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에 엉덩이력을 기르겠다는 야심(?)을 밝혔는데, 6개월 만에 불쑥 브런치에 돌아와서 핑계를 적는다.
2023년 초반에 여행 복이 터졌는지, 비행 마일이 쭉쭉 늘어났다. 비행기를 타고 이동을 자주 했더니, 이제 여행가방이 항상 거실 구석에 준비 중이다.
영국에 살면 유럽으로 훌쩍 주말여행 가는 거 별 것 아니지 않냐고, 생색내지 말라고 옆구리를 쿡쿡 찌를 수도 있지만… 올해 마일리지력에 기여한 것은 휴식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일과 관련된 출장이 대부분이다.
회사에서 여러 날 출장을 가라고 하면, 비행기표를 예약하다가 왠지 억울해진다. 휴식과 여가를 위해 여행을 준비할 때, 기내용 가방에 들어갈 짐을 싸면서 설레던 그 기분을 몽땅 도둑맞은 것 같기 때문이다. 새로운 나라와 도시에 갈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려다가도, ‘출장=일’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두근거림이 뚝! 멈춘다. 억울함을 달래려고 출국 전후로 급히 출장지를 여행하는 셈 쳤더니, 얼렁뚱땅 여행 비슷한 경험도 따라오긴 한다.
그나저나, 지난 6개월 동안 어딜 다녀왔더라? 적어둬야 안 잊어버릴 것 같아서 부랴부랴 브런치에 적는다.
- 스페인: 바르셀로나 MWC 2023 참가하러 다녀왔다.
- 한국: 영국으로 떠난 지 9년 만에 처음으로 부모님이랑 동생이랑 같이 생일을 축하할 수 있었다.
- 일본: 일본에 4번째로 방문한 건데, 4번 모두 간사이 지방만 다녀오다니…
- 미국: 디트로이트 출장 일정이 시작되기 하루 전, 시카고에서 라이브 재즈 공연을 봤다. 월요병과 출장병을 동시에 앓고 있던 나에게 어마어마한 힐링이 되었다. 마음 가는 대로, 느낌 가는 대로, 음악이 섞이는 재즈를 들으니까 갑자기 다 괜찮을 것 같았다. 긴장을 풀어준 재즈 덕분에 출장은 걱정과 달리 수월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 그리고 또… 미국: 다음 주에 디트로이트에 와 줄 수 있냐고 보스가 메일을 보냈다. 일주일 뒤에 미국에 갈지 안 갈지, 50/50 상황이다. 만약 출장 가게 되면 이번엔 뉴욕에 잠깐 들를까 고민 중이다. 과연, 뉴욕에는 시카고의 재즈 같은 서프라이즈 선물이 있을까?
출장 때문에 마일리지가 쌓이는 걸 보면서, 엉덩이력은 어디로 갔는지 슬쩍 뒤를 돌아본다.
엉덩이가 무거워져야 하는 일들이 앞에 놓여있는데, 자꾸 비행기를 태워 날려버리니까 원하는 만큼 엉덩이력이 차오르질 못한다.
TMI 가득한 글을 브런치에 남기려니 쑥스럽다.
그래도 엉덩이력이 신통치 못했던 지난 6개월에 대해 변명+어리광 부리고 싶어서 쓴다.
요즘은 비행기에서 와이파이 연결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쓰려면 쓸 수 있다는 사실은… 잠시 모르는 척하기로 하자.
마일리지와 엉덩이력이 비례하는 마법을 부려보고 싶은데, 이번 미국 출장을 가게 되면 한 번 시도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