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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티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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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Jul 24. 2024

가내도서관 D + 44

20240724

일러스트 :  겨울인척 by 최집사



우려했던 에어컨이 고장 나고 말았다. 냉기가 약하다고 느꼈는데 역시… 아무리 돌려도 실내 온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서비스 센터의 챗봇 상담을 받고 자가 진단을 마친 뒤 방문 수리 예약을 했다. 예전에는 전화 예약으로 한참을 대기했는데, 이젠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접수를 할 수 있어 격세지감을 느꼈다. 다음날 수리 기사로 배정된 김0호님께 전화가 왔다. 통화를 하며 혹 이분도 ai 로봇이 아닐까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동시에 영화 윌 E의 주인공 같은 로봇이면 좋겠다는 바람도 들었다. 그런 상상하니 격하게 환영하고 싶어졌다.



더워서 잠을 설쳤다. 에어컨 없던 어린 시절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새벽에 반려인은 추웠다고 하지만 갱년기 집사는 여자 아이언맨이 되었다. 끼니 같은 샤워로 버티고 있다. 아침에 반려인과 얘기를 나누다 지금의 살인적인 더위는 8할이 내 문제라는 걸 알았다. 이 호르몬의 노예 같으니…



잠을 깰 때마다 냥이들이 격하게 반긴다. 더 이상 자는 척도 소용없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팔딱이는 집사를 활어회 보듯 입맛을 다시는 냥이들이 귀엽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다. 장마도 절정을 찍었고 멘털도 정점을 찍었다. 이젠 받아들이는 일만 남았다는 뜻이다. 이참에 한 마리 도마뱀으로 살아봐야겠다 생각한다. 그렇게 이 계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를 꿈꾼다. 그런 마음이라면 제아무리 고온다습한 날씨라도 즐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아침에 도서관으로 떠나기 전 일찍이 냥이들과 사냥을 나섰다. 그들의 유흥에 날씨 따위 방해가 되지 않았다. 젊어서 그런가… 한바탕 놀아주고 기절시킨 뒤, 간식도 챙겨줬다. 바다사자 자세로 스낵을 받아먹는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곤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일기예보에 비가 올 거라고 했지만 마침 장날이라 외출은 불가피했다. 우산과 우비, 손수건까지 단단히 챙기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출발하기 전 하늘을 보니 금방이라도 울 거 같은 표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가지도 못하고 무섭게 내리는 빗줄기에 유턴해 집으로 돌아왔다. 자다 깬 냥이들이 리셋되었는지 또 사냥을 가자고 했다. 도서관인척 조용히 옷을 갈아입고 커피를 내려서 식탁에 앉았다. 초도 3개나 켜고 bgm 음악도 틀어놓았다. 그렇게 오늘은 주방 도서관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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