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티끌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집사 Jul 22. 2024

D + 42

20240722 칙칙폭폭

일러스트 : 양치시연 by 최집사



 모처럼 날씨가 좋아 이불을 널었다. 90도에 가까운 태양 고도각에 정수리가 치명적인 위협을 받았다. 외출을 자제해 달라는 재난 관리청의 요청도 받았다. 나갈 마음이 없었던 집순이는 조용히 스스로를 합리화할 수 있었다. 코로나 이후, 몸이 아프고 난 뒤, 재난급 날씨 때문에,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자연이 나의 주방은 일터이자 쉼터이자 작업실이 되었다. 방공호 같고, 달팽이 집 같은 이곳에도 나름 크고 작은 방 들고 있고, 크고 작은 냥이들도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떠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건 나의 일부가 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덥지도 않은지 털뭉치 룽지가 아침부터 공을 몰고 왔다. 짝다리를 짚고 싱크대에 기대 이번 올림픽 출전은 이미 늦은 일이라고 제아무리 설명을 해도 아이는 포기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금메달급 칭찬으로 응원해 주니, 신이 난 기세로 마르세유 턴까지 선보였다. 우뚝 솟은 어깨와 방망이 같은 꼬리를 휘두르며 공을 다루는 모습으로 그동안 남몰래 흘린 피땀?을 가늠했다. 이래서 즐기는 마음은 당해낼 수 없다는 걸까. 대서의 폭염에도 신이 나서 날아다니는 룽지를 보고 있으니, 좋아하는 마음은 어디든 낙원으로 만들어 준다는 마음이 들었다.


 


반려인이 주말 본가에서 얻어온 토마토와 고추를 씻어 정리했다. 시장이나 마트에서 산 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맛이 좋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무얼 만들어 먹으면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에 잠겼다. 알이 굵은 토마토는 껍질을 벗겨 병조림을 만들고, 맵지 않은 고추 일부는 피클을 담가둬야지. 그러고 보니 다 떨어진 바질도 좀 사다 둬야겠다. 제철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되도록 가볍게 요리해 먹으려고 한다. 자연의 힘을 빌리면 품은 덜 들이고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것이 좋아하지 않는 이 계절을 마냥 싫어할 수 없는 이유가 되어버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D + 4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