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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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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Jun 2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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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1 맑았다가 흐림

일러스트 : 동행 by 최집사



 아침에 일어나 밥을 차린 뒤 냥이들 뒷간을 씻었다. 반려인을 보내놓고 화장실로 가 샤워부스 안 물기를 쓸고 선풍기를 틀어 놓았다. 룽지가 따라와 거들겠다고 방정을 떨었지만 마음만 받겠다고 타일렀다. 수건과 발수건도 새것으로 바꿔놓고 옷방에 가 빨래할 옷들을 챙겨 세탁기도 돌렸다. 가볍게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한 뒤 커피를 내려 빨래가 다 될 때까지 작업을 했다. 요즘은 수박을 많이 먹어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나이가 아니라 수박 탓이라고 열심히 우기고 있다.



 빨래를 다 널고 나니 비가 올 거 같다. 창문을 닫고 올려다본 하늘엔 구름이 잔뜩 몰려왔다. 조만간 우르르 쾅쾅 시끄럽게 싸우다 너나 할 거 없이 통곡을 하겠지. 오늘부터 장마라고 하던데… 서둘러 초를 꺼내 켜 놓아야겠다.



라디오에서 여름별미인 냉면 이야기가 나왔다. 서민을 위한 음식이었던 국수들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국수 한 그릇이 만 원 이상은 납득이 안된다. 다행히 내가 사는 동네엔 맛있고 저렴한 국숫집이 제법 있다. 유동 인구가 많은 서울이 훨씬 많이 팔릴 텐데 더 비싸다는 게 이해되지 않지만…



아마 임대료가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재료값이나 가스, 수도 각종 세금은 비슷할 것이다. 그럼 더 많이 팔리는 쪽이 저렴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니 황당한 마음이다. 소도시에서는 가게(건물) 주인이 직접 장사를 하지만, 서울에선 가게(건물) 주인이 국수를 팔지 않는다. 그곳의 냉면엔 비싼 땅값도 녹아 있는 거 같다.



 졸업을 하고 서울에 잠시 살았던 적이 있다. 어릴 때부터 화려하고 번쩍이는 그 마을을 동경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학자금과 생활비를 동시에 감당하기 어려워 이러다간 신용불량자가 될 거 같아 내려왔다. 무엇보다도 열정페이가 소박했고, 대표는 지나치게 권위적이었다. 일은 많고 시간은 없고 몸은 망가지고 마음은 상처받았다. 살아보니 그곳만큼 사막 같은 곳도 없었다. 좁고 시끄럽고 아무도 누구에게도 관심 없는, 정신없이 바쁘기만 한. 가끔 본가로 내려온 버스 안 창밖을 바라볼 때마다 듬성듬성 보이는 고향 사람들이 반가워 아무나 붙들고 말을 걸고 싶었다.



유현준 건축가님의 유튜브를 좋아한다. 그분은 미래의 오프라인 공간은 부를 가진 특권층의 전유물이 될 거라고 했다. 돈과 시간이 부족한 가난한 시람은 퇴근하고 자기 전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고, 돈 많고 시간 부자들은 한가한 평일 낮 백화점 명품 매장에 간다는 소리다. 공원, 도서관, 전시관, 박물관… 좋은 도시가 되려면 공짜로 누리는 공간이 많아져야 한다고 한다. 내놓으라는 부자로 살 순 없지만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나에겐 지금 사는 이곳이 적당하지 싶다.



서울은 자본주의의 거대한 섬이라는 생각이 든다. 띄엄띄엄 마을들이 모여있는 작은 마을은 언젠가 사라진다는 우려도 있다. … 어쩌면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미래는 가보지 못한 세계이고 그것만 점치고 사는 건 지금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하동이든 제주도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널찍이 원하는 것들을 보며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불편을 기꺼이 선택할 수 있다면 불편은 더이상 불편이 아닐 수도 있다. 어떤 면에선 누군가에겐 이미 그럴 수 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 릴스로그 업로드되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reel/C8eEwZavdMl/?igsh=MWU3bmdsNWV1d2x1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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