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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May 02. 2024

애호박 완두 전

불평할 용기



1년 넘게 보지 못했던 친구를 만나고 왔다. 모처럼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골목에서 길고양도 만나 근황도 묻고, 그동안 못다 한 수다도 실컷 떨었다. 다른 친구들 소식도 듣고, 육아 이야기도 하고, 요즘 잘 나가는 연예인 예찬도 했다. 그렇게 돌고 돌아 물가 이야기로 화두가 옮겨 갔다. 26000원짜리 쪽파 논쟁과 25000원짜리 사과 사건은 빠질 수 없는 소재였다. 자연히 나라 욕이 입에 올랐다. 더 오를 거 같다는 친구의 말이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다음날 마트에 갔을 땐 역시나 라면이 가장 싸다 느껴졌다.(번들팩 행사가로 3000원 정도 였다.) 영화 설국열차의 밤양갱 아니, 바퀴양갱이 떠올랐다. 사과, 참외, 수박, 토마토. 가공없는 자연산 식재료들은 선뜻 바구니에 담기 어려운 가격이었다. 시댁 베란다는 올봄부터 텃밭으로 승격되었다고 하던데… 우리집은 두 냥이들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얼마전 반려인이 흙을 날라주고는 소정의 상추 지분을 얻어 왔다. 다행히 그걸로 요 며칠 샐러드도 해 먹고, 비빔밥도 해 먹고 변비 탈출의 기회로 삼고 있다.



 카톡으로 받는 마트 전단을 훑고, 동네 채소 가게 커뮤니티에 들어가 정보를 모았다. 가지 2개 1000원에 체크, 송이버섯 체크, 애호박 체크, 오렌지 체크… 그나마 온화한 계절이 우리를 구하는구나 싶었다. 이번에도 반려인 찬스를 이용해 두 탕을 뛰기로 하고 마트에선 못난이 사과와 바나나, 고기류를 샀다. 채소는 당연히 동네 가게에서 체크해 둔 아이들을 데려오기로 했다. 늦게 도착한 탓일까, 헐값의 가지는 다 팔리고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머지 것들만 담아 나오는데 입구에서 신상 햇완두콩이 눈에 들어왔다. 100g에 1700원이었나… 제철 채소, 맛이나 보자 싶어 몇 움큼 집다 보니 7800원이 나왔다. 좀 비싸다 생각했지만 먹고사는 일이니 그러려니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완두콩 껍질을 까며 뭔가 울컥울컥 한 게 올라왔다. 작은 채반 바닥을 겨우 덮는 완두들을 내려다보면 차라리 한우를 사 먹을 걸 생각이 들었다. 이쯤 되면 ‘제철’과 ‘음식’ 사이에 ‘비싼’이라는 말이 생략된 게 아닐까… 돈과 시간과 노력 대비 보잘것 없이 하찮은 양이지만 애지중지 벗긴 완두콩을 반으로 나누어 곧장 전을 만들었다. 이왕 비싼 값 주고 데려왔으니 최상의 컨디션일 때 섭취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구입한 애호박을 함께 채 썰어 볼에 담고 현미가루와 물을 섞어 반죽을 만들었다. 흡사 전시 상황처럼 싱크대 옆에 접시와 젓가락을 세팅해 두고, 굽는 동시에 먹기 시작했다. 모름지기 전의 생명은 스피드니까. 짝다리를 짚고 서서 굽는 족족 먹어주는 것이 옳았다. 일본 오코노미야키집 식탁 위에 왜 철판이 있는지 이것으로 설명되었다. 첫 장을 맛 보니 역시 간을 좀 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약간의 소금 후추를 넣고, 두 번째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렇게 조금씩 맛보는 느낌으로 4장이나 구워 먹었다. 그중 두 장 반은 내가 먹고, 한 장 반은 예의상 반려인에게 넘겼다. 이번에도 우리가 아는 맛에 다소 벗어난 느낌이었지만, 한우다 생각하니 싹싹 긁어먹을 수 있었다.



고공행진의 물가를 비롯해 비출산 문제(고령화 문제), 의사파업… 무엇하나 논의되고 나아지는 게 보이지 않으니 용산 계시는 그분은 뭐 하시나 속에서 천불이 난다. 올해 근로자의 날에는 근로자의 25%가 일을 했고, 어린이날 대체 휴일에도 대부분(적어도 내 주변)이 일을 한다고 하던데… 대기업 다니는 지인도 일을 했다 하질 않나, 이쯤 되면 공휴일이 죄다 기업의 날이 되었다 싶다. 그날 일한 사람들 대부분이 비정규직이었고, 쉬는 경우에도 연차로 대체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선거에선 녹색도 정의도 사라져버렸다.  근로시간을 주 60시간으로 늘려주신 그분도 과연 출근을 하셨으려나 모르겠다.



p.s 안녕하세요. 최집사입니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 이불 빨래할 맛이 나네요. 올해는 일조량이 유독 적다고 하던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서 채소들이 무럭무럭 자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전에 병원에 다녀오는 관계로 업로드가 늦었습니다. 그래도 이리 글도 올리고 영상도 올릴 수 있어 감사하고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세먼지가 심해 비염도 극성이고, 아직 일교차가 커서 감기도 유행한다고 합니다. 아무쪼록 푸릇푸릇하고 비싸지 않은 제철 채소 많이 드시고 싱싱한 계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 릴스 업로드되었습니다.

   좋아요, 관심 환영합니다.

https://www.instagram.com/reel/C6bMkG0vPaC/?igsh=cjlyeXY2YW13M2J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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