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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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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Jun 1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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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8 다시 덥

일러스트 : 냥멍 by 최집사



 폭우가 쏟아지고 한 이틀 시원하더니 다시 한 여름이 되었다. 거실 암막 커튼을 치고 그늘이 지는 주방으로 와 냉장고에 있던 콜드브루와 얼음을 꺼내 라떼를 말았다. 냥이들도 더운지 수시로 마루 바닥에 쓰러졌다. 괜히 따라서 옆에 누우니 청도 와인동굴, 밀양 얼음골 저리 가라였다. 역시 더울 때든 추울 때든 고양이를 잘 따라 하면 된다.



잠시 멍을 때리다 선풍기 옆에 바짝 앉아 패드를 켰다. 일정과 가계부를 정리하고 병원 예약도 하고 친구와 통화도 했다. 일을 하다 나와서 전화를 건 친구의 수화기 너머로 새소리가 들렸다. 새삼 시골살이가 낭만적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세상 모르게  자고 있던 꾸리가 갑자기 잠꼬대를 했다. 꿈속에서 누군가에게 시달리는지 귀신같은 소리를 냈다. 작은 방에 있던 룽지는 그 소릴 듣고 걸리는 게 있는 표정으로 나와서 이리저리 살폈다. 새벽마다 혈기왕성한 아이를 상대하기엔 꾸리도 버거운가 보다. 점점 덩치가 커지는 작은 냥과 종종 현타의 표정을 짓는 꾸리를 본다. 그래도 아이는 지지 않으려 밥도 많이 먹고 잠도 많이 잔다.



라디오에서 내가 늙었다고 느꼈을 때에 대한 사연이 나왔다. 젊은이들 신조어 못 알아들을 때,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할 때, 소리 내어 혼잣말할 때… 나는 냥이들이 크는 걸 볼 때 그렇다. 주먹만 하던 아이가 어느새 6킬로를 찍었다. 동그란 눈으로 말대꾸도 하고, 못 오르던 서랍 위도 단숨에 뛰어오른다. 그래도 자신이 자란 걸 눈치채지 못하는 모습이 마냥 귀엽다. 골골송을 부르며 불현듯 무릎 위로 올라올 때나, 덩치에 맞지 않는 구석을 찾아 숨어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지난 시간 추억들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콩국수, 멍게, 선짓국… 먹지 않던 새로운 음식의 맛을 알게 된 것처럼 늙어서 좋은 점도 꽤 있다. 타인의 시선과 말에 무던해지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여유가 생기고, 추억할 거리가 많아진다는 건 나이 듦의 또 다른 설렘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 릴스로그 업로드되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reel/C8WZRzfPNng/?igsh=MTBncjcyd3U5Nmg0Z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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