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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티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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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Jul 23. 2024

도캉스 _D + 43

20240723 재난급 더위

일러스트 : 출근 체크 by 최집사



 재난 문자 소리에 놀라 아침을 먹고 도서관으로 갔다. 자전거를 꺼내는 모습에 냥이들이 온몸으로 막아섰지만, 간식을 상납하니 곧바로 길을 터 주었다. 건널목 앞에서 신상 전기자전거 두대와 나란히 신호를 기다렸다. 귀여운 디자인과 땀 한 방울 안나는 동력원에 힐끔 눈길이 갔지만, 나의 애마가 섭섭해할까 다시금 튼실해진 허벅지를 자랑하며 페달을 밟았다. 오픈런을 위해 8시 55분 도서관에 도착, 안전하게 파킹하고 쏜살 같이 입구로 들어갔다. 잠시 대기하는 사이 우편함에서 가져온 관리비 고지서를 훑곤 시험 성적 같은 에너지 소비 현황을 체크했다. 동일 면적 대비 낮은 사용량에 내심 으쓱해졌다. 찜통 같은 여름, 0.000001초라도 지구가 뜨거워지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중장년층으로 보이는 성인 남성 세 명과 학생을 보이는 여성 한 명을 따라 열람실로 입장했다. 널찍한 책상들을 두고 뿔뿔이 흩어진 우리는 저마다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집에서 가져온 아이스 라테를 꺼내 마시며 책을 읽고 글감을 정리했다. 어디선가 누군가는 동해로 제주도로 워캉스를 떠난다고 하던데… 이곳에 모인 사람들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여름 전국 방방곡곡의 도서관에 거는 기대와 로망이 크다. 부디 남녀노소, 빈부에 관계없이 평등하고 유익한 곳이 되어주길, 적당한 거리만큼 존중과 매너가 공존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돈 없고 시간 많던 시절, 도서관을 즐겨 다녔다. 지인들은 그곳에서 쪽지도 받고 캔커피도 받았다고들 했지만, 나에겐 그런 류의 역사적 순간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때의 설렘만큼은 여전히 남아 지금의 일상 속 작은 기쁨이 되고 있다. 그 시절  내 모습에 나라도 반했다고 할까… 시간을 되돌려 돌아갈 수 있다면 책상 위에 살포시 비타오백을 두고 오고 싶은 마음이 든다.



  결혼을 한 뒤 다시 도서관을 애용하고 있다. 기쁠 때나 힘들 때, 문득 쓸쓸한 마음이 들 때, 반려인과 싸웠을 때도 집을 나와 이곳으로 왔다. 그러곤 아무 걱정 없어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 근심 없는 사람인 척 책장을 훑었다. 마스다 미리, 사노요코, 무라카미 하루키, 무레요코, 다나베 세이코, 나스메 소세키, 임경선, 김혼비, 황선우, 오리여인, 난다… 친구가 되어준 작가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들이 사는 세상을 여행하며 위로도 받고 동경도 했다.



언젠가 봤던 영화처럼 전 세계 도서관이 한 차원으로 연결된 게 아닐까 하는 상상도 든다. 한순간 알 수 없는 끌림으로 선택한 책이 어쩌면 책장 반대편의 다른 차원 속 누군가가 슬쩍 밀어줬을지도 모른다고, 황당하고 황홀한 생각들을 한다. 그리고 그 책을 펼치는 순간 뿅 하고 그곳으로 날아간다면... 알프스 산속의 작은 도서관, 피렌체 왕실의 도서관, 이집트 피라미드 옆 마을 도서관. 제주도 조그만 섬, 지리산 깊은 숲 속, 밀양 얼음골 계곡 옆 도서관에도 갈 수가 있다. 그런 고효율적 휴가를 생각하고 있으면 배 타고 비행기 타고 먼 곳까지 떠나지 않아도 하루종일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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