데, 아무래도 이스트 런던은 나를 한동안 놓아주지 않을 것 같다.


가족계획은? N 잡은?

이미 앞에서 힘을 다 써버린 나는 더 이상 새로운 일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물리적인 시간적 여유가 생겨도, 심리적인 여유가 없는 탓에 효율적으로 일을 굴리지 못했다.




2022년 12월, 한 해의 마지막 달에 들어서자 비로소 나의 갈팡질팡했던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잘 살아보겠다고 힘을 들여서 푸닥거렸는데, 눈에 띄는 결과 없이 마무리하게 된 꼴이 초라하다.


고생했으니까 좀 쉬고 싶다

결과는 별 볼일 없지만, 마음고생은 심했던 나에게 휴식의 시간을 주고 싶었다. 짧게 여행도 다녀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어보고, 무료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 책도 여러 권 읽었다. 그중에 제목이 눈에 띄었던 책 <사는 게 힘드냐고 - 니체가 물었다>. 삶이 나를 힘들게 했다기보단, 내가 앞장서서 삶을 힘들게 만든 꼴이지만, 어쨌든 힘드니까 무작정 책장을 넘겼다.


안락과 같은 것은 그의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우습고 경멸받아야 할 것으로 만드는 상태이다!
- 니체


사는 게 힘들 땐 좀 쉬어가라는 류의 달콤한 말로 위로를 받고 싶었는데, 어후… 맵다!


니체는 흐물흐물한 내 심장에 김치 싸대기(!)를 날렸다. 고통을 최소화하고 안락만을 추구하는 것은 종말에 이르는 길이라는 그의 말이 듣기 싫으면서도 귀에 쏙쏙 박힌다. 마음이 힘들다는 이유로, 시간이 남아돌아도 글을 쓰지 않고, 그림을 그리지 않았던 행동이 모두 들통났다.


넷플릭스에서 볼 거 다 봐서 다시 옛날 프로그램 정주행 하는 모습도 보기 싫고, 일 끝나고 소파에 누워 뒹굴거리는 것도 이제 거의 질렸다. 아무리 쉬어도 행복하다고 여겨지지 않았던 날들, 혹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행복의 조건: 자신과 싸우면서 자신을 극복하는 것

니체가 말하는 행복은 안락함과 한~참 거리가 있다. 싸우고, 극복하고, 이겨내고! 읽기만 해도 벌써 피로한 행동들을, 그는 행복의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맞을까? 너도 나도 “노오오오력!”을 강요받는 사회는 미움받다 못해 사라진 것 같은데, 니체가 말하는 행복은 어쩐지 “노오오력”하는 사회에 어울리는 것 같다.


꽤 무겁고 피로한 조건을 ‘행복’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의문이 들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2022년의 마지막 달, 아쉽고 허무했던 일만 써 내려가며 종말을 마주하고 싶지는 않은걸. 휴식을 취해도 흐물거리기만 하는 자신과 싸워서 이 상황을 극복할 거다.


녹슬었던 글쓰기 루틴을 다시 윤이 나게 닦으려고 한다. 엉덩이력을 키우기 위해 일정한 시간에 자리에 앉고, 머무는 연습을 할 거다. 마음에 드는 글이 탄생할 때까지 계속 뜯어고치고 다듬으면서 브런치에 글을 올려야지.


지금  글을 쓰는데도 엉덩이가  번이고 위기를 맞았다. 굳은살이  빠져버린 말랑한 살덩이. 다시 자리 잡으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니까 행복에  걸음 가까워진  같다. (기분 탓일까? 엉덩이력 최고치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제 뒤에서  끄덕거리는  같기도…! )


브런치 알림 메시지에 답글을 달 수 있다면, 이렇게 적고 싶다.

“150 동안 기억해줘서 고마워, 이제 다시 자주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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